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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Dec 01. 2022

08. 퇴사를 말하는 게 어려운 이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내 회사가 아닌 이상 죽을 때까지 회사에 뼈를 묻는다는 건 직원 입장에서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물론 회사가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면 제외)


언젠가는 떠나야 할 회사이지만 유독 스타트업/좆소에선 퇴사 과정이 녹록지 않다. 퇴사자는 회사를 욕하고 회사는 퇴사자를 욕하는 구질구질한 모습이 퇴사 후까지 약 1개월은 지속된다. (길게는 반년 동안 서로 욕하는 것도 목격함)


그렇다면 왜 유독 스타트업과 좆소에서 퇴사를 말하는 게 어려운 걸까? 나는 몇 번의 퇴사와 이직을 거치며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1. 갑자기 퇴사요?

그동안 그만 둘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웃으며 일하다가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는 게 회사 입장에서 당황스러울까 봐 민망하다.


2. 집에 일이 생겨서..

퇴사 이유에 대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게 불편하다. 진짜 이유는 회사 사람이 X 같아서인데 그렇게 말할 수 없으니 변명을 해야 하고 둘러대는 과정에서 거짓말이 티 날까 두렵다.


3. (슬랙 알림) ㅇㅇ님 나가요?ㅠㅠ

갑자기 모든 관심이 나에게 집중되는 걸 견디기 힘들다. 퇴사를 한다는 소문이 전사에 빠르게 퍼지고, 왜 퇴사를 하느냐부터 시작해서 이직할 곳은 있냐.. 퇴사 당일까지 수많은 커피 챗(청문회 자리)에 소환된다. 회사 분위기가 갑자기 X 되는 건 덤. (그 책임은 온전히 퇴사자에게 있다는 분위기)


4.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퇴사 통보 - 인수인계 - 퇴사]를 하는 기간 동안 남보다 못한 사이를 견뎌야 하는 게 정신적으로 힘들다. 퇴사를 말하고 바로 떠나는 게 아니라 최소 몇 주, 길게는 몇 달 동안 껄끄러운 상태로 얼굴 보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다못해 연인관계도 사귀다가 헤어지면 말이 나오는 순간 모든 게 끝나는데, 퇴사는 퇴사 통보하고도 보통 한 달은 같이 일을 해야 한다. (X발)


5. "퇴사요..? ㅇㅇ님이 나가면 어떡해요."

퇴사 통보와 동시에 대표+리더들의 가스 라이팅이 시작된다. 퇴사=배신이라는 이상한 조직/집단주의가 퇴사를 더욱 힘들게 한다. 환승 이직하는거녜서 아니라고 하면 여기 나가고 갈 곳 없다고 세뇌 시작. 갑자기 리더로 앉혀주겠다느니 (저 이제 곧 5년찬데요.) 월급을 올려주겠다느니 스톡옵션을 더 주겠다느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다급하게 늘어놓는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잡히면 그날로 그냥 나는 반동분자, 배신자, 역모를 꾸민 대역죄인, 철천지 원수.. [퇴사 설득 > 반동분자 낙인]의 과정에서 임직원의 태도 변화가 극적이라 그걸 유심히 관찰해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



퇴사 통보 후 사측에서 주로 하는 말:

00일에 나가신다고요? 그건 좀 힘들 것 같아요. 1개월 전부 채우셨으면 합니다. 법적으로 어쩌고 저쩌고.

인수인계는 철저히 해주세요. (나도 인수인계 못 받았고 후임자도 안(못) 뽑았으면서 이런 소리 하는 게 유머)

근데 어차피 나가는 마당에 솔직히 말해봐요. 평소에 회사에 있던 불만 같은 것들..(이때 설득돼서 말해봤자 회사는 안 변함. 그냥 끝까지 조용히 있는 게 최선이다.)

이직할 곳 있어요? (있다고 하면) 거긴 뭐하는 데에요? 조건이 더 좋아서 가는 거예요? (없다고 하면) ㅇㅇ님이 원하는 걸 여기서 할 수는 없을까? 

일단 알겠습니다. 너무 아쉽네요. 갑자기 이렇게 나가신다고 하니까.. 당황스럽고. 저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무슨 헤어지자고 했냐. 생각 정리는 무슨..)

이 엄동설한에 나가면 얼어 죽어요.

나가서도 연락하고 지내요. (핸드폰 번호 교환 혹은 링크드인 1촌 신청을 하며)

다른 회사 가보면 알겠지만 다 똑같아요. 여기서 뭐 아쉬웠거나 힘들었던 점이 다른 데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저희가 앞으로의 향후 비전이.. 장기적인 플랜이.. 내년 1/4분기 KPI가.. 투자/채용 계획이... 구구절절.. (X나 손 놓고 있다가 갑자기 퇴사한다니까 회사의 비전이 생기고 채용 계획이 생기는 기적)

ㅇㅇ님 없으면 안 되는데~ 진짜 꼭 나가야 돼요? 지금 ㅇㅇ님이 하고 계신 업무가 다 메이저하고.. 대체할 사람이 없어요. (대체 인력 없는 게 자랑인 줄 암)



아니다 싶을 때 나가는 것도 큰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한 법. 진짜 성의 없이 무단 퇴사를 하는 게 아닌 이상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퇴사자를 응원한다. 오늘도 2천만 직장인들의 무사 퇴사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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