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여행기-
앞서 말한 대로 지리산 둘레길은 걸음걸음 기운을 얻기도 하지만, 걸음걸음 시름을 버릴 수도 있는 곳이다.
나는 총 세 번에 걸쳐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했다. 첫 번째야 바람이 불어 갔다곤 했지만, 그 바람을 맞은 것도 무언가 안 풀리고 꽉 막혔었기 때문이라 걷기 여행은 기분전환이었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세 번째 여행을 결심한 때도 기분을 전환하고 싶은 때였다. 예상치 못하게 눈물이 난다든가, 짜증이 난다든가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고 뭐든지 부정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는데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떠났었다.
하루에 한 코스를 걸으면 평균적으로 6시간 정도 걷게 된다. 풍경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이고 다리에 감각하는 것도 잠시이다. 혼자 걸으면서 할 일은 생각뿐이다. 그때 드는 생각이라곤 그간 해왔던 부정(否定)들이다. 내가 바라던 지금의 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이 불만인가, 무엇을 바라는가, 그래 봐야 지금의 나를 만든 건 과거의 나인데, 나는 과거를 후회하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생각 없이 하게 될 뿐이다. 그렇게 왼발에 부정하고 오른발에 부정을 부정하고 다시 왼발에 그 부정을 부정하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둘레길을 걷던 이 기간에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두 번째 걷기 여행 후에 진단을 받았고 몇 번의 상담과 몇 가지 약을 복용한 후 세 번째 걷기 여행을 마쳤다.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효자 노릇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리산에서의 걸음들이 내 시름을, 내 우울을 덜어줬다는 건 분명하다. 왜냐하면 지금 돌이켜 봤을 때 여행을 떠나던 당시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했던 건지 도저히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