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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 young Dec 25. 2020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어제는 잘 넘기나 했는데 12시 가까운 시간에 친한 친구가 보낸 위로의 메세지를 보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 결국은 다른 친구한테 전화해서 엉엉 소리내고 울었다. 보고 싶어 죽겠다고.

만 17년 만에 오후 1시에 일어났다. 그 전날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 물, 약, 밥, 산책 세트때문에 항상 일찍 일어났었는데 그게 불과 10일전이었다는 것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어제 얼마나 울었던건지 눈은 퉁퉁부어서 떠지지도 않고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몇시간을 멍하게 앉아있었다. 오늘따라 왜이렇게 힘든걸까.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너무나도 보고 싶은건 24시간이지만 누군가가 나를 위로하거나 함께 슬퍼해주면 그때 눈물이 폭풍처럼 터진다. 혼자 남은 내가 스스로 가여운건지, 누군가 나의 슬픔을 공감해주면 '자, 이젠 마음껏 울자.' 하면서 스위치가 켜지는 건지. 오늘은 크리스마스라고 간간히 울리는 메세지에도 답하기가 싫을 만큼 푹 쳐진다.


오늘은 그래도 아이의 물건을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너무 빠른것 아닌가 싶지만, 크리스마스에 유기견 보호소에 쓸만한 물건을 보내주고 싶었다. 머리는 결정했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빨리 세탁해서 말려야 하니 우선 쿠션들만 세탁기 안에 마구 구겨넣었다.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 세탁기를 멍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아이의 물건은 손이 함부로 가지 않아서 우선 미리 알아놨던 유기견 보호소로 보낼 사료를 주문했다. 모든 보호소가 어렵겠지만 가급적 더욱 열악한 곳에 보내는 것이 도움이 될지, 보호하고 있는 친구 수가 많은 곳에 보내야 할지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다. SNS 등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대적으로 나이 많으신 보호자들을 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방법이 쉽지가 않다.


우선 이만큼만 보내고 어떤 사료가 좋으실지 상의드려야 겠다.


내가 선택한 곳은 일산에 있는 한 보호소이고 젊은 여자분이 혼자 운영하시는 듯 하다. 아이들이 말도 못하게 깔끔하다. 찾아보니 허접한 사료나 못쓸만한 물건은 받지도 않으실만큼 기준이 분명하신 분 같다. 대형견이 많은 곳 같아 미리 연락을 드려 혹시 작은 아이들 옷이나 쿠션 같은 것은 필요하시지 않으시냐고 했더니 댁에서 작은 아이들은 따로 임보 중이시라고 한다. 


아직 쿠션위에서 뒹굴거리던 모습이 선하다



생각해보니 저 많은 아이들을 다 씻기려면 타올이 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떠나기 몇달전부터 소변 실수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새롭게 타올들을 많이 주문했었다. 심지어 산지 한달도 안된 타올들도 있다.  사실 내가 쓰려고 했었는데 나보다는 보호소의 아이들에게 훨씬 필요할것 같다.  아이는 별로 안좋아했지만 나이가 들며 점점 무서워했던 드라이때문에 잘 사용했던 목욕가운들과 아이가 너무나도 좋아했던 극세사 이불들까지 잘 챙겨넣었다. 아이가 떠난 직후 믿을 수 없는 마음으로  병원으로 달려갈때 싸고 갔던 타올만 한장 남겨두기로 했다.


덮어만 주면 잠들었던 이불


아이의 털이 최고의 옷이라고 생각해서 생각보다 옷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잘 세탁해서 보내줘야겠다. 떠나기 두달전쯤 집에서 편하게 입고 있으라고 샀던 티셔츠들과 내옷보다 비쌌던 검정터틀넥 스웨터와 모자는 남겨둘까 잠시 망설였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었으면. 사랑만 받아도 모자를 죄없는 친구들이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래, 넌 옷만 입으면 항상 뚱해졌었지.

대신 아이가 가장 자주 입었던, 그래서 낡고 아이의 향이 조금은 남아있는듯한 옷들만 가지고 있기로 했다. 살때 이게 마지막이 될거라고 생각을 못했던 간식들과 강아지티슈, 한번도 안쓴 하네스 등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큰 사이즈 4박스가 되었다. 막상 내 손에서 떠나보내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은 크지만 정말 더 필요한 친구들에게 따뜻한 사랑이 조금이라도 전달되기를. 


생각해보니 떠나기 몇달 전부터 새로운 쿠션, 이불, 옷, 수건 등등 아이 물건을 엄청 샀던것 같다. 사실 나이가 있다보니 새로운 물건을 사면 오래 못쓸 수도 있는데 그만큼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이가 내옆에 오래 있어야 할 이유를 만들었던것 같다. 아이가 떠날때 꼭 덥고 있던 이불은 심지어 한달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어쩌면 오래 남지 않은 시간을 무슨 부적처럼 새로운 옷가지와 물건들로 채웠던것은 아닌지. 그래도 아이가 마지막까지 편안하게 누워있었던 곳이 기부를 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상태인것에 위안을 삼아본다.


갑자기 네 물건을 다 보내버린다고 하니 서운한건 아니지? 천국에서는 옷도 필요하지 않을 만큼 따뜻하고 누워있을 시간도 없을 만큼 신나게 뛰어놀고 있길. 


목욕은 혼자 하고 계십니까. 심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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