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두컷을 끊던 날

차구마 일기

by 차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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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 기억은 늘 비린내가 바람에 흩날리던 인천 연안부두에서 시작된다. 그 이전의 기억은 흐릿해 어른들의 기억을 더해야 겨우 떠올리는 정도라, 온전한 나의 추억은 8살 무렵 연안부두를 낀 바닷가 동네에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해도 무리는 없을 테다. 한 학년 당 40명 규모의 학급이 3개씩 있던 작은 초등학교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당시 내가 찍었던 발자국의 전부다. 기억의 지도를 전부 모아 조립해도 한 뼘 남짓일 정도로 작고 소중한(?) 추억. 대체로 평화로운 유년시절이지만 그 와중에도 어린 내 마음에 수차례 큰 상처를 남겼던 곳이 있으니, 그 공포의 장소는 다름 아닌 미용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애들 다니는 미용실은 엄마와의 친분관계에 달려있다. 엄마의 머리를 섬세하게 잘 만져주는 단골 미용실만이 그 자식들의 머리까지 도맡게 될지니, 미용실이야말로 1+1 마케팅의 조상 격인 셈. 당시 미용실은 삼색등에서 빨강-하양-파랑의 원색 컬러가 한 몸처럼 어지럽게 섞여 돌아가고, 음침한 눈빛과 파격적인 스타일을 뽐내고 있는 무시무시한(?) 외국인 모델의 사진들이 벽을 타고 늘어져 있는 괴기스러운 장소였다. 그곳에서 늘 빨갛게 물들인 머리를 풍성하게 말아 올리고 세련된 무테안경을 번뜩이던 원장님이 엄마의 디자이너였고, 문방구 오락기 앞을 기웃거리다가 엄마 손에 끌려온 나의 담당 스타일리스트였다.

바닷가 동네에도 찬물은 위아래가 있는 법. 원장님이 엄마의 머리를 먼저 만지기 시작하면 소년은 어쩔 줄을 몰랐다. 활력 충만한 소년의 몸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근질거렸다. 그러나 미용실 이곳저곳을 탐방하자니 벽에 붙은 모델들의 눈빛이 매섭고 음산했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자니 괜스레 초조했다. 문방구 앞에서 동지들의 오락 실력을 구경하고 있을까 슬쩍 일어서면 엄마는 귀신 같이 인기척을 눈치챘다. 아직 파마 롯드가 머리의 절반 정도만 말아져 있었지만 엄마는 거울로 반사된 눈빛을 쏘며 근엄하게 대기 명령을 내렸다. “금방 자를 거니까 어디 가지 말고 앉아있어.” 그러곤 원장님과 한동안 수다를 이어갔다. “요즘 애들은 오락에 환장을 한다니까요.”


진정한 멋이란 걸 잘 모르는 요즘 어린것들을 위하여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 당시 어린것들의 스타일은 ‘귀두컷’이 국룰이었다. 옆머리는 속살이 허옇게 보일 정도로 바짝 돌려 깎고, 그 위에 봉긋하게 얹힌 윗머리의 힘으로만 버텨내는 치명적인 스타일. 남성의 그것(?)과 비슷한 모양 덕분에 귀두컷이라 불렸으며, (아마도) 당시 만연했던 남근적 질서의 상징이자 (어쩌면) 강력하게 획일화된 사회상을 비판하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거리의 아재들 머리에서 그 시절 귀두컷의 잔재가 간간이 보이지만, 우리 세대에게 귀두컷은 암묵적인 금기가 되었으며 그 용어 대신에 투블럭컷이라느니 숏컷이라느니 하는 세련된 용어를 대신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스타일도 가일층 진화해서 허연 옆머리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도 거의 없어졌고.

어쨌든 긴 기다림 끝에 미용실 의자에 앉은 그 시절 어린 사내들은 엄격한 사회의 규칙과 질서와 엄마의 권위 앞에서 자신의 머리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야 했다. 스타일 선택은 소년의 몫이 아니었다. 엄마의 스타일 요청은 한결같이 간단했다. ‘오래갈 수 있도록 충분히 짧게, 깔끔하게.’ 미용실에 끌려간 소년들은 하나같이 그저 거울 앞 의자에 얌전히 앉아서, 위잉-하고 굉음을 내는 바리깡 소리에 잔뜩 긴장해 눈을 질끈 감고, 몸 전체를 덮은 흰색 가운 아래서 식은땀이 날 정도로 야무지게 주먹을 꼭 쥐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느새 내 뒤에서 긴장하며 기다리고 있는 이름 모를 소년에게, 앞서 깎는 소년이 거울로 슬픈 표정을 건네던 장소. 그 시절 미용실은 소년들이 우울한 눈빛으로 서로의 멜랑콜리를 공감하는 사회화 교육의 공간이었고, 서둘러 소년에서 남성이 되리라는 다짐을 새기며 눈물을 머금고 경험치를 쌓던 울분의 던전이었다. 소년들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우수수 떨어지는 자신의 머리카락들과 작별하며 성장통을 견뎠다. 그곳에선 언제나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했지만 속으로는 수십 번씩 이렇게 외쳤겠다. ‘아줌마 그만! 이제 그만 잘라요!’


영겁 같았지만 찰나에 불과했던 ―실제로 귀두컷은 스타일링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으므로― 시간 뒤에 드러나는 허전하고 허탈한 내 허연 두피. 자를 때마다 오차도 없이 늘 똑같은 다이아몬드 형태의 두상과 어김없이 들려오는 시원하고 깔끔해 보인다는 칭찬. 그런 칭찬 앞에서 나는 늘 심각했다. 엄마의 언어로 ‘깔끔하다 = 오래 유지할 수 있다’로 해석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귀두컷은 그 모양이 뭉개질 때까지의 생명력이 유난히 길었다. 확연히 짧고 가벼워진 누군가의 머리를 또래들은 재빠르게 눈치챘다. 소년들은 소년들의 허전해진 머리를 결코 가벼이 넘기지 않았다. “어, 머리 잘랐네?ㅋㅋㅋㅋㅋㅋ” 관심을 받으면 허옇게 드러난 옆머리는 벌겋게 달아올랐다. 귀두컷의 생명력만큼이나 창피함도 오래갔다.

옆머리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으니, 당시 사내아이들에게 남은 유일한 자존심은 꽁지머리였다. 앞머리 한쪽을 쥐꼬리처럼 길게 기르는 꽁지머리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사내아이들은 자신이 사내임을 증명하기 위해 얼굴의 좌측 혹은 우측에 쥐꼬리 같이 얇고 긴 머리를 길렀다. (간혹 양쪽 모두 꽁지를 기른 파격적인 패션 선구자도 있었다.) 갈색이나 녹색 염색약으로 형형색색 물든 그 쥐꼬리들은 하나같이 허연 옆머리를 드러낸 아이들의 뜀박질과 함께 바닷바람 속을 나부꼈다. 엄마들이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허락해줄 수밖에 없었던 꽁지머리 대유행의 시대.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해 부릴 수 있는 유일한 멋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위기는 미용실에 가는 날에 찾아왔다. 그곳은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무소유-잘라냄’의 미덕을 추앙하는 공간. 아무리 그래도 꽁지 길이를 조금은 잘라야 한다는 원장님의 성화에 엄마는 옳다구나 맞장구를 치고, 나는 그저 원장님의 가위질에 쥐꼬리를 맡긴 채 눈을 질끈 감는다. 살벌하게 명확한 싹둑 소리와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 서늘한 감각. 눈을 뜨면 볼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던 꽁지가 광대 근처까지 잘려나가 있다. 아, 마치 작고 소중한 남근이 잘려나간 듯, 어린이의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상실감이자 허탈감이자 공포감. 나약한 어린이의 입은 다시 삐죽거리고.


나는 내 두발에 대한 선택권을 조금 늦게 돌려받은 편이었다. 중학생쯤 돼서야 다이아몬드 모양의 바짝 깎은 머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두발자유화 전이라 완전히 돌려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미용실에서 나왔을 때 옆머리가 남아있단 사실로도 충분히 흡족했다. 이발하는 데 바리깡을 쓰지 않는다니! 그건 일종의 혁신이었다. 그 시절의 미용이란 어떻게 자를지가 아니라 얼마나 자를지의 문제였으니까.

깔끔하게 자르고 오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미용실에 혼자 갔던 날을 기억한다. 미용실 누나에게 긴장된 목소리로 옆머리는 남겨달라고 요청했던 날. 그러니까 처음 귀두컷을 끊던 날. 아, 소중한 구레나룻이여, 나의 벗이여, 너는 이제야 내 곁에 남는구나! 아직 앳된 얼굴, 그러나 코 밑에는 거뭇거뭇한 수염이 송송 올라와 징그럽게 쑥스러워하는 내가 귀엽다는 듯 웃으며 머리를 잘라주는(아마 단골 고객 확보를 위한 자본주의적 성질이 넉넉히 함유된 미소였으리라) 예쁜 디자이너 누나를 뒤에 두고 심장은 요동쳤다.

물론 미용실에서 돌아온 내 머리를 본 엄마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자른 거 맞니? 돈 아깝게. 엄마의 일침에 괜히 찔려서 변명하듯 둘러댔다. 이거 엄청 많이 자른 거라고, 잘린 머리카락이 한 움큼 떨어져 있었다고, 더 잘랐으면 친구들이 놀렸을 거라고.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머리를 자르면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미용실을 가야 할 거라는 걸. 아무렴 어떤가. 그렇게 탐스러운 옆머리를 남기고 집에 돌아온 그날을, 나는 나의 첫 독립기념일로 기억하리라.


이제 성인이 된 나의 머리는 스스로가 책임질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변신한다. 투블럭, 다운펌, 가르마펌, 쉐도우펌, 샤기컷, 울프컷, 리젠트컷. 문제가 있다면 스타일의 종류는 갈수록 복잡해지지만 막상 다양한 머리를 한 나의 얼굴은 똑같이 아쉬울 따름이라는 것. 미용실 예약일 전후로, 이제 어른이 된 소년은 자주 잊고 다시금 깨닫는다. 패션의 완성은 결국 얼굴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평생 내 패션을 완성시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ㅋ.

그 시절 소년의 귀두컷에 상상계에서 상징계를 거치는 정신적 성숙 과정으로 분석하거나, 개인의 자기통제권과 자기결정권의 회복이라는 윤리적 명제 따위를 운운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냥 자기 잘난 맛과 멋의 회복이랄까. 속된 말로 간지(?)를 깨닫기 시작했던,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그저 행복했던, 그냥 딱 그 정도의 추억 톺아보기. 엄마 손 잡고 가던 미용실 풍경은 쓸데없이 아련하게 그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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