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희 Feb 05. 2023

대문 없는 집

잠자고 있던 내 볼을 누가 살짝 꼬집는다.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도 무시한 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크고 거친 손이 다시 한번 내 볼과 미간을 잡으며 장난을 친다.

잠꼬대인지 짜증인지 모를 외계어를 내뱉으며 눈을 살짝 떠보니 익살스러운 표정의 아빠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아빠의 활짝 웃는 얼굴. 눈을 뜨자마자 웃는 아빠의 얼굴을 마주하니 기분이 묘했다. 운동 직후의 상쾌함으로 기분이 좋으셨던 걸까. 그 시절의 아빠는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 동네 뒷산을 다녔었다.


그렇게 아빠가 나를 깨우던 게 중학교 1학년쯤이었던가. 아빠는 자식들에게 말수가 적은 편이었고, 애정을 드러내는 일에도 인색했다. 자식이 많으면 그만큼 사랑도 나눠가지는 법. 아빠가 나를 귀여운 딸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나는 육 남매 중 셋째로 자랐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책이 자리 잡아갈 때쯤이라 어딜 가서 육 남매라고 하면 다들 화들짝 놀래기부터 했다. 친구들은 거의 네 식구였는데 우리 집만 여덟 식 구라니.

새 학기 때 제출하는 호구조사서에 가족관계를 적는 칸이 부족해 동생들을 여백에 써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은 자동차 좌석 시트와 부품을 판매하는 가게를 운영했다. 그 당시만 해도 차를 구입하면 좌석 시트를 따로 사서 씌워야 했다. 등허리를 펼 수 없는 차 안에서 두 분은 웅크린 채 차 바닥을 깔고, 시트를 씌운 좌석을 다시 차에 장착하는 작업을 주로 하셨다.  

우리는 낡은 차를 탔지만 우리 가게에는 날마다 새 차가 드나들었다.

한 때는 제법 가게가 잘 운영되었다. 유독 장사가 잘 되는 날이면 그날 저녁 밥상에 마주 앉은 부모님은 당장이라도 부자가 될 것처럼 매우 신나 하셨다. 그런 부모님을 지켜보며 나도 덩달아 기대에 부풀어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대식으로 잘 꾸며진 집에 나만의 방을 갖는 그런 상상을.   


호탕하고 추진력이 좋은 엄마는 아빠를 설득해 빚을 내어 자동차 시트를 대량으로 사놓았다. 여유 있던 가게의 공간은 큼직한 자동차 시트 박스로 빼곡하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가게 안에 딸린 집에서 살았던 우리는 조금 더 넓은 공간을 찾아 가게에서 채 100미터도 되지 않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새로 이사 간 집은 널찍한 마당에 창고가 딸려있는 집이었다. 집의 경계를 구분하는 담이 있었지만 들어오는 사람을 막을 대문은 없었다. 집에서 시작되는 담이 인도로 연결되는 구조로 보아 낮은 대문이 있었을 법도 한데, 전에 살던 사람이 떼어 놓은 건지 부모님이 편하게 드나들기 위해 없애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부모님은 포터차를 마당 깊숙한 곳까지 끌고 들어오곤 했다.


넓은 마당과 달리 집 안은 그리 넓지 않았다. 쓸 수 있는 공간보다 쓸 수 없는 공간이 많은 집이었다. 엄마가 사놓은 차 시트는 계속 배달되었고 급기야 집의 창고까지 박스로 꽉 채워졌다.


시멘트가 덮어버린 마당을 지나 집으로 들어가면 주방이 딸려있는 거실이 나왔다. 유독 컸던 안 방은 우리 가족의 공동생활공간이 되었다.  남향으로 난 방의 큰 창으로 매일 아침 햇볕이 여과 없이 들어왔었다.

한창 아침잠이 많을 중학생 시절, 감은 눈 틈으로 밀고 들어오는 볕을 막으려고 질끈 눈을 감아버리려면 어김없이 아빠가 나를 깨우곤 했다. 일어나라는 말에 미동이 없으면 아빠는 잠든 내 얼굴에 장난을 쳤다.  

일어나기 싫은 마음에 몸부림치며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끌어올리면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불을 낚아채 개켜 놓았다.

그 순간에 마주했던 아빠의 얼굴. 그 집에 살았을 적에 나를 깨우던 아빠의 얼굴은 생업에 찌들어 낮이나 저녁에는 볼 수 없는 익살스럽고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살갑게 나를 깨우는 아빠가 낯설면서도 그 속에서 아빠의 사랑을 느꼈다. 대문 있는 집이 없어도 되겠다고 아주 잠시 생각했다.   

내가 살았던 집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서 왜 아빠가 나를 깨웠던 그 찰나의 순간이 떠올랐을까.


가게와 집의 창고를 가득 채웠던 자동차 시트를 부모님은 끝내 다 팔지 못했다. 처분하지도 못하고 몇 년 간 끌이고 있던 그 시트들은 부모님의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시트 박스를 이고 지며 살다가 우리는 다시 가게 안의 집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살던 공간을 부수고, 가게의 벽을 허물어 뒤로 이어진 주택과 연결했다. 가게 내부를 거쳐야만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이번 집에도 대문은 없었다. 집에 인터폰이 있었지만 열 수 있는 대문은 없앤 지 오래였다. 내게 대문은 어떤 의미였기에 어린 시절 대문이 딸린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걸까.


그 시절 나는 종종 대문의 열고 집에 들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대문 옆에 벨을 누르면 인터폰으로 가족 중 누군가의 음성이 흘러나오고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나의 남자친구에게 인사를 건네고 아쉬운 듯 대문을 살짝 밀고 집으로 들어간다. 사춘기 시절에 꼭 해보고 싶은 장면이었는데..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았나 보다. 그 시절 나에겐 남자친구와 대문은 모두 상상 속에만 존재했으니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