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rightsea Oct 21. 2023

#1-25. 다섯 번째 별

그녀의 질문


서우는 내게서 한발 물러나 물끄러미 집안을 둘러봤다.

그리고 이내 내 등을 다독여 주더니 나를 바라보고는 방긋 웃었다.

" 힘내요. 이렇게 집도 생겼으니 안심이네요. 이제 마음 둘 곳도 생겼으니 조금은 편안해진 거죠?"


그렇게 말한 그녀는 윗옷을 챙겨 현관으로 향했고 당황한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신발을 신는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 서우 씨. 저는 서우 씨께 오늘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제 진짜 모습을 보여 드렸다고 생각해요. 제 속이라도 보여 달라면 전부 꺼내 보여드리고 싶은 만큼 진심을 담아서..."


내 손끝은 떨리고 있었고 두 눈은 불안하게 흔들리기만 했다. 그런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 휘우씨 마음 조금은 알겠어요. 하지만 휘우씨.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괜찮은 여자도 아니고 당신과 같이 하기로 한 것도 아닌걸요. 전 당신과 어떤 약속을 한 것도 없어요. 그러니 전 오늘 여기까지."


그렇게 말하고 웃으며 돌아서는 그녀에게 내게 잘 쉬라고 말하며 문을 나서는 그녀에게 더 뭐라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도대체 내가 어디서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서우가 나가고 나는 그렇게 넋을 놓고 그 자리에 그대로 돌처럼 굳어 주저앉고 말았다.






 어느새 창가에 해는 뉘엿뉘엿 지며 검붉게 물들고 있었고 애타는 내 마음에 해답은 없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이리 뒹굴 저리 글 거려 봐도 답도 없이 시간은 흘러갔고 저녁 8시 반 무렵. 초인종이 울려 보니 주문한 침대만 덩그러니 배달되어 왔다.


침대를 받고 안방에 넣고 또 그렇게 침대에 걸터앉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혼자 입에 물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 이 시간에 누구지?'


" 와 정말 이 우. 난 놈이야. 다시 봤어. "


김 부장이었다.

편의점에서 산 맥주와 두루마리 화장지와 안주거리를 잔뜩 양손에 쥐고 집을 두리번거리며 들어온 김 부장과 와이프는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란 말 없어도 알아서 신발을 벗고 들어왔고 형수의 손에는 이불 한 채가 들려 있었다.


" 봐요. 내가 뭐랬어요? 아무것도 안 가져다 놨을 거랬죠?"

" 아냐. 잘 찾아봐야지. 어디 어디다 색시를 숨겨둔 거야?"

그렇게 말하며 김 부장은 이내 이방 저 방을 연신 둘러보며 돌아다니다 기어이 바닥에 안주를 내려놓으며


" 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 아무것도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 봤다는 거야. 그 도깨비신부는?"


" 흐음..."

긴 한숨과 함께 내가 맥주캔을 따서 몇 모금을 마시고 소주를 부어 한번에 쭉 들이키자 놀란 김 부장은

" 어어 이 과장 미안해. 너무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내가 너무 급했어. 미안."


김 부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연이어 또다시 캔을 따서 소주를 반 병 부어 한번에 들이켜자 두 부부내외는 서로 바라보다 궁금증에 못 이겨,


" 누군데? 누가 이렇게 속을 태우는 거야? "

김 부장은 핑계라도 대듯 화를 내며 같이 맥주캔을 들어 쭉 들이키며 역정을 냈고 그런 김 부장의 손을 잡은 형수는


" 그냥 속시원히 말해요. 아가씨가 싫대요? 도련님? "


" 흐음."


내 긴 한숨에 둘은 서로 마주 보다


" 말할 기분 아니면 뭐 어쩌겠어요. 그럴 수 있는 거죠. "


그렇게 말하며 형수는 이내 소주병을 들어 쭉 들이켰다. 그러자 놀란 김 부장이 병을 뺏었고 그런 김 부장을 째려보던 형수는


" 미안해요. 눈치 없는 이 양반이 기어이 못 참고 온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걱정돼서 오긴 했는데... 응? 도련님. 말해봐요. 여자마음은 여자가 제일 잘 알지 않겠어요?"


문득 형수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아무래도 아무 말 않으면 정말 이 둘이 이대로 여기서 날을 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짧게 말하려 애를 썼다.


" 마음 가는 여자가 생겨서 그 분 일을 몇 번 도와주다 보니 마음이 커져서 오늘 내친 김에 집도 보여주고 고백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들었나 봐요. 집만 보고 갔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형수는

" 어머 뭘 걱정 해요. 집 봤으면 이제 집에서 진득이 기다리며 기회를 엿보면 되지. 안 그래요? 뭐 지금껏 준비가 안돼서 새장가 못 들었나? 임자를 못 만나서 때를 기다려 온 건데 이제껏 기다린 거 뭐 어때요? 조금 더 기다린다고 별일 생기겠어? 호호호 "


그렇게 말하며 소주병을 들어 마저 마시자, 곁에서 못마땅하게 앉아 있던 김 부장이 골똘히 생각하다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 민경사?!! 민경사야?"


김 부장의 말에 맥주캔을 쭉 들이켜다 내가 크흡 하고 뱉어내자, 이내 김 부장은 표정이 굳으며 어두워졌다. 그리고는


" 흠.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이 과장 월요일에 봐. 당신은 일어나고. 갑시다."


" 어머 당신 갑자기 왜 그래요?"

형수는 당황해서 나와 김 부장을 연달아 바라봤다. 내가 맥주캔을 입에서 천천히 떼어내며 김 부장을 올려다보자 눈치 빠른 김 부장은


" 가자고. 이럴 분위기 아니야. 휘우 넌 술 좀 더 먹어. 그래야 오늘 잠들겠다. "


그렇게 말하고는 궁금해 미칠 것만 같아 하는 형수를 억지로 끌고 나가버렸다.






요란스레 김 부장이 다녀간 자리는 더 뒤숭숭하고 정신이 없었다. 왜 김 부장은 서우인걸 알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린 거지. 내게 조언을 해주지도 않고.

 낮에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 서우만큼이나 김 부장의 행동도 꽤나 이해가 안 되기는 매 한 가지였다.

 도대체 어떻게 살면 김 부장은 내 그 몇 마디에 서우인 줄 알고 내가 별 다른 설명도 안 했는데 상황을 어떻게 파악을 한 것일까.


김 부장이 사다 놓은 맥주캔을 먹다 보니 어느새 빈 캔만 가득했고 나는 주섬주섬 윗옷을 걸쳐 입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고 앞에 나와 담배를 한대 물고는 위를 올려다보니 서우의 아파트에 불이 꺼져있었고 나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직 잠들 그녀가 아닌데.


긴 담배연기.

도대체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나가버린 걸까.


긴 한숨을 쉬고 나는 다시 집으로 향해 잔뜩 사 온 맥주를 다 마시고 깊은 잠에 빠졌다.





아침부터 부산히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눈을 뜨니 어제 주문한 가구며 가전이 배달되어 들어왔고 정신없이 물건을 받아 대충 위치를 정해 알려줬다. 마지막 가전이 들어와 나가며 박스며 집에 있던 큰 분리수거를 몽땅 가져 나가고 나름 남아 있던 쓰레기를 편의점에 사 온 봉투에 대충 분리수거해서 내친김에 1층 분리수거장에다 내다 버린 후 집으로 들어오자 출출해졌다.


갑자기 덩그러니 내게 주어진 일요일 점심.


여느 때 같으면 지금쯤 일어나 캠핑카에서 아점으로 전날 잡은 문어를 넣어 컵라면을 땡기고 있을 터인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덩그러니 혼자 집에서 빈 속으로 점심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다니.

  

생각해 보면 이혼을 하고 나는 매 끼니에 대한 신경을 거의 쓰지 않고 살아왔었다. 배가 고프면 구내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거나 저녁이면 퇴근길에 근처 식당에서 토스트나 김밥으로 대충 때우고 그것도 싫으면 물릴 대로 물린 회사 구내식당에서 꾸역꾸역 국에 밥만 말아 몇 숟가락 뜨고 나왔고 평일 저녁이면 숙소에서 라면을 야식 삼아 후딱 한 그릇 먹고 차트를 분석하기 바빴고 주말이면 그 길로 캠핑카로 가서 낚시 장비를 챙겨 낚시를 하거나 그것도 물리면 캠핑카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었다. 그래서 내게 매 끼니 식사는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허기는 일상인지 오래였다.


 하지만 서우를 만나고 나는 언제부터인가 매 식사를 신경 쓰고 뭐를 먹을지 고민을 하고 어디를 갈지 항상 인터넷을 뒤지며 챙겨보고 있었다.


  주말이면 어디를 가야 차가 덜 밀리고 편안히 식사 후에 걸을 수 있을지 차가 이동하는 동선내 편하게 들어가 커피라도 마실 수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는 어디인지 코스로 찾아가며 틈틈이 알아뒀는데 그 두 달이 내 몇 년의 생활을 뒤엎어버렸다.


마치 끼니때 안 먹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 마냥 초인종처럼 점심때가 되자 미친 듯 배는 고동치기 시작했고 심지어 식욕이 없는데 짜증까지 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나는 그녀에게 같이 하자고 약속을 한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백을 일방적으로 했을 뿐. 그녀의 대답을 들은 것도 아닌데 그녀와 몇 날 며칠을 그녀의 집에서 신세 진 것만 가지고 그녀와 단 두 번 키스를 한 것만 가지고 마치 서우가 나와 함께 한다고 대답이라도 한 것처럼 넘겨짚고 설레발을 쳐서 일을 크게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빈 속에 생각할수록 신경은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서 더는 못 견뎌 나는 결국 옷을 챙겨 입고 바닷가 근처 횟집으로 향했고 늘 주문하던 대로 매운탕을 시켜 혼자 그렇게 밥 두 공기에 허겁지겁 주린배를 채웠다.


" 지난번에 미역국은 잘 먹였수?"

" 아.. 네. 그때 정말 감사했어요. 메뉴에도 없는 걸 불쑥 전화드려 부탁드린 건데. 진짜 잘 먹었어요. "


계산을 하는데 문득 사장님이 내게 물어 대답을 하고 나오다 보니 그때 생각이 났다.

나는 다시 천천히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해 한참을 걸어 바닷가 길을 따라 난 공원으로 향했고 그렇게 걸으며 생각을 했다.


 아무리 서우가 아니라고 해도 돌이켜 보면 분명 그녀도 내게 흔들리고 있었고 마음이 있는 게 느껴졌기에 내가 그렇게 행동해 왔었는데 내 본능과 행동은 분명 그녀의 반응을 보며 행동한 것인데 왜 무엇 달랐을까.

어디서 그녀와 생각의 차이가 생긴 것일까.


 걷는다는 것은 때로는 예기치 못하게 생각지 못했던 상황에 대해 멀리서 조망하며 우문현답을 가져다주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머리가 복잡할 때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한참을 걷고는 한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 걸음이 어느새 두 시간을 넘어갈 때쯤. 머릿속에 희미하게나마 실마리가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말. 그녀의 대답.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토막토막 떠오르는 그녀와의 대화 장면들.

메아리처럼 울려대는 그녀의 진심.




" 꼭 그래야만 할까요? 애초에 잃어버리지 않도록 할 수도 있는데 굳이 잃지 않아도 알지 않아도 되는 감정이라면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죠."


" 그거 아세요? 휘우 씨? 휘우씨는 가끔 감정이 드러나는 행동을 할 때는 말 끝을 흐려요. 후훗. "


" 이제껏 목표로 했던 보이지 않는 존재를 증명하려던 마음이 어느 순간 뒤 바뀌어서 저를 숨겨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려서 저도 조금 난감해졌어요. 이 일을 하면서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오히려 한국에 들어오며 보이지 않는 실체에 한발 더 다가선 느낌이 들어서 나름은 기대를 했었는데 어떻게 다가설수록 더 멀어지고 안갯속을 걷는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이제는 혼란스럽기까지 해요. 내가 과연 증명해야 하는 존재가 무엇이고 도대체 내가 쫓기고 있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뭔지. 뭐가 나를 이렇게 불안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지. "


" 이제 조금은 솔직한 모습을 보이시네요.  "


그녀는 분명 내게 말하고 있었다. 분명하고 뚜렷한 답을 찾고 있다고.

하지만 매번 나는 그때마다 서우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때로는 관심을 돌리려 대답을 회피하거나 내 속내를 숨기며 다른 대답을 늘어놓았다.


나는 망설이다 그녀에게 톡을 보냈다.


" 서우 씨가 제게서 찾는 답을 알 것 같아요."




 












작가의 이전글 #1-24. 다섯 번째 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