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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 young Dec 20. 2020

4.4kg의 작은 거인

이젠 약 안먹어도, 안넣어도, 안발라도 된다. 얏호!

오늘은 하루종일 잡생각을 없애는 특효약인 육체노동을 했다.

원래 막 쌓아놓는 성격은 아니라 버릴 건 많지 않았지만 이번 주말은 집을 좀 치워야 겠다는 생각에  미리 해놓은 폐기물 신청서의 리스트를 보고 급 후회했다. 이걸 다 어찌 가져다 버리나. 낡은 의자들, 눈에 거슬리는 서랍장,각종 주방 도구들, 내 손에 죽은 화분들, 급기야는 4인용 테이블까지 나혼자 1층까지 땀을 흘리며 옮겼다.

생각보다 나는 참 힘이 세다. 


아직 아이의 물건은 건드릴 엄두가 안나지만 오늘은 아이가 지긋지긋했을 약들과 치료기구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어릴때 부터 여기저기 아팠던 아이는 해가 갈 수록 먹는 약, 영양제가 늘어났다. 누가 좋아하겠냐만은 정말 약을 싫어했다. 주사기로 약을 물에 타서 먹이려고 하면 나를 놀리듯 찌익 뿜어냈고, 좋아하는 간식에 섞여 먹는것은 상상도 못했으며 중독적이었던 치킨맛 치약에 섞어주면 지금 장난하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결국 가루약을 빈 캡슐에 담아 억지로 입을 벌려 목구멍으로 넘기게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약은 점점 늘어나 하루 6캡슐과 보조제 2알까지. 부담스러울까봐 몇 분씩 텀은 뒀지만 급할때는 어쩔 수 없었다. 덕분에 아이는 아침 저녁으로 캑캑 거렸고 나의 오른손 엄지 손가락은 송곳니의 걸렸던 탓에 항상 피투성이었고 아물 틈이 없었다. 상상해보면 끔찍하다. 누가 내 입을 억지로 벌려서 목구멍 끝까지 약을 들이민다면 그 사람을 평생 저주했을텐데, 아이는 아프기 시작한 10살때부터 7년간을 매일 아침 저녁으로 견뎌냈다.


떠나기 전날 새로 지어온 약. 아침약은 못먹고 갔네.


호흡이 편하도록 한달 반 정도 쓴 네블라이져. 이거 할때마다 정말 너 나 미웠지.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준비해 놓은 산소통. 호스도 씹어먹으려고 했었는데
신장약,관절약, 피부약, 안약 기타 등등.  정말 안아픈 곳이 없었구나.


아이의 약들을 보고 있자니 말이 7년이지 그동안 얼마나 괴로웠을까 싶다. 아프다는 말을 못할 뿐이었지 저렇게 많은 약을 먹고 바르고 넣는 것이 필요했다니. 거기에 아침 저녁으로 약을 쑤셔넣고 산소까지 물어보지도 않고 팡팡 쏴대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싶다. 그럼에도 이렇게 긴 시간을 잘 버텨주고 내 옆에서 행복만 주다 간 아이가 이제는 약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것에 그나마 마음을 다시 잡아본다.


항상 5kg 정도를 유지했던 아이는 최근 몇달간 4kg까지 체중이 줄었었다. 밥은 여전히 잘 먹었지만 다리 근육이 눈에 보일 정도로 확연히 줄어들었었고, 똑같이 먹어도 뼈가 살짝 만져질 정도로 점점 가벼워졌다. 떠나기 2주간의 폭풍 식사로 마지막 검진 때 몸무게는 다시 4.4kg까지 늘었다. 바람처럼 가벼운 무게지만 그래도 아이에게는 꽤 행복한 배부름이었기를 바란다. 


떠나기 전날, 주치의 선생님이 매번 캡슐을 타가는 내가 불편할 것 같다며 1000알을 미리 주문해 주셨다. 비록 봉투는 열어보지도 못했지만 1000알 대신 이제는 맛있는 것만 잔뜩 먹었으면. 그동안 고생 많았다.


테이블과 의자들을 혼자 번쩍번쩍 들어올리며 내가 꽤 힘이 세구나 뿌듯했는데 정작 강한 존재는 너였구나.

4.4kg의 작은 거인.  오늘은 뭐하고 있니?


목카라 쓰고 이렇게 이쁠 일인가


불편해도 양말만 보면 트위스트를 췄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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