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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 young Jan 04. 2022

아빠는 날 헤드한타로 부른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헤드한팅이지?"

"응"

"그게 뭐하는 일이라 그랬지?"

"... 쉽게 얘기하면 사람을 채용하려는 회사에게 사람을 소개시켜 주는 일이에요."

"회사가 직접하면 되는거지 왜 너네 회사한테 찾아달라고 하나?"

"....그게.....필요해서요?"

"그럼 돈은 구직자가 내나?"

"아뇨, 회사가요."

"왜 회사가 너한테 돈을 주나?"

"......그러게요."



우리 아버지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신다. 올해 햇수로 20년차가 되었지만 나와는 40년 이상의 나이차가 나는 아버지 세대는 이해하기 힘든 직업일 것이다. 예전에는 정확하게 설명을 해보려고 노력을 해본적도 있으나 나의 직업에 대해서 가족들이 정확하게 아는 것은 나에게는 좀 귀찮은 일이다. 성과는 칭찬대신 다음에도 잘하라는 채찍질, 스트레스는 나누는 대신 몇 배로 돌아올테니.


헤드헌팅의 역사는 1929년 미국 대공황시절 필요에 의해 생긴 직업이고, 우리나라도 1980년대 후반부쯤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평생직장 개념과 고용노동법과 관련하여 일부 외국계 기업들을 대상으로 활동하다가 IMF를 계기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이후 지금까지 급변하는 고용시장과 기업환경 덕분에 매년 성장하고 있다.

꽤 오래된 직업인데도 불구하고 결국 시대가 필요할 때 주목받는 직업이다. 공직에 계셨던 아버지와 그의 동료들이 평생 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은퇴하는 시기에는 필요치 않았다. 또 주목해 볼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실업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촉매가 되어 헤드헌팅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부모님이 나의 직업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가에 대해 돌아가보면, 단순한 세대차로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설명하기 힘든 직업들이 많아지고 있다.  

몇년 전 이직관련 멘토링 프로젝트에 참여했을때 UX디자이너였던 참석자가 한 말이 인상깊었다.

"UX디자이너라는 직업이 부모님들한테 뭐하고 있는지 설명하기 제일 힘든 직업인 것 같아요."

그러게. 나도 직업이 헤드헌터다 보니 UX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아는거지 아니었으면 구체적으로 알았을까 싶다.


UX디자이너 외에도 많다. 퍼포먼스마케터, 프로덕트오너, 풀필먼트전문가, 클라이언트솔루션 전문가 등등 나의 부모님에게 설명하려면 노력이 필요한 직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울수록 기업이나 구직자 혹은 이직자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직업들이 되어가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쟁으로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릴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 커리어 트랜스포메이션 전쟁에 뛰어 들어야 하는 걸까?


많은 이직 고민러들이 전직을 고려한다. 5년차 미만 경력자들은 상상했던 커리어와의 갭을 뼈저리게 느끼며 디지털 기반 전문가로 변신하기 위해 다시 교육을 듣고 자격증 시험에 몰두한다. 입사할 땐 괜찮았는데 재직 15년 동안 점점 하향 산업군으로 전락하고 있는 답답한 우리 회사에 더이상 비전이 없다고 생각되는 팀장들도 많다. 평생 현장에서 근무했는데 디지털 비중을 높이겠다는 사업 계획에 더이상 사내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영업 임원은 이제와서 갑자기 모든 것을 디지털 중심으로 생각하기 버거워 진다.


사회와 경제 변화에 따라 당연히 뜨는 직업도 있고 지는 직업도 있다. 이 흐름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트랜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다.

흔히 얘기하는 "요즘 뜨는 직업"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생각해보자. 디지털 마케터로 커리어를 전환하려면 바로 구글애널릭틱스 자격증을 따기 전에 다른 회사의 디지털 마케터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조사해보거나, 숫자를 보고 분석하는 일이 나의 적성과 맞는 것인지 냉정하게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아니면 그냥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럴싸한 수식어가 덜 붙어있는 트랜디한 직업이 아니라서 싫은 건 아닌지.


업종이 하향세를 타고 있으면 위기 의식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몇년 안에 사라질 직업같은 글들에 내 직업이 포함되어 있다면 긴장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직업이라는 것이 쉽게 전소되긴 어렵다. 혹시나 해서 완전히 없어진 직업을 찾아봐도 짚신 장수나 리어카꾼 같은 일이다. 본인이 원한다면, 그리고 가능하다면 성장 가능성이 더 큰 산업군으로 이직하는 것은 당연히 좋다. 하지만 그냥 성장이 더딘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해서 다른 일이나 해볼까라고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산업인지 아닌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 산업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도 상상해보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쓸 수 있는 역량 무기를 장착하고 업그레이드 하다 보면 그 변화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아빠에게 헤드헌터 대신 직업중개인이라는 단어를 썼다면 정확하게 이해하셨을까?

새로 생긴 직업군들도 물론 많지만 많은 직종들은 기존 기능에서 환경에 맞게 진화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나의 성향과 직종의 본질의 합에 더욱 집중하면 된다. 자격증과 스킬셋도 있으면 물론 좋지만 즐겁게 할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하자. 구지 하기 싫은 공부를 돈벌면서 또 해야 하나? 공부는 때도 있지만 명분이 있어야 한다.

나 역시 AI가 헤드헌터를 대신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겼던 적이 있다. 다행히 아직은 아닌 것 같고,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는 이직 시장에 더욱 섬세한 전략을 가진 헤드헌터가 필요한 상황이 되고 있다. 합성섬유가 개발되었다고 해서 실크를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했고 오히려 고급 실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으니 두려워 하지 말라는 이어령 교수의 말처럼, 모든 것은 다 쓸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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