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들리는 척 담담하게 살기
누군가가 입을 벌릴때마다 쩝쩝대는 소리, 옆자리의 테이블에 손톱을 탁탁치는 소리, 아이를 위해 크게 틀어놓은 스마트폰의 만화영화 소리, 포장마차에서 들리는 음악에 맞추어 딱딱 소리를 내는 힐 뒷굽 소리 등..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변해갈수록, 단체를 강조한 표어와 지침들은 줄어들고 개인주의를 포장한 자유가 부각되는,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목이라고 느끼는 즈음, 소리를 내고자 하는 자유와 이기 사이의 아니러니는 나같은 예민한 일반 소시민의 귀를 잡아당긴다.
한참을 들리지 않는 척, 신경쓰이지 않는 듯, 앞의 사람과 이야기에 집중해보다가 동의를 구하는 듯 못내 한마디를 꺼내어 본다.
“아니, 왜 이렇게 시끄러워? 나만 그래?”
한 개인의, 또 무수히 많은 개인의 자유로 감싼 이기가, 주변의 남들에게 가는 피해를 손톱만큼도 이해하지 못할 때, 이 예민한 귀는 당나귀귀만큼 커져서는 듣지 않으려는 작은 소리를 향해 귀를 기울인다.
주의깊게 들어야 할 소리들을 시작부터 먹어 삼키는 신경 날카로워지는 이 온갖 불안한 소리들은 쉬이 떠나지 않고, 온전했던 집중력을 미꾸라지 마냥 헤집어 놓으며 주변을 맴돈다.
카페에서 책을 펼쳐놓고, 이어폰을 끼고 앉아 독서에 집중을 해본다. 독서에 집중 하겠다고 생각하니 소리들은 이어폰을 뚫고 귀를 쑤시기 시작하고, 볼륨을 키우니 음악이 날 방해하기 시작한다. 눈을 반쯤 감고 호흡을 가다듬고 마냥 읽어보기 시작하다가, 의식하지 않고 내용에 빠져들 때 비로소 ‘어라? 소리들이 사라졌네?’라고 느끼자 마자 날카로운 소음들은 내 신경성 밝은 귀를 다시 거침없이 파고 든다. 참 희한한 일이다.
소리들을 잊으려 집중을 하니, 어느새 집중이 되는것 같은데, 집중하고 있다고 느끼자마자, 다시 들려오는 소음에 미간이 한껏 찌푸려진다.
생각해보니 그런가보다, 잊으려 하면 잊혀지지 않고, 다른 것에 열정을 쏟다보니 어느새 잊혀지는 그런 일들, 그래서 즐기는 사람을 이기기 어려운건지도 몰라.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재미있어서 계속 하다보니, 어느새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들처럼 말이지.
그래, 어찌되건 어떤 소리건 들려오니, 내가 안들어버리면 그만인 것 아닌가. 소리를 잊을만큼 나에게 집중해보자.
내 예민한 귀를 파고드는, 수도 없이 날카로운 방해꾼들을 잊을만큼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 근데 집중하는 줄 나는 몰라야 돼. 말이야 쉽지..
‘간절히 원하는 것을 한칸 옆으로 치워두고,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매진하면, 어느새 원하던 것들은 내 앞에 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의 기운이 도와준다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발상 말고, 그것을 위한 나의 행동말이야.
순간, 팽배해지는 자유라 부르는 이기주의를 탓하기보다, 포기하고 나를 바꾸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약간의 의문이 든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바뀌는 세상에 나를 맞추는, 그런 나이들어 무기력해진 의식. 왜 도대체 이 예민한 귀는 나이가 들어도 무기력하거나 무뎌지지 않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인지 모르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가, ’개인의 기준에 맞추어 내는 소리가 완전한 자유는 아님’을, ‘배려없이 행동하는 소리들이, 예민한 누군가에게 피해가 될 수 있음’을 목소리 높여 말한다면(결국, 조용히 좀 하라고 한다면)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예민한 미친놈이라 손가락질을 할까.
오늘도 수 많은 신경거슬리는 이기적인 소리들은, 소리에 예민한 나를 날카로운 사람으로 만든다. 안들리는 척 담담하게, 또 태연한 척하지만 귀는 벌써 당나귀귀가 되어 있다. 저 멀리의 테이블에서 접시에 포크를 놓는 ‘달그락’ 소리까지 다 들린다. 듣기를 포기하고 신경 끄기로 다짐해보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럴수록 다 들린다.
집중하는걸 내가 모르게 집중해야 하고, 의식하지 않는데 내가 의식하지 않는 사실조차 모르도록 빠져들어야 하고, 이것이 집중이라고 느낄때는 흐트러지는..
’아니, 이게 뭐야! 인생사 뭐 이리 어려워?!’
역시 듣지 않으려는건 쉽지 않다. 진짜 말이 쉽지..
귀마개는 어떨까.. 이어폰도 크게 도움되진 않았는데..
그렇다면 혹시 우주의 기운이 나서서 도와주진 않을까..
아니면 어디든 가는걸 포기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