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구마 일기 - 결혼 축하 편지
우주와 양자역학을 사랑하는 내 친구 K에게.
K야. 나는 너를 별이라고 생각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거나,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우리에게 사실은 본인도 잘 모르는 양자역학의 세계를 열심히 설명할 때 너의 눈은 반짝였다. 너는 여러 번 꿈을 고쳐 말했다. 공대에 진학하겠다, 아니 음악을 하겠다, 아니 패션 사업을 하겠다. 그렇게 마르지 않는 용기로 겁 없이 도전하고, 길을 바꾸며 또 몇 번을 실패하고, 결국은 새로운 방향을 찾아 해내고야 마는 너의 삶은 내게 눈부셨다. 광활한 우주를 탐험하는 듯한 어떤 모험들로 가득한 너의 삶은 초라한 겁쟁이인 내 모습과 몇 광년의 거리만큼 멀다고 느껴져 언제나 부러울 뿐이었다.
학창 시절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공간, 시큼한 땀 냄새와 케케묵은 발 냄새가 풍기던 고등학교 밴드부 연습실을 우리는 자주 떠올리곤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아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언어와 음악으로 말했고, 서로에게 서로를 낱낱이 보여줬다. 후다닥 점심을 먹고 연습실로 튀어 가면 기다리고 있을 나의 친구들이 늘 반가웠다. 처음엔 삐걱거리던 음정과 박자가 점차 맞아가며 제법 맛을 내던 우리의 음악들, 잊지 못할 무대 위의 떨림들, 우리에게 쏟아지던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와 혹은 엉망으로 끝났던 공연의 창피함까지도. 조금은 미화되기도, 약간은 과장되기도 하면서 우리의 기억은 애틋해졌다. 힘든 날 소주 한잔하면 떠오르는 사람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맛있는 추억으로 익어갔다.
우리의 음악 얘기는 평생의 안줏거리이자 안부거리가 되었다. 나는 그 시간, 그 장소에서 행복했다. 그건 오로지 너희가 내 동료이자 친구인 덕분이었다. 어느새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 우린 도망치지 않고 어른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먹고살기 바쁘단 핑계로 몇 달에 한 번씩 연락을 주고받고, 일 년에 몇 번 겨우 얼굴을 보며 술잔을 기울인다. 우리 추억은 대부분 학창 시절에서 멈춰있으니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린 사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을 테다. 하지만 그 벌어진 시간의 틈이 섭섭하진 않다. 그 모름까지도 즐거운 사이, 늘 새로운 서로를 궁금해하던 고딩 시절의 천진한 호기심을 간직한 덕에 오래 만나는 친구가 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요즘은 부쩍 자주 하기 때문이다.
지난 며칠 동안 책상 앞에서 너희 둘이 떠난 결혼식장의 꽃길을 생각했다. 이제 너의 손가락엔 힙합정신 가득한 휘황찬란한 반지가 아니라 믿음직스럽게 반짝이는 소담한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구나. 유난히 패션을 사랑하는 네게 이제 그 반지가 최고의 아이템이 됐을 테다. 너무 안온한 결혼생활보단 다이내믹한 연애생활이 더 잘 어울리는 유쾌한 너희 부부이기에, 너희 결혼 생활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기쁨으로 늘 행복하고, 가끔씩 너무 크지 않은 슬픔으로 온전히 다져지길 바란다. 결혼이 사랑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희 결혼이 끝도 없이 펼쳐진 아득한 사랑의 출발이 되길 기원한다.
K야. 너는 별이었다. 스스로 화려하게 빛나는 별. 나는 늘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이 늦은 편지를 적으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실 네 곁엔 언제나 너를 빛나게 해주는 따뜻한 광원들이 있었구나. 늘 너를 위해 헌신하고 기도했던 가족들, 너의 무모한 도전도 기꺼이 응원하던 친구들, 그리고 이제 네 옆에서 오랫동안 함께할 아름다운 아내. 너는 결코 혼자서 빛난 게 아니었구나. 너는 홀로 빛나는 항성이 아니라 함께 아름다운 행성이었다. 네가 뿜는 빛은, 그래서 그렇게도 따뜻했던 거 같다. 그래서 우리들은 너를 사랑했다.
결혼식장에서 친구 축사로 직접 읽어주고 싶었지만, 다른 친구 놈이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기회를 뺏겼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차라리 잘된 거 같다. 하객 모두 철저하게 마스크를 쓴 팍팍하고 갑갑한 결혼식장, 그리고 몇 날 며칠의 에너지를 그 짧은 하루에 모두 몰아 쓰며 달뜨고 정신없는 신랑인 너에게 읽어줬다면 그날의 편지는 음질 구린 마이크에서 웅웅거리는 소음일 뿐, 약간의 의미와 감동만 남고 메시지는 전해지지 않을 얕은 이벤트가 되고 말았을 테니까. (물론 축사로 나섰던 그 친구는 충분히 감동적이고 훌륭한 편지를 읽어주었지.) 그러니 진심이 가 닿기엔 이렇게 늦은 밤 조용히 몇 줄 적어 너에게 띄워주는 게 좋겠다, 아니 차라리 편지는 덮어두고 소주 한잔 함께 하는 것이 더 낫겠다. 그래서 나는 이 편지를 너에게 보여주지 않을 예정이다.
밴드부에서 베이스와 드럼으로 만난 우리는 무대에서 자주 눈을 맞췄다. 흔히 음악에서 베이스와 드럼은 부부라던데, 이제 너는 다른 사람과 진짜 부부가 되었구나. 나는 즐거운 배신감을 느낀다. 먼저 가라. 덩실덩실 두둥탁, 흥겨운 너희 부부의 출발에 기꺼이 BGM 깔아준다. 아주, 잘, 살아라. 내 친구야.
늦게 쓴다. 차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