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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열 Jan 25. 2023

이혼 할 때 만나게 되는 사람들_15

엄마(최종)


[엄마]




전화기의 진동에 눈을 떴다.

정신을 차려 보니 아직 기차 안이다.

올 것이 왔다.엄마의 전화다.



“오늘 좀 만나자...만나서 이야기를 좀 해야 겠다”



오늘? 

다시 핸드폰 날자를 확인하니 2022년 12월이다.

그럼 지금까지 수정아와 호정이를 만난 게 다 꿈이었던가?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하고 하나하나 다 기억이 날 정도로 잊혀지질 않는다.

갑자기 허탈해지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서울역에 도착해 밖을 나왔는데도 여전히 2022년인 것을 보니 이제 좀 현실이 와 닿는다.

엄마를 만나러 신대방동으로 향했다.



내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 엄마는 초조한 눈빛과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반겼다.

난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평소처럼 엄마에게 밥을 달라고 했다.

오랜만에 엄마가 해준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역시 엄마의 김치볶음밥은 맛있었다.

내 앞에서 밥을 먹는 동안 엄마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저 아들 먹기만 바라보고 계신다.



“아~잘 먹었다...역시 엄마밥이 최고야!!”



“여태까지 밥도 안 먹고 뭐하고 다니는 거야?”



“뭐하긴...이런저런 고민하면서 생각 좀 정리했지...

근데 왜 아무 말도 안해요? 분명 저에게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너 밥 먹는거 보니까...그냥 됐다 싶어...엄마가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겠니?

혹시나 걱정 했는데, 민석이 니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죽을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뭐...엄마 혹시 기억나요?

나 중학교때 성적이 떨어져서 엄마에게 말도 못하고 끙끙 혼자서 앓다가 병나서 병원에 실려갔던거?

엄마가 그때 그랬잖아...미련한 놈이라고...그 놈의 성적이 뭐라고....”



“그랬었나? 이제 늙어서 기억도 안 나...”



“분명히 그랬어. 나는 기억해. 

그리고 퇴원하자마자 엄마는 나를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옷이며 신발이며 다 비싼 것들로만 골라서 나에게 선물했었어....오히려 내가 미안할 정도로...

그때 점원이 했던 말도 기억해, 아드님은 진짜 공부 열심히 하셔야겠다...엄마 실망 시키는 일 하면 안되겠다...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았으니까...”



“넌 참 별걸 다 기억하는구나...”



“그때 엄마가 이렇게 말 했어. 우리 아들 공부 열심히 하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한번도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아요”



그때 앞에서 엄마는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우시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하더니 눈물이 흐른다.

엄마와 나는 한동안 서로 울기만 했다.



“민석아, 엄마는 지금도 똑같아...너를 믿거든...

니가 어떤 결정을 내리던 엄마는 따를거야...너무 부담 갖지 말고 너 소신대로 해”



나는 눈물을 닦고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엄마, 저 이혼할게요. 그리고 더 열심히 살게요....그리고 실망 시켜서 미안해요”



“실망은 무슨...살다보면 그럴수 있는거야....

그리고 엄마도 너에게 말 해 줄게 있어...

수정이와 호정이는 이 엄마가 키울테니 아이들 걱정은 하지마라...

손녀가 아니라 내 자식처럼 잘 보살필테니...너는 니 앞길만 신경써”



“엄마,....죄송해요....흑흑흑”




5년 전,

내가 집사람과 결혼 한다고 했을 때, 엄마가 말했었다.

다시 한번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그 말은 내가 너무 성급하게 결혼을 하는게 아닌 것인지에 대한 염려이기도 했고,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왜 차선택을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 어린 나이에 참 고민을 많이 했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A는 나를 참 힘들게 했다.

9번을 잘 해도 1번을 못하면 그 1번으로 나를 탓했다.

서운했고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게 남자가 짊어져야 할 사랑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B는 반대였다.

9번을 못 해도 1번을 잘하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부담없고 편했다.

이렇게 사랑이 쉬울 수도 있을까 하고 자만했다.



결국 나는 B를 선택했다.

20대 풋풋한 청춘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전전긍긍하며 살기에 자신이 없었다.

현실을 직시하고 싶었다. 내가 좀 더 편하고 쉽고, 내가 조금 부족해도 이해해주길 바랬다.

철저하게 나만을 생각해서 나에게 유리한 사랑을 선택했다.

하지만 현실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세상에 나에게 유리한 사랑은 없었다. 

나에게 최적화된 그런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혼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시작된 것은 맞지만, 그건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사랑이라는 뜨겁고 달콤한 그 단어 뒤에는 상상도 못한 차갑고 쓰디 쓴 고난과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결혼 후 인생 이라는 것을 나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결국 내 꾀에 내가 넘어간 것이다.




사랑은 편하지 않다

그래서 불안하다.


사랑은 평등하지 않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다.


사랑은 불확실하다.

그래서 알 수 없다.


사랑은 어렵다.

그래서 포기하게 된다.


사랑은 거짓말이다.

그래서 속는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헤어진다.


사랑은 비싸다.

그래서 돈이 필요하다.


사랑은 순수하지 않다.

그래서 현실이다.


사랑은 달콤하지 않다.

그래서 쓰다.


사랑은 하룻밤이 아니다.

그래서 지루하다.


사랑은 화가 난다.

그래서 참아야 한다.



이혼 때문에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


선의의 거짓말도 결국 거짓말이라는 것.


인생은 돌이 킬 수 없다는 것.


선택은 결국 내가 한다는 것.


지금이 최악이 아니라는 것.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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