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여행기-
우리 엄마는 대체로 내 배 아파서 낳았기 때문에 내 딸을 제일 잘 아는 건 나다,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대체로 자기가 낳아놓고 나를 제일 모르는 사람이 엄마다,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말이 없다고, 발표하지 않는다고, 앞에 나서지 않는다고, 안내 데스크에 길을 묻지 않는다고, 주문 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혼을 낸 사람이 엄마였다. 외향적이고 자신감 넘치고 씩씩한 엄마로선 극도로 내성적인 딸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무라기만 했다. 그러니까 내가 낳았으면 날 닮아야지,라고 생각한 엄마는 나를 모두 엄마 기준으로 생각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못마땅해한 것이다. 못마땅해 한 점이 많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엄마와 나는 닮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닮지도 않았거니와 정말 맞지 않다. 사소하게는 입맛부터 옷을 입는 취향과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음악까지 뭐 하나 겹치는 게 없다. 같이 저녁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서로 혀를 차기 바쁘다. 머리가 큰 지금에야 이건 그냥 엄마와 딸의 숙명이겠거니 하지만 큰 소리로 혼이 나고 그에 맞서 대든 적도 많다.
세 번째 지리산을 찾았을 땐 엄마와 함께였다. 일주일 동안 단둘이 걸었다. 언젠가 엄마와 대만 여행을 떠났다가 시내 한복판에서 큰소리를 낸 적이 있기에 떠나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역시나 안 맞았다. 엄마는 너무 빨랐고 나는 너무 느렸다. 엄마는 좀 서두르라고 다그쳤고 나는 뭐 그리 서두르냐고 짜증을 부렸다. 엄마는 대화를 하며 걷고 싶어 했고 나는 음악을 들으며 걷고 싶어 했다. 엄마는 뭐 여기까지 와서 귓구멍을 막고 있느냐고 다그쳤고 나는 그 이야기 벌써 몇 번째냐고 짜증을 부렸다.
예대를 졸업하고 친구들과 으쌰으쌰해서 처음으로 대학로에서 내 연출작을 올리게 됐다. 공연을 준비한다고 새벽까지 잠 못 드는 내게 엄마는 허송세월 보내는 짓 하지 말고 잠이나 자라고 화를 냈다. 그 말에 나는 다음날 짐을 싸들고 나왔다. 역시 안 맞았다. 엄마는 나의 열정을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엄마의 걱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3개월이 넘도록 집에 돌아가지도 않고 연락도 일절 끊고 지냈다.
공연 날 엄마가 찾아왔다. 꽃다발을 사들고 친구들까지 데리고 내 공연을 보러 왔다. 페이스북에 열심히 홍보하긴 했지만 엄마가 볼 줄은 몰랐다. 아니, 보고 찾아올 줄은 몰랐다. 엄마는 내가 뭘 하는지, 뭘 원하는지 다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지리산에서 한 코스의 끝은 꼭 같이 도착했다. 그건 모두 엄마가 나를 기다린 덕이었다. 한참 앞서 걷다가도 내가 안 보일 쯤이면 멈춰 서서 기다렸다. 그렇게 느리적 느리적 걷는 나를 지켜보다가 다시 출발하고 또다시 멈춰 기다리길 반복했다. 뒤따라 걷던 내가 낙엽에 미끄러지거나 벌레 때문에 놀라 소리라도 내면 얼른 되돌아와 무슨 일인지 살폈다.
내 키가 엄마보다 커진 지는 옛날이고, 나이도 꽤 먹어 엄마가 나를 낳았던 때를 넘어섰다. 엄마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영화도 보았다. 그런데도 엄마는 엄마고 나는 그의 딸이었다. 엄마는 여전히 나보다 앞서 걸으며 먼저 길을 살피고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공교롭게도 엄마와 함께 했던 지리산행은 완주를 한 때였다. 아무래도 엄마랑 걸어서 좋은 마무리를 한 게 아닌가 싶다.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안 맞고 여전히 투닥거리지만. (초등학생 때 백일장에 나간다는 내게 엄마는 글 쓰는 재주도 없는 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한 사람이었는데, 지금 나는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