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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프터글로우 Dec 22. 2023

취향 : 차(茶)-비산화차

녹차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를 하루에 최소 한 잔을 마시고 있고, 

아침에 커피를 안 마시면 머리가 아플 정도로 나는 카페인 중독이다.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아마 모두 공감할 것이다.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닌 '수혈'이라고도 표현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국은 커피를 사랑하는 나라, 

아니 커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커피가 더 친숙하고 좋은 나인데, 

최근에 갑자기 차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올해 갑자기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좀 안 좋아졌었다. 

병원에서도 그렇고 운동 선생님도 커피를 최대한 줄여보라는 얘기에 상심했지만, 

이내 커피 대신 그럼 차를 마셔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예전에 내가 봤던 영화 '경주'에서 다도를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신민아가 경주에 있는 굉장히 고즈넉한 한옥에서 차를 우려 마시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나는 예전에 그 장면들을 보고, 

나도 저렇게 차분하게 차를 직접 우려서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올 한 해 회사 일이 많아지고 점점 내가 할 수 있는 카파를 넘어서게 되어서 번아웃을 겪었다. 

다행히 여러 가지 방식들을 통해 일단은 고비를 넘겼고, 

그 이후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뭔지 탐구하는 시간들을 가져보자는 마인드가 생겼다. 

온전히 나를 위한 일들을 하나씩 찾아보고 싶던 와중이었고, 

내가 가만히 앉아서 사색에 잠기며 차를 우려 마시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갑자기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그래서 나는 한 번 차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혼자 차에 대해 검색을 하다가, 

연희동에 위치한 '다도레' 티하우스를 발견했다.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차에 대한 기본 지식을 접해볼 수 있는 원데이클래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클래스를 신청했고,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두 시간짜리 클래스를 들었다. 


선생님이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고

여러 다기들을 사용하여 직접 차를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해주신 말씀은 아직 나를 잘 모르지만 차와 잘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다고 하셨다. 

나의 차에 대한 궁금증, 호기심 그리고 차분한 성격, 이런 것들을 알아보신 것 같다. 

이어서 나에게 곧 운영될 차동아리에 가입할 생각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하셨다. 

나는 집에 가서도 내내 고민했고,

새로운 분야를 접해보고 싶은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어,

결국 차 동아리에 가입하여 매주 일요일 아침 차에 대한 수업을 들으러 가기 시작했다. 

차동아리를 간 첫째 날은 비가 주룩주룩 왔다. 

빗길을 뚫고 다도레로 향했는데, 

물론 바지와 신발은 다 젖었지만,

조용한 아침 선생님이 틀어주신 음악과 빗소리와 함께 차를 마실 생각을 하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첫 째 날은 육대 다류의 개념과 비산화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차는 산화가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그리고 발효가 되었는지 안되었는지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크게는 비산화차, 부분 산화차, 완전 산화차, 그리고 후발효차 이런 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여기서 더 자세히 들어가면, 

차는 또 육대(六大)다류, 즉 또 여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 이렇게 여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여섯 가지 또한 제다법에 따라 녹차는 산화가 아예 이루어지지 않은 비산화차로, 백차와 청차는 부분 산화차로, 홍차는 완전 산화차로, 그리고 흑차는 후발효차로 귀속된다. 

(여기서 황차가 빠졌는데, 황차는 녹차를 후발효한 것이기 때문에 약간 논외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다도레에서 진행한 4회 동아리 수업도 비산화차, 부분 산화차, 완전 산화차, 후발효자 이렇게 네 번으로 나누어 진행이 되었다. 

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때에는 녹차와 홍차는 아예 찻잎이 다른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차이가 아니라 차의 제다 과정이 다른 거라는 사실이 재밌었다.

동아리는 선생님이 차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고, 동아리원들이 시음하고 각자 차에 대한 생각도 공유하는 형태로 진행이 되었다. 

아 참, 나 말고 동아리 인원이 한 명 더 있었는데, 인상이 되게 깊은 분이었다. 

회사에서 재무 쪽 일을 오래 하시다가, 본인과 맞지 않아서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려고 하시는 분이었다. 

머리를 바짝 짧게 자르시고, 말씀하실 때 뭔가 본인만의 생각이 짙은 사람이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효에 관심을 갖게 되어 발효 음식, 음료 등을 공부하고,

차에서도 발효차인 보이차를 좋아하셔서 차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참여하셨다고 했다. 

내가 요즘 겪고 있었던 회사생활의 번아웃을 이 분이라면 잘 이해해 주실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심 반가움이 있었다. 


비산화차의 대표는 녹차이다. 

카페에서 녹차라떼는 마셨어도 녹차를 잘 마신 기억은 없다. 

동양에서는 찻잎을 어느 계절에 채집했냐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한 해에 비가 내리기도 전에 딴 찻잎은 우전(雨前), 그다음 순서로는 새작, 중작, 대작이다. 

서양에서는 찻잎을 따는 순서로 등급을 나누어 first flush, second flush, third flush 이런 식으로 등급을 나눈다고 한다. 

물론 대작이라고 해서 반드시 안 좋은 찻잎은 아니다. 

각 단계별로 특징이 다르다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어린잎일수록 아미노산이 많아 입안에 침이 고이는 듯한, 차를 마실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를 고급지다고 표현한다고 하는데, 회감 (입안에 남는 여운)이 좋다고 한다. 반면, 중작과 대작은 우리가 평상시 티백에서 마실 수 있는 맛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약간의 떫은맛이 있을 수 있지만 좀 더 바디감 있게 느껴지기도 하다. 

녹차에 이어, 말차와 호지차까지 설명을 해주셨고 맛보았다.

이 둘 다 녹차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차광여부에 따라 말차가 되고 증재여부에 따라 호지차가 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말차와 호지차를 재배하는 곳이 많지 않은데, 다도레에서는 한국에서 나온 말차와 호지차를 맛볼 수 있었다. 

격불이라는 행위 (말차 가루를 그릇에 넣고 거품을 내듯이 휘젓는다)도 시연해 주셔서 경험할 수 있었다. 

다만, 나는 말차는 아직 좀 어려웠다. 

쓰고 떫은맛이 강해 마시자마자 인상을 찌푸리게 되었는데, 이 매력에 빠지면 맛있게 느껴진다고 한다. 

반면, 호지차는 내 취향이었다. 

녹차인데 굉장히 구수하고 약간 커피 같은 맛의 녹차였다. 

카페인도 거의 없다고 해서 나중에 집에서 밤에 우려 마셔도 좋을 것 같았다. 

차를 마시면 속이 허해질 수 있어서 다과를 준비해 주신다.

이건 흑임자 떡인데, 정말 맛있어서 내 취향이었다.

차와 다과를 페어링 해서 마시고 먹는 즐거움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 정도로 매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다도레에서 처음 차를 경험한 나는 신선한 세계에 눈을 뜬 느낌이었다.

'차'를 마시는 걸 엄청 좋아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경험과 그리고 지식을 쌓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운 시간들이었다. 

남은 세 번의 수업과 그리고 차동아리를 통해 내가 배우고 느낀 점은 다음 편에 이어서 적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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