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밟고 다니지 말아요.. 호구탈출 설명서, 의외로 유용한 삶의 지혜>
삶의 중요한 배움은 주로 일상에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첫 만남, 무심코 나간 식사 자리,
지인과의 수다 속에서
의외의 학습이 이루어지곤 합니다.
얼마 전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가
제게 그런 자리였습니다.
지인으로부터 여럿이 모이는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점점 무르익어가던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합류하며
이야기의 꽃을 피웠습니다.
오래간만에 낯선 사람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게 중에 유독 눈에 밟히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온순한 인상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말 수가 없었던 K군은
별 다른 존재 감 없이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대화 주제가 바뀌면서 사람들은
K군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다소 무례한 말투와 농담 섞인 말로
그를 깎아내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K 군은 멋쩍은 웃음으로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려 했습니다.
제가 진짜 놀란 부분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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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끝나갈 무렵 몇몇이 K군에게
사적인 부탁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꺼리면서 남에게 강요하는 식의
무리한 부탁을 K군에게
서슴없이 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영 언짢았습니다.
초등학교 일진들도 아니고 영 유치해서
낯이 뜨거울 지경이었습니다.
가만 보니 K군은 웬만한 것은 웃어넘기고
거절을 잘 못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오가는 대화 가운데 이런 식의 관계 구조와
그가 겪은 정신적 갑질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호구 잡힌 그가
안쓰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호구의 사전적 정의는
1. ‘범의 아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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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호구’는 원래 바둑에서 유래된 표현입니다.
바둑판 위에 범의 얼굴이 보이시나요?
왜 사전적 의미가 ‘범의 아가리’,
‘어리숙해서 이용해먹기 쉬운 인물’인 줄
아시겠지요?
흰 바둑돌이 범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면
호구 잡히는 꼴이 되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그 후로 K군을 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동일한 자세로 그를 대했습니다.
여전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호구의 자리를 박 차고 나와도 될 듯한데
왜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는 걸까….
지적 능력이 모자란 것도 아니면서..’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슈퍼 히어로처럼 짠~ 하고 등장해서
대신 무찔러 줄 수도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 호구 헌터(사냥꾼) 들을 감지하는
센서가 조금은 민감하게 작동하는 편입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사람이지만
오랜 미국 생활 후 다시 한국에 오니
껍데기는 한국인인데
알맹이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밥 한번 먹자’, ‘곧 연락 하자’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왜 바로 연락이 없는지 의아해할 때도 있었습니다.
얼굴 좀 보고 살자는 뜻이었는데
곧이곧대로 듣고 기다렸으니 말입니다.
남의 말을 잘 믿고 눈치도 없고
줄 서기를 잘 못해서 호구는 고사하고
눈뜨고 코 베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 후로는
사심 없는 무공해 만남을 추구하는 편이며
그중에도 적절한 거리가 확보된 느슨한 관계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주위에 사람이 별로 없다는 부작용이 있긴 합니다만
원래 자발적인 아웃사이더로 사는 것을 선호하여
오히려 그 부작용을 즐깁니다.
그래서 영원한 내편은 부모를 포함한
친구 한 명이 전부입니다.
어느덧 K 군을 지켜본 지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는 ‘호구’에서 ‘대인배’로
성장 해 있습니다.
섣불리 ‘호구’라고 이름 붙인 제가
머쓱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는 자체로 큰 연못이 되어
깨어진 쪽박들을 품고 있습니다.
소인배들의 깐죽거림에 일희일비하며
함께 널을 뛰어 주지 않는 멋진 사람으로,
무례한 언사를 맞받아쳐
같은 수준으로 전락하지 않는
현명한 사람으로 말입니다.
그들의 못남을 일일이 들추어내 맞짱 뜨지 않는
K군은
제 눈엔 영락없는 대인배입니다.
무리한 부탁은
여럿이 있을 때 단호하게 거절하기보다
개인적으로 소통하며 적절히 대처합니다.
멋쩍음과 두려움보다는
여유로움으로 의연하게 대처하는 K군이
이제는 영 딴 사람 같네요.
혹시 호구 잡히셨나요?
할 일이 태산인데 일을 도와달라고
누간가가 자주 부탁하나요?
친한 사람이 자주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하나요?
마지못해 “그래, 알겠어”를 남발한 당신,
그 착한 당신은 여러모로 대미지를 입으면서
반 강제적 요구에 순응했군요.
서서히 이런 식의 요구와 순응이 당연한
인간관계 구도가 잡히게 되었고요.
이제 ‘아차..’ 싶어 거절하려니
괜히 상대의 심정을 상하게 해
관계가 어그러질까 두려우시지요.
이다음 누군가가 나를 호구 잡으러 올 때
부디 깨달으셨으면 합니다.
‘아.. 내가 부당한 것에 남의 비위를
억지로 맞춰주면서까지
인정을 받고 싶어 했구나..’
거절이나 싫은 소리를 잘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긴 하지만
결코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날 때부터 잘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무수한 시행착오와 연습을 거친 것뿐입니다.
거절과 그로 부터오는 껄끄러움마저
인생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매번 상처 받을까 지레 겁을 먹고
두려워하는 것도 알고 보면 습관입니다.
미움받을 용기는 없고
늘 인정과 사랑받을 포부만 갖고 있는 것도
피곤한 인생을 자처하는 겁니다.
거절이 두려워 막연히
상대가 먼저 바뀌어 주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사람은 아주 운이 좋은 경우 조금씩 변화할 뿐,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동안의 일들을
다 기억하고 곱씹어 아파하지만
상대방은 기억조차 못할 수도 있습니다.
늘 같은 방식의 관성을 타고 지금까지 흘러왔기에
남에게 어떤 체감을 주는지
본인은 잘 알지 못합니다.
타인을 호구 잡은 만큼 자신의 전반적인 인생에
마이너스 적자가 나고 있다는 것조차
불행히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상대가 뉘우치고 바뀌기를 기대하면
본인만 힘듭니다.
혹시 누군가를 호구 잡고 있나요?
항상 주위에 늘 만만한 사람 몇 명 은 있나요?
그들이 더 이상 호구가 아니게 되면 어쩌죠.
순둥이라 말로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일찍이 그대의 머리 꼭대기 위에 앉아
이다음, 다다음 수를 읽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담대해지면 뼈도 못 추립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마음을 고쳐 먹으세요.
그러고 보면
자신의 지능을 영민하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동시에 관대하기가 참 드뭅니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분량을 늘려주는
엑스트라 정도로 생각하기에
남을 호구로 잡는 것이죠.
그러니 차라리 관대한 대인배가 되는 것이 낫습니다.
항상 휴대하고 다닐 수 있는
당신의 막대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치사하게 호구 잡기보다
타인의 자발적인 마음 자체를 살 수 있는 능력자 될 것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