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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rightsea Oct 19. 2023

#1-24. 다섯 번째 별

내 것과 타인의 것의 차이

" 오랜만에 운전이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디로 가야 해요?"

" 뭐 길을 잘 몰라 그런 건 네비가 있으니 그걸로 해결하시면 되고 운전실력은 같이 타보면 알겠죠. 위치는 여기."

나는 그렇게 말하며 서우가 리스한 차량 네비에 핸드폰에서 검색한 울진가구 대리점을 찍었다.

" 거기는 왜...?"

 " 살게 있어서요. 가요."

서우는 오랜만에 운전이라 그런지 긴장한 티가 역력했고 운전석에 바짝 붙어 앉아 잔뜩 허리에 힘을 꽃꽂이 준 채 오로지 정면만 주시한 채 차를 몰았다.


" 저 서우 씨. 옆차와 간격도 생각해야죠. 여기서는 도로가 합류하는 지점이라 속도도 줄여야 해요."

옆에서 내가 뭐라고 말을 해도 잘 들리지 않는지 서우는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잔뜩 날을 새우고 네비의 안내에 귀를 기울였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가구점 앞에 차를 세웠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몇 번을 말을 해도 내 말은 못 들어서 결국 가구점에 도착해서 주차는 내가 했다.


" 주차실력은 꽝이네요. 하하하."

"  그럼 어떻게 해요. 다짜고짜 이 좁은 도로에 주차를 하라고 하다니. 미국도 주차난이 심각한 건 맞지만 이렇게 도로가 좁지는 않다고요. 주차공간도 그렇고. "

" 너무 걱정 말아요. 제가 완벽한 주차를 보여드리죠. "


서우가 내리고 나는 보란 듯 의기양양하게 보조석에 팔을 올리고 멋지게 차를 앞으로 쭉 빼고는 한 번에 후진으로 들어가서 완벽에 가깝게 좁은 주차공간에 차를 집어넣었고 차에서 겨우 몸을 빼내자 서우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 이야. 실력이 보통이 아니셨네요? 대단해요."


평소 습관처럼 몰아오던 차였지만 이렇게 별 대단한 일도 아닌 일로 칭찬을 받으니 나름 어깨가 으쓱대는 기분. 누가 말했던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서우와 함께 가구점에 들어주변을 둘러보며 어떻게 할지 고민에 빠졌다.

생각해 보면 내 성격에 그다지 가구가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왕 이렇게 된 거 집에 필요한 것넣기는 해야 했다.


" 선물할 거 찾으세요? 어떤 가구를 찾으세요?"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점원이 어느새 다가와 물었고 그런 점원의 질문에 나는


" 음. 일단 좀 둘러볼게요. 배송은 제 가능하죠?"

" 뭐. 고르시는 것에 따라 물건이 달라서요. 빠른 건 내일 당장이라도 가능하지만 주문품의 경우는 길게 이~삼주도 걸리니까요. "


 점원의 대답에 나는 진열상품을 둘러봤고 눈에 들어오는 침대에 가서 일단 앉았다.

 제법 쿠션감이 느껴지며 사이즈도 내 키에 딱 맞는 킹 사이즈에 두팔을 벌리고도 제법 남는 크기. 헤드 부분은 단정한 일자형에 협탁이 딸려 위에 간단히 조명등을 놓으면 되는 심플한 디자인.


" 색은 여기 진열되어 있는 색상이 다 인가요?"

" 주문하시면 원하는 색상으로 제작 가능하십니다. "


" 그럼 일단 이거 진열상품으로 주문할게요. 잠시 다른 물건도 좀 둘러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이내 소파가 진열된 장소로 갔다. 그리고 서우에게


" 소파는 어떤 게 좋을까요?"

" 누가 쓰실 건데요?"


" 제가요."

" 이사 가시게요?"

" 음... 뭐. 일단 네. "


" 그럼 주인이 취향에 따라 골라야죠. 안 그래요?"

" 그래도 서우 씨 취향을 반영하고 싶어서요. 전에 보니 모델하우스에서 진열상품을 그대로 주문하셨다고 했었는데 여기 종류가 다양하니 취향이 어떤지 한번 골라보세요. "


내가 그렇게 말하자 꽤나 진지하지만 나름은 고민에 빠진 듯 서우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소파에 앉아보고 촉감 만져보며 가죽을 살펴봤고 그런 그녀의 시선을 따라 가자 서우가 페브릭 종류보다는 소가죽 종류의 쿠션감이 좋은 소파를 더 선호한다는  알게 되었다. 그녀의 집에 있는 오크색보다는 화사한 베이지색상이나 화이트 톤에 가까운 회색계열 색상을 선호한다는 사실도.


" 소파는 저걸로 할게요. 서우 씨 식탁도 좀 봐주세요. "


내가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하던 소파를 고르자 이내 신이 난 듯 그녀는 쪼르르 식탁이 있는 층으로 올라가서 열심히 식탁을 보기 시작했고 나는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라 그곳으로 갔다. 서우는 생각보다 심플한 디자인의 식탁이 아닌 원목 결이 살아 있는 통 나무 상판의 긴 테이블을 선호했고 그 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높고 길게 설치된 조명을 보면서도 흡족해했다.

" 저 둘 다 같이 주세요. "

" 휘우씨.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에요? 누가 보면 신혼살림 장만하는 줄 알겠어요."

" 하하하하. 그러게요. "

나는 그렇게 웃으며 주문서에 사인을 하고는 이내 이체를 해서 잔금을 치르고 나왔다.




가게 문을 나서자 바로 앞에 가전대리점이 보였다. 나는 서우의 손을 잡고는 급히 건널목을 건너 그곳으로 향해 내친 김에 세탁기와 건조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모니터 2대를 샀다.

" 오늘 휘우씨 이상한 것 알죠? "


" 서우 씨 잠시만요. "

나는 서우의 말을 잠시 멈추고 전화를 받았고 전화기 속 김 부장은 애가 탄 듯 한숨을 길게 내 쉬었다.

" 도대체 얼마를 기다려야 먼저 전화를 하는 거야. 살아는 있는 거야?"


" 아 죄송합니다. 형님. "

" 왜 자꾸 무섭게 형님이라 그래. 이 과장. 무슨 일인데?"

" 저 형수님 출근하셨습니까?"


" 뭔 믿도 끝도 없는 형수 타령이야. 니 형수야 아까 출근했지. 그래서 너는 지금 어딘데?"

" 저 울진입니다. 그럼 형수님께 잠시 들리겠습니다. 자세한 건 출근해서 말씀드릴게요. "

" 뭐? 이 과장. 이휘.."

나는 급히 김 부장의 전화를 끊고는 이내 운전석으로 향해 힘겹게 다시 차에 타 차문을 열고는 그녀에게

" 타요. 이제 마무리 하러 가야죠."


" 어딜요?"

" 우선 타요. "

그렇게 서우를 차에 태우고  김 부장의 와이프가 운영하는 부동산으로 향했다. 형수는 언제나처럼 호들갑스럽게 도련님이라고 나를 부르며 살갑게 맞았고 어느새 커피를 내려와서 우리 앞에 가져다주었다.

 

" 저 형수님. 저희 집 매물 내놓은 거 거두려고요. "

" 어머. 왜요? 거기 1층. 내놓으시게? 거기 지금 안되는데? 공립어린이집 들어오려고 이야기 다되어 간다고 했잖아요. 안 돼요. 도련님."


" 아 거기 말고 위층요. "

" 응? 제일 위층? 거긴 또 왜? 거기는 성수기 임대 수익만 해도 짭짤한데... "


" 제가 집이 필요해서요. 거기서 살려고요."

" 아... 아...? 그래요? 어머 그러고 보니 곁에 계신 분은...?"

" 아 저는 휘우씨 지인입니다. 안녕하세요. "


" 어머 그렇구나. 난 또 예비신부인 줄 알았네. 남편이 별 말도 없었는데 그새 도둑장가라도 들었나 했더니. "

" 후훗. 형수님 그럼 그렇게 알고 위에 층에 임대 내놓은 거 거둬주세요. 그리고 1층 나가면 연락 주시고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

" 뭐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호호. 암튼 도련님은 일하나는 깔끔하다니까. "





그렇게 일을 마치고 차에 오르자 곁에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던 서우는 그제야 내게 물었다.

" 이제까지 저한테 한 말이 다 거짓말이었어요?"


" 네? 그게 무슨...?"

" 제게 집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숙소에서 자고 캠핑카에서 잔다고."


그렇게 말한 그녀는 마치 배신감이라도 드는 마냥 몹시도 기분이 상해 보였다. 왠지 그녀에게 자세한 설명이 필요해 보였다.

" 저 엄밀히 말하면 제가 집이 없다고 말씀드리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렇게 말하고 나는 급히 차를 몰아서 서우의 아파트로 향했다.


그리고 입구 슈퍼에서 간단히 물과 마실 음료를 사서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런 내 뒤를 따르던 서우는 이내 화가 난 듯 터 대며 나를 앞질러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그녀의 집 층수를 눌렀다. 나는 그녀의 층수를 눌러 다시 해제한 후 제일 위층을 눌렀다.


그러자 그녀가 놀라서 나를 바라봤다.

" 일단 가요. 가면 제가 설명 드릴게요. 사실 저도 어떻게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부동산에서 받아온 비번을 눌러 현관으로 들어서자 통창으로 멀리 바다전망과 아파트 단지 조망이 한 눈에 들어왔다.


서우의 집에서는 미쳐 보이지 않던 바다조망에 서우는 눈이 동그랗게 변해서 창가로 다가가 한참을 바라봤고 나는 흐뭇한 얼굴로 뒤에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는 천천히 뒤로 돌며 물었다.


" 어떻게 된 거예요?"

" 음. 제가 말했죠? 이제 지켜야 할 것이 생겼으니 숨겨야 한다고. 당신이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든 게 저란 걸 알게 되었고 그 마음을 안 순간 망설일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전 이제 당신을 지키고자 제 집으로 안내한 것이고 제가 숨기고자 하는 건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은 제게 없으면 안 되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다가가 키스를 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내 떨리는 손으로 내 목을 감쌌다.




뜨거운 키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뜨겁게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 채 함께 있었다. 그리고 밀려드는 갈증에 나는 목이 말라 생수병을 들어 목을 축였다.  그리고 망설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거의 고지가 눈앞에 보였거든요. 이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전 아내는 대학병원 간호 사였었죠. 나름 결혼 전에는 부족함 없이 버는 돈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다 써왔었고 쉬는 날은 고생한 자신을 위해 국내며 해외며 여행을 다닐 만큼 활달했었어요. 그래서 이곳까지 장거리 연애도 가능했었고 그런 그녀의 매력이 제 내성적인 성격의 탈출구 같았어요. 그래서 덜컥 결혼을 했어요.

 전 아내와 헤어지기 전만 해도 제가 원하던 대로 투자며 주식이며 모두 그렇게 마치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만 같았어요.

 그런데 본의 아니게 경기가 바닥을 치고 여기 입주가 미뤄지고 악재가 겹치면서 결국 아내도 유산을 하면서 불행이 밀려드는 것은 정말 한순간이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제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요. 그저 성공에 쫓겨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 막연한 기대감으로 남들 하는 결혼이란 것에 목숨 걸듯 그렇게 미친 듯 결혼을 하고 보니 우리 사이에 진정한 사랑이란 말보다는 그저 동료애 같은 마음이 더 컸다는 것을.


보통의 사랑으로 이어진 커플이었다면 어떤 힘든 순간이 와도 서로 의지하며 버티고 서로에게 응원을 하고 힘이 되어 줬을 텐데. 그녀와 저와의 사이에는 그런 게 없었죠.

 집에 들어오면 그녀는 잘 지내던 자신을 외롭게 뒀다고 원망하기 바빴고 악착같이 아껴야 힘든 순간을 버틸 수 있었기에 경제적으로 조여드는 제 경제관념을 비난하기 바빴죠. 그런 사소한 것들이 결국에는 둘 사이에 너무 큰 틈을 만들어 버렸어요.

 몇 번을 조금만 버텨달라고 애원을 하고 힘든 순간을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매달 봐도 소용이 없었죠. 그녀에게 그림자 마냥 따라다닌 향수병은 , 그녀 친구들과 삶의 차이는 그리고 그런 것들로 인해 돌아오는 비난은 제게 너무 큰 상처였거든요.


그래서 이혼을 하고 그녀에게 같이 살기로 했던 집을 위자료로 주고 입주 전 사두었던 빌라를 처분해서 나눠주고 남은 돈을 여기 갭투자를 했어요. 그리고 또다시 미친 듯 돈을 벌었죠. 직장 생활하며 틈틈이 주식으로 돈 모은 것과 갭투자했던 돈으로 다시 1층을 사고 저는 숙소에서 생활하고. 그게 다예요. "


" 갭투자라는 게 어떤 거예요?"

" 아.. 훗. 음. 일종의 부동산 거래인데 한국에는 전세라는 개념이 있어요. 그걸 이용해서 집을 매매하고 집을 임대해 주는데 그 돈의 일부만 가지고 투자해서 월세를 받는 대신 수익을 얻는 구조로 집을 사서 투자하는 거죠. 저는 월급의 거의 80% 이상을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최근에 부동산이 오르면서 제법 수익이 잘 나온 편이라 이 집도 갭투자용으로 샀다가 이제 절반 정도는 갚았어요. 나머지는 아직 물론 은행 지분이지만요. 1층은 거의 대부분 갚았고요. 이 집을 사려할때는 입주 때 분양금에서 -1억 5천까지 갔었거든요. "


" 아... 부동산도 경제도 경기를 타니까.. 흐름이 있으니 내리면 오를 때가 있는 건 맞는데 휘우씨는 그 흐름을 잘 맞추셨네요?"

"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제게는 거의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죠. 매일 밀려드는 빚 독촉에 아내의 비난에... 생각만 해도 하루하루가 끔찍했어요. 희망이란 없는 기분이었거든요. 임신한 아내한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라고 했으니 말 다한 거죠. 제가 그때는 정말 나쁜 놈이었죠. "


내가 창문을 바라보다 말없이 바닥을 바라보자, 서우는 어느새 곁에 다가와 내등 뒤에서 나를 안았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사람의 미래는 앞은 누구도 알 수 없잖아요. 안 그래요? 같이 하기로 했다면 서로 믿는 것 말고는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 같아요."


나는 고개를 돌려 그런 서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서우 씨. 전 서우 씨가 제 차에 탔던 그날 생생히 기억해요. 그 긴 검은 생머리. 그리고 당신의 눈. 어느 틈에 당신이 내 속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이제는 정말 당신이 없는 순간은 상상도 안 돼요. "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애틋하게 꼭 끌어안았다.

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 보여주고픈 하루. 그리고 그녀. 서우.

그녀는 내게 어느새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서우는 달랐다.

 아니 달랐나 보다. 그녀에게 나는 나란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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