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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아 Mar 19. 2021

담배와 감성지수의 상관관계

“으~~응” 있는 힘을 다해 내뱉는 듯한 신음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엄마를 본다. 엄마는 가느다랗게 눈을 뜬 채 천청을 바라보고 있다. 저 안간힘 속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을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지나온 삶들에 대한 허망함도 있을 것이고, 곧 마주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겨질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클 것이다. 아스라이 동이 트고 있는 중이다.   

  

엄마에게 물을 먹일까 하다가 빨대컵에 우유를 덜어서 먹인다. 또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틈날 때마다 열량이 날 만한 뭔가를 먹여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듯하다. 엄마는 우유 한 모금 간신히 삼킨 후 이내 입을 꾹 닫는다. 엄마는 지금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 중이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곁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병동 책꽂이에 꽂혀 있는 이외수의 「절대강자」를 꺼내온지 3일이 지났다. 책을 펼쳐 들었다. 믹스커피도 한 잔 탔다.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했는데 7년 전에 끊었던 담배 생각이 커피 한 모금과 함께 훅 들어온다.      

지금의 짝꿍과 연애를 시작하고 담배를 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걸리기도 했다. 그때 짝꿍의 경멸 어린 눈빛을 잊지 못한다. ‘너 같은 놈이 무슨 담배를 끊냐! 그냥 펴라 펴! 못난 자식!’이라고 하는 듯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로는 수천 마디의 말 보다 눈 빛 하나가 훨씬 더 큰 각성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지를 그때 처음 알았다. 카리스마 넘치는 그 매서운 눈빛도 담배 욕구를 이길 수는 없었다. 어렵게 결혼에 골인을 했지만 담배를 끊지는 못했다. 두 번 다시 그 경멸스러운 눈 빛을 보지 않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건 금연이 아니라 들키지 않기 위해서 얄팍한 잔머리를 굴리는 거였다. 결혼 후 금연을 하기까지 3년 여동안 평생 굴릴 잔머리를 다 굴린 듯하다.


푸켓으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였다. 공항에서부터 사흘 동안 꼼짝없이 담배를 피우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걸리지 않고 담배를 피울 수 있을까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 패키지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짝꿍이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에 들어갔다. 지갑을 들었다. 신발을 신고 숙소를 빠져나와 곧바로 편의점으로 내달렸다. 숙소에 들어오기 전 편의점 위치를 봐 둔 터였다. 말보로와 라이터를 받아 들고 편의점을 나왔다. 쪼그려 앉아 두 까치를 연속으로 피웠다. 한 까치를 피울 때는 몽롱했고 두 까치를 피울 때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다시 숙소로 내달렸다. 손을 씻고 입안을 헹구고 옷을 벗어서 털었다. 그리고 짝꿍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가 곧바로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캬~ 기막힌 완전 범죄.     


담배를 완전히 끊은 건 딸내미가 태어나는 해 1월 1일이다. 딸내미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말자는 모토를 걸었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래도 가끔씩 담배 생각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이럴 때다. 밤늦은 시간 혼자서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끙 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운전 중 신호등에 걸려 멈춰서 옆에 멈춘 차량의 운전자가 여유 있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 알싸한 공기와 뿌연 안개가 가득한 늦가을 아침 출근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 잠자리에 대자로 누워 천정을 볼 때, 그리고 오늘 아침처럼 이른 새벽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펴 들었을 때다. 식사를 한 후나 화장실에 갈 때 담배를 피워줘야 한다는 흡연자들이 느끼는 일반적인 경우에는 담배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있어 담배는 감성적인 무언가를 채워줄 하나의 소품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의 담배 피우는 모습이 멋있어서 따라 피우기 시작했던 것처럼... 그러다 보니 금연과 함께 감성지수(EQ)가 떨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들기도 한다. ‘금연과 감성지수의 정비례’라고나 할까! 뭐 어쨌든 비록 감성지수는 떨어지고 있으나 대신 건강지수(HQ)는 올라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건강이 좋아졌다거나 달리기를 해도 숨이 안찬다거나 하는 건 잘 모르겠다. 매년 받는 건강검진에서 이상소견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지만 만일 금연을 하지 않았다면 그 이상소견들이 더 많이 나왔을 거라고 자위할 뿐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입속이 깨끗해졌다는 것. 2년 만에 가는 치과에서 스케일링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한 70살쯤 되면 담배를 다시 피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허옇게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정원에서 화초에 물도 주고, 야외 벤치에 앉아 믹스 커피 한 잔에 독서를 하며 피우는 담배 한 모금이라니... 감성 쩌는 장면 아닌가? 짝꿍이 들으면 또다시 경멸 어린 레이저 광선을 쏘아댈 것이 분명하지만. 밑밥을 까는 차원이다.


<커버 사진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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