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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Sep 20. 2023

10. 누가 요즘 직장 내 괴롭힘을-2

진짜 하더라

본가에 잠시 지내며 주말을 앞두고 열심히 야근을 하고 있던 나. B에게 온 전화를 받으며 모니터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는데, 눈물기 머금은 목소리로 그가 한 말은 대충 "조셉(가명/대표)에게 전화가 와서 얘기를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가라는 뉘앙스였다.. 혹시 들어봐 줄 수 있겠냐. 지금 너무 갑작스럽고 혼란스러워서 명확한 판단을 못 내리겠다."였다. 오랜 기억을 다시 되짚어보아도, B와의 통화 속 대표는 '너 나가'라는 말을 신중하게 고른 단어들로 돌려 말하고 있었다. '우리 회사와 fit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둥, '다 괜찮은데 본인만 문제를 만들어서 분란을 일으키는 거다'라는 식의 태도는 누가 봐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뜻으로 들렸는데, 난 B에게 대표에게 다시 전화를 해서 말의 의중을 정확히 알려달라고 조언했다. 그 결과, 모월 모일 B가 퇴사를 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B의 퇴사 이후


그 후의 이야기는 뻔하다. 좆소.. 아니 스타트업 특유의 퇴사를 쉬쉬하는 분위기에 따라 B의 퇴사(권고사직) 안내는 대표의 슬랙 메시지 하나가 전부였다. (그것도 직원 4명이 있는 팀 그룹챗이어서, 나머지 직원들은 B의 퇴사소식을 소문으로 건너들었다.) 다들 그동안 B가 겪어온 고초를 알았기에 나서서 송별회를 해주고 모두 1:1로 만나 따듯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회사가 뭐 같으면 직원들이 착하고 위기 상황에 똘똘 뭉쳐 전우애를 발산하는 장면.. 이젠 너무나 익숙한 레퍼토리다.


프로퇴사러인 나는 이 일 이후로 회사에 대한 만정이 다 떨어져서 조용히 퇴사를 준비했다. 주변 팀원들이 자꾸 입퇴사를 반복하는 것도 지쳤지만, 백두혈통의 직원 한 명을 개선하지 못해서 오히려 피해자를 쳐내는 회사의 작태에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업무량, 근무 환경 등 대부분이 만족스러운 회사였는데 도무지 몇 명의 개국공신들의 텃세천장(유리천장 같은.. 보이지 않고 넘어설 수 없는 것)을 뚫을 자신이 없었다.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서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며 어린 여공들이 열약한 환경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는 것을 보고 돕다 해고된 후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다 결국 불에 타 생을 마감한 전태일 열사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때부터 50년이 넘게 지난 지금은 달라졌을까? 내가 어릴 땐 토요일에도 학교를 가고 부모님은 회사를 갔다. 주 5일제가 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은 5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주 5일,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포괄임금제를 악용하는 회사가 태반인 한국 현실에서, 야근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수당을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또한 3년간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며 단 한 번도 야근수당을 받아본 적이 없다. 어떨 땐 차라리 주말출근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주말 출근은 돈으로 쳐주더라.)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에 대한 노동청의 끝없는 교육에도 아직 만연한 성희롱, 차별, 괴롭힘은 가뜩이나 팍팍한 한국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메말린다. 나 또한 한 사람 또는 다수가 일개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메몰차게 몰아내는 모습을 다수 목격했다. 때론 내가 그 피해자이기도 했고. 이런 부조리한 직장의 여러 모습을 보며 내 업무에만 집중하기엔 난 그들의 상처에 너무 크게 공감했다.


내가 퇴사를 반복할 때마다 사람들은 "네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마음을 쓰냐, 그래서 근속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그냥 네 일만 해라. 다른 사람들 신경 꺼라." 등의 말을 수없이 했다. 나도 안다. 내 일만 하고 내 성공에만 신경 쓰고 경주마처럼 앞으로 달리기만 하면 나만의 행복한 꽃밭에서 근심걱정 없이 살 수 있으리라는 걸. 하지만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나에게 이 말은, '굳이 힘들여 왜 분리수거를 하냐, 그냥 버려라. 길에 쓰레기 좀 버리는 게 어떠냐. 어차피 미화원들이 다 청소한다.'와 비슷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난 불편한 걸 참지 못하는 성격이고 그래서 귀찮아도 분리수거를 하고, 남들이 싫어할 말도 때론 하고, 부당한 일을 보면 고치려 하고, 고쳐지지 않으면 그 소속을 떠난다. 어쩌면 평생 이렇게 도망만 다녀야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 끝엔 스스로에게 더욱 떳떳한 내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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