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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Oct 15. 2018

개인온천, 료칸에 간다는 것

유후인 온천여행

멀리 보이는 고즈넉한 산과 마을에 쌓인 눈 사이로, 김이 펄펄나는 뜨거운 노천 온천물에 홀딱 벌거벗은 몸을 담구고는 지긋이 눈을 감은 채,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겨울이면 누구나 꿈꾸는 이 개인온천의 휴가는 달콤하다 못해 끊을 수 없는 중독처럼, 두꺼운 외투를 걸칠 시기가 찾아옴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후쿠오카행 항공권을 예약하게 만든다.

누군가 그러던가, 후쿠오카병이라고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고는 홀린 듯 료칸 예약까지 마무리한다.

12월의 해가 저물어가는 유후인은 크게 춥지 않았는데 노천에 몸을 담그다가 간혹 물에서 나와 상쾌방쾌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기 딱 알맞은 날씨다.

예약한 곳은, 료칸 전체에 딱 4개의 객실뿐인 개인형 럭셔리 료칸이었다. 별장 같은 느낌으로 마음껏 쉴 수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곳으로 골라보았는데, 무엇보다 개인온천은 들어가서 담구고, 밥먹고 담구고, 자다가 담구고, 일어나서 담구는 내 멋대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훌훌 벗고 들어가는 맛이 있지 않은가.


한국인 관광객을 많이 접한 듯, 성격 좋은 픽업기사의 줏어들은 한국어 자랑이 한바탕 쏟아지고 나면, 유후인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산기슭의 료칸에 도착한다.

고개가 땅에 닿을 듯 절을 하며 나를 맞이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미소가 피어나는 것과 동시에, 왠지 모를 일본인에게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던 한국의 가슴 아픈 역사가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지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정갈한 다다미에 앉아 따뜻한 웰컴팥죽을 맛보며, 저녁 식사 전 잠깐이라도 몸을 담그고 싶은 생각에 벌써부터 온몸에 기분 좋은 소름이 조금씩 돋아오고, 곧 만나게 될 카이세키 생각에 한층 더 행복해지는 후쿠오카 여행의 첫날이다.

2개의 탕을 갖춘 개인온천탕 앞에 펼쳐진 그림같은 산과 마을의 풍경에, 잠시 말없이 서서 감탄하다가 어느새 훌훌 벗고 히노키탕 안으로 발부터 천천히 담구면서, 1년만에 만나는 온천수와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곤니찌와~”

히노키탕 옆, 제 2 돌탕에도 몸을 담구는데, 방수 기능이 되지 않는 카메라를 들고 물에 떨어질까 조심조심 사진을 찍어본다. 풍경도, 그리고 내 발도.

그리고는 뜨거운 온천물로 묵은때를 벗겨내듯 샤워하고는, ‘내년부터 새롭게 다시 시작해보자’라고 하면서 작년에도 했던 똑같은 다짐을 해본다.

카이세키를 위해 유카타를 입고 객실을 나서면서, ‘계신지요’ 포즈로 SNS 인증용 사진을 연출하고 나면, 옛 일본의 정취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소소한 료칸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기자기한 예쁜 모양으로 하나하나 정성들여 만들었을 코스요리이자, 료칸의 또 다른 파티 카이세키이다.

일본 특유의 작고 섬세한 모양의 요리들은 간에 기별도 안갈듯 하다가, 하나 둘 나오는 코스를 반갑게 먹다보면 어느새 배가 터질 듯 하다. 이 식사만으로도 료칸은 매년 찾아올 충분한 이유를 만들어준다.

뜨신 몸에, 부른 배를 슬슬 문지르면서 마시는 사케 몇 잔으로 행복감에 척척히 젖어든다.

화로 소고기 불쇼로, 절정에 달아오르는 파티에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로 고개를 들어보니, 료칸으로 오는 길에 한국어 개그를 쏟아내던 픽업기사는 밤에는 고기를 굽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또 다시 시작된 줏어들은 한국어 퍼레이드에 어색한 웃음을 주고 받다가, 알맞게 익은 소고기를 먹고 기름진 입술을 핥으며 기가막히고 코가막히던 카이세키 파티를 마무리한다.

무언가 느긋한 밤의 유후인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한 산속의 마을이다.

추운 겨울 날씨를 뚫고 졸졸졸 떨어지는 뜨거운 온천물 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온천에 사케로 흥분된 몸을 코 밑까지 담구었다가, 탕에서 나와 몸을 식히며 맥주를 마시고 또 다시 탕에 들어가 몸을 덥힌다. 그러다 안쪽의 안마의자로 마사지에 몸을 맡긴다.

물로 씻어내는 것 만으로는 없어지지 않는 묵은때를 꺼내듯, 또 지난날의 잘못되었던 나를 끄집어내듯, 추운 겨울날씨에 천천히 탕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몸 안 깊이 스며들은 독소와, 못된 마음과 후회, 이불킥까지 온천물에 남김없이 녹아 사라지기를 바란다.

흠잡을데 없이 정갈한 료칸의 아침식사

밤새 온천에 몸을 담구고, 다다미에 깔린 폭삭한 침구에서 잠이 들고, 유카타를 입고 아침식사를 하면서 이 료칸 온천 여행에 단순히 먹고 온천욕을 하는 것뿐만이 아닌, 수 많은 일본 체험이 스며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무엇보다 이 여행으로, 낮에도 밤에도 고요한 이곳의 시간 안에서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며 온천탕에 앉아보면, 끝도 없는 많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온천과 카이세키만으로도 물론 너무 좋지만, 그것이 내내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주는 섬세함이 나는 온천여행의 진정한 맛이며 이 여행의 목적이라 생각한다.

많은 스트레스에 복잡한 일은 물론, 복잡한 생각조차 피하게 되는 각박한 한해를 정리하며, 그동안 회피했던 혹은 막연하게 생각했던 나와 가족과, 내 주변의 미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나름의 정답을 찾아낸다.

어쩌면 내년에도 같은 작년일지라도 말이야.


산 중턱에서 온천의 열기를 뿜어내는 아침의 유후인을 새소리와 함께 넋놓고 바라보다가, 유독 어제와 다르게 맑아보이는 탕이 아쉬운 듯, 또다시 훌훌 벗고 들어가서 아직 남아있을지 모르는 나를 씻어낸다.


“하루 더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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