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리크루팅
#1.
사촌 형 결혼식이 있었다. 내 또래 사촌이 무척 많은데 어느덧 다들 결혼 시기가 되었고, 형이 스타트를 끊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친척들이 모이는 일이 엄청 줄어들었고, 때문에 이번 결혼식에서 몇 년 만에 친척 얼굴을 보는 거라 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결혼식장에 들어섰는데, 반가워할 새도 없이 나는 신랑 측 카운터로 투입되었다. 나랑 동갑인 사촌은 이미 도착해서 축의금 봉투를 받고 있었고, 나는 작은아버지의 뒤를 이어 식권을 맡게 되었다. 이런 역할은 처음이었는데, 뭔가 중책을 맡게 된 것 같아 조금 들뜬 기분이 들었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니, 정말 말도 안 되게 정신이 없었다. 한 명 한 명 놓치지 말고 예의 바르게 식권을 전해야 했는데, 사람이 계속 늘어나다 보니 쉴 새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예상했던 사람 수를 아득히 넘어서서 식권 수가 부족하기에 이르렀다. 식당 측에서는 식사량이 정해져 있어서 더 늘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떻게 애써서 답례품 교환권을 대신 받아왔는데, 결혼식장에서 뷔페 식사를 못 먹는다니- 사람들의 불만은 당연했고, 연신 죄송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식은 클라이맥스로 향해 가는데, 나는 연이어 축의금 계산에 투입되었다. 한 번에 끝나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장부와 현금이 맞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어찌어찌 다 뜯어보아서 돈을 맞추고 나니까 친척들은 대부분 집에 돌아가셨고, 아직 계신 분들과 간단히 인사하고 헤어졌다. 결혼식에서 식 구경하고 친척들과 인사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한 번 경험해 보았으니, 앞으로 사촌들 결혼할 때마다 맡게 될 것 같은데,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사실, 친척들 결혼할 때는 크게 감흥이 없는데, 친누나가 결혼할 때가 문제다.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오롯이 못 느끼고 정신없이 일만 하면 아쉬울 것 같다. 좀 익숙해지면 나으려나.
#2.
이번 2022 하반기 공채를 위한 리크루터로 대학교에 다녀왔다. 리크루터라 하니까 뭔가 전문적인 것 같지만, 그냥 채용 과정을 겪은 지 얼마 안 된 현업자로서 지원자들 상담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 대표로 가는 건데 너무 준비 없이 다녀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나는 회사 안에만 갇혀 지내다가 대외 업무를 하게 되어 들뜨기만 했던 것 같다.
리크루팅 당일, 오전엔 무척 한가했다. 이번에 정말 많은 인원을 뽑는다는데 이렇게 관심이 없어서야 어떡하나 걱정도 했다. 그런데, 점심 식사 이후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상담 내용도 정리해야 하는데 그럴 새도 없이 진행되었다. R&D 직무다 보니 석/박사 분들이 많이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학부생들이 많이 찾아왔다. 주로 "학사 졸업해서 석/박사 분들과 같이 일할 수 있나요?"와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나도 지원할 때 하던 고민이라 더 열심히 대답했다. 이 외에 많았던 질문은 워라밸/복지 관련된 것이었다. 역시 요즘엔 직장은 직장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렇고.
여러 상담자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경제 관련 전공이셨는데, 자기가 쌓은 스펙과 자기소개서를 정리해 와서 나에게 피드백을 부탁했다. 내가 답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 같아, 같이 진행하던 인사팀 분께 상담을 돌려 드렸다. 아마 그쪽에서도 원하는 대답을 얻진 못하셨을 것 같다. 나도 취업 준비할 때 저렇게 간절했었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글을 쓰며 조금 찾아보니 며칠 전에 서류 전형 결과가 발표되었다고 한다. 예선은 끝났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채용 과정인데, 다들 꼭 제 실력 발휘해서 원하는 회사에 갈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