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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Aug 28. 2023

실전! 결혼식

리허설과 본식에 대하여

 결혼식 3일 전 스트레스로 살이 너무 빠져서 드레스 피팅을 다시 해야 했다. 보통 몇 주 여유를 두고 피팅을 해서 본식까지 몸무게나 체형을 유지해야 하며, 내가 고른 드레스가 흘러내릴 수 있는 튜브 탑 드레스라 결국 피눈물 같은 추가금액을 지불하며 3일 전 피팅을 다시 했다. 그래도 내심 안심은 되었다. 직전에 리허설 한 번 해볼 수 있는 거잖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었다. 메이크업을 끝내고 드레스를 입었다.

 “이모님, 제가 3일 전에 입었을 땐 이 부분이 여기까지 올라오게 입었어요. 그리고 신발도 너무 꽉 껴서 아파요.”

 드레스는 내려가고, 신발은 작았다. 일명 “이모님”으로 불리는 웨딩 헬퍼는 당황하며 샵에서 신발을 다시 가져올 테니 기다려 달라고 하셨다. 그때, 사진작가가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문자 알림이 울렸다.


 커다란 웨딩드레스를 입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오래 걸리고 힘든 일이다. 나는 그걸 본식 당일 날 세 번을 했다. 세 번 다 실패했고 이모님은 포기하셨다. 원래보다 한참 밑으로 내려가서 가슴이 휑해 보이는 드레스가 더 내려가지 않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내가 고군분투하는 동안 신랑 사진만 찍을 수밖에 없던 사진작가님의 애가 탔기 때문이다. 하객들이 이미 오고 있었다.


 “이모님, 신발이 너무 커요.”

 이모님이 야심 차게 가져오신 신발은 내 발 사이즈보다 한참 큰 것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이젠 사진이 문제가 아니라 결혼식이 시작되어야 했다. 결국 신발 뒤꿈치에 휴지를 잔뜩 쑤셔 넣고 발과 구두를 고무줄로 고정했다. 헐떡이는 신발을 질질 끌면서 나는 그렇게 신부 입장을 했다.




 “행복했지?”

 “응. 행복했어.”

 나는 인생에 행복한 기억 중 하나로 결혼식을 다섯 손가락 안에 꼽기로 했다. 힘들고 힘들긴 했어도, 결혼식이 너무 즐거웠다. 결혼식 1부, 2부와 폐백까지 하고 먹은 밥은 너무 맛있었고, 한복 입은 엄마들은 깜찍했다. 정말 오랜만에 잡아보는 아빠 손도 좋았고, 세상 당당하게 등장했다가 울먹이며 축사를 하는 엄마도 좋았다. (부끄럽지만 동생 편지 읽고 울었다.) 우는 친구랑 같이 울고, 친구의 축가에 같이 춤췄다. 무엇보다 내 옆에 있는 얘를 이제는 남편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나는 신부입장과 동시에 행복해졌다.


 연습 때와 달리 신발은 크고 드레스는 내려갔지만, 내 눈에 필터를 씌운 것처럼 나는 행복한 것만 보였다. 짜증 낼 새도 없이 바빠서 그랬을까? 물론 그 탓도 있겠지만, 나는 내 행복에 진부하게도 지금 내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달렸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혼식만 바라보고 준비를 하면서 인생도 이렇게 연습을 하고 대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내게 일어날 일을 알아서 순서를 정할 수도 있고, 격한 감정에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결혼식 그러니까 모든 리허설이 끝나고 본식을 치르고 나니, 나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분명 "통통한 240"으로 리허설 드레스를 입을 때 신었던 신발 정도면 좋겠다고 그렇게 준비를 했다.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물속에서 미친 듯이 발길질을 하는 백조처럼 드레스 속의 내 발은 신발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엄지발가락에 하도 힘을 줘서 피가 안 통할 지경이었다. 이걸 결혼식을 준비하던 내가 알았을 리 없다.


 반면, 그렇게까지 행복한 결혼식이 될 줄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미혼이자, 타인의 관심은커녕 세상의 먼지처럼 숨어 살고 싶은 나에게 결혼식은 전국에서 모인 친척들과 친구들이 나만 바라보는 끔찍한 고문이었다. 남편에게 가족들만 아니면 결혼식을 하기 싫다고 징징대고 준비가 너무 힘들다고 징징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결혼식은 수능이었다. 열심히 준비하고 대비하지만 막상 다가오니 두렵고, 빨리 끝내고 싶은 것.


 그런데 신부입장 음악이 흘러나오자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마술이 펼쳐졌다. 그 모든 게 아름다웠던 건 환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축하해 주는 사람들. 그 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준 사람들 덕분에. 진짜 환호를 해주는 그 사람들의 목소리가 내 귀에 꽂히는 순간, 나는 드레스와 구두가 싹 잊히고 마음엔 행복과 감동이 가득했다. 디즈니 음악과 어우러져 축하의 목소리가 꾀꼬리처럼 들렸다. 내 눈과 마음이 축하를 향하자 눈에 필터가 씌워졌다. 오롯하게 즐겨라. 마음이 뇌에게 말했다.




 30년을 조금 넘은 인생을 되돌아보면 삶의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결혼식 같았다. 내가 아무리 준비하고 대비를 해도 막상 닥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헐렁이는 신발처럼 난감한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친구의 축가처럼 신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때 우리에게 중요한 건 단 한 가지, '지금 무엇을 보느냐'다.


 인생은 실전이다. 그리고 실전은 기세다. 내가 무얼 보고 집중하냐에 따라 나는 삶을 즐길 수도 있고, 짜증에 가득 찰 수도 있다. 그러니 나는 호기롭게 삶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결혼식처럼 걱정과 혼란이 발에 질질 끌리더라도 눈으로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테다.


 결혼식이 너무 좋았다고 말하면 아직 미혼인 친구들은 그 비결을 묻는다. 나는 좋은 업체도 소개해주지만 꼭 이 말도 덧붙인다. "그날은 좋은 것만 봐. 그게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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