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창국 Feb 20. 2019

아이들의 어려움과 콤플렉스

10. 허용적이고 배려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점차로 어린이들의 콤플렉스에 대해서 그들이 자유롭게 반작용을 함으로써 진정할 수 있을 때에는 정신병리학적인 치료를 할 필요가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사랑과 인정과 자기를 실현하려는 자유, 이런 것들은 서머힐에서 치료를 하는 데 사용하는 수단들이다. 

개별지도는 인간을 완전히 뒤바꾸는 교육이었으며, 그 목표는 공포와 도덕적인 설교에 의해 생긴 콤플렉스를 제거해 주는 데 있다. 서머힐과 같은 자유로운 학교에서는 근본적으로 개별지도가 필요없다. 그것은 다만 인간을 변모시키는 교육과정을 촉진시킬 뿐이다.     


 36년의 교사생활에서, 특히 학급담임을 담당하는 동안에 내가 담당하는 아이들의 콤플렉스를 제거하는데 늘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담당한 아이들의 콤플렉스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실토한다. 나는 학급의 아이들에게 허용적인 교사였고, 아이들을 배려하는 교사이기는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겪고 있는 개별적인 어려움, 콤플렉스에 대하여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가 되었을 때는 실패한 느낌을 가졌다. 그 느낌의 원인이 무엇인지 지금에 이르러 서머힐을 다시 읽으면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이 겪는 콤플렉스와 어려움에 대하여 내가 구체적인 도움이 별로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아이들이 겪는 콤플렉스와 어려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보지 않았다. 담임교사가 아이들에게 제도교육 안에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업무로서의 일 외에 내가 줄 수 있는 허용의 범위가 조금 넓었을 뿐이고, 배려가 조금 더 있었을 뿐이다. 그 정도의 허용과 배려가 충분한 아이들은 나를 잘 따랐고, 충분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나는 ‘그냥 착한 선생님’이었을 뿐이었다. 내가 가진 기질도 나의 그런 태도에 영향을 크게 주었을 것이다. 나는 내향적인 성향이며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그들이 갖는 어려움이나 콤플렉스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의 문제는 학교나 가정에서 ‘문제가 되었을 때’에만 나에게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서머힐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어려움과 콤플렉스를 해결하는 장면을 읽을 때에 아주 관심 깊게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서머힐을 만들어야 아이들이 갖는 어려움과 콤플렉스를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때에 나는 아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과 콤플렉스를 풀어줄 방법을 마련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서머힐과 같은 자유학교를 세워야 가능한 것인 줄 착각하고 있던 것이다. 교직에 있는 내내 매번 담임교사로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던 이유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들에 공감하는 노력은 꾸준했다. 내가 첫 주례를 맡았던 성효는 미용사인 엄마, 월남전에 참전했던 알콜 중독자인 아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중3인 성효는 자주 가출을 했다. 가출한 성효 집을 방문했을 때에 얼굴이 까만 술에 취한 아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학교에서 상담한 성효는 아빠의 엄마에 대한 폭력과 술주정 때문에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 성효를 달래어 실업고등학교 야간학급에 진학 지도를 했다. 졸업하는 날 술에 취한 성효아빠는 운동장에 서서 졸업식을 하는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아들을 찾고 다녔다. 성효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졸업 후에 한동안 연락이 없던 성효는 군대에 입대한 후에 휴가 때마다 밤늦은 시각에 집을 찾아왔고, 아내는 밤늦게 찾아온 군복 입은 성효에게 따뜻한 밥을 내놓았다. 군대를 제대한 후 어느 날 집으로 찾아온 성효는 주례를 서달라고 부탁했다. 아직 서른일곱 나이에 주례를 어떻게 하냐고 펄쩍 뛰는 나에게 성효가 말했다. “저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누가 주례를 서 주겠어요? 선생님은 제가 정말 존경하는 분이시고, 선생님이 주례를 서지 않으시겠다면 제가 부탁드릴 분이 없어요.” 그래서 서른일곱의 젊은 교사가 주례를 서면서 내가 주례를 서게 된 이유를 하객들에게 설명해야만 했다.


 교단에 선 해에 남자 아이들로만 구성된 우리 학급에 작고 얼굴이 까무잡잡한 강중이가 있었다. 강중이는 수업시간에 늘 해골바가지를 그리고 있었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어떤 시간에나 어떤 선생님이나 선생님이 부르면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하면서 당황해서 시선을 땅을 보고 있었다. 그때는 토요일마다 수업을 마치면 우리반 아이들은 남아서 축구를 하고 가게 했다. 강중이는 늘 남지 않고 집으로 갔다. 강중이에게 왜 남아서 축구를 하지 않고 가느냐고 물었을 때에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아야 한다. 동생 공부를 봐주어야 한다.”다고 했다. 우리반 누군가가 강중이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 곧잘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강중이에게 좋은 짝을 고정시켜서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새마을부장을 맡고 있던 기봉이에게 부탁을 했다. 기봉이는 늘 강중이의 짝이 되어 주었고, 수업시간에 수업을 들으면서도 강중이가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강중이는 수업 내용을 공책에 쓰기 시작했고, 어느 날부터는 토요일에 남아서 공을 차고 있었다. 봄 소풍을 가서는 놀이에서 벌칙을 받게 되었는데, 기러기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말타기 놀이를 하다가 무너지면서 이를 바닥에 부딪쳐 이가 깨지기도 했다. 여름방학 중에 강원도 오대산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되어 전학을 한 강중이는 9월에 나와 기봉이에 대한 고마움을 자신의 소망에 담아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우주 끝까지 가는 기차를 발명해서 선생님과 기봉이를 태우고 여행을 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는 한 장으로 되어 있었지만 맞춤법대로 쓰이지 않아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3학년이 된 강중이가 다시 보내온 4장으로 된 편지는 명조체의 반듯한 글씨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보내왔기에 그 편지를 읽는 데는 일 분이 채 안 걸렸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강중이를 시골학교의 선생님들이 정성을 다해 지도해주셨구나 하는 생각에 고마웠다. 강중이 서른세 살이 되었을 때 다시 만났을 때에는 키도 크고 멋진, 농촌의 씩씩한 청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퇴직하기 직전에 맡았던 담임 학급에서 만난 승훈은 수업 시간에 전혀 공부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보다 조금 늦은 시각에 등교를 하는 일이 잦았다. 등교시간에 늦는 이유가 학교에 오다가 아침 식사를 학교 근처 토스트 가게에서 사먹고 오기 때문이었다. 승훈은 엄마가 백화점에서 일을 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온다고 했지만, 엄마와 아빠는 일곱 살 때에 이혼을 했기 때문에 아빠와 둘이 살고 있었다. 어떤 때에 아빠는 외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보름동안 승훈을 혼자 집에 두고 해외 일터로 가기도 했다. 승훈은 혼자서도 잘 견뎌내고 있었다. 어느 날 승훈이 강아지를 입양해서 키우기 시작했을 때에 강아지가 승훈에게 큰 위로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승훈은 자주 배앓이를 했고, 비염을 앓고 있었는데 그런 이유로 숨을 쉬기에 불편해 했고 머리도 자주 아팠다. 학교에 오지 않는 승훈을 데리러 승훈의 집에 방문했을 때에 승훈의 강아지는 영양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같은 학년의 담임선생님들에게 승훈이 강아지를 기른다는 얘기를 했고, 집에서 개를 키우는 선생님은 승훈에게 가끔씩 강아지를 기르는 팁을 알려주기도 했다. 승훈은 수학과 국어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다른 과목에 비해서 승훈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지 수학과 국어 공부에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승훈에게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다가올 시간들을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해야 할지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다. 승훈에게 간단한 음식 조리법이라도 알려주었더라면, 승훈에게 책을 읽는 즐거움이라도 알 수 있게 해주었더라면 하는 마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승훈의 아빠가 어떻게 승훈의 성장에 아빠로서 역할해야 할지 고민이라도 하게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보다 빨리 승훈의 상황을 파악하고, 승훈의 심리를 잘 이해해서 승훈이 자립하는데 필요한 아빠의 역할을 승훈 아빠를 만나 안내하지 못한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의 어려움, 콤플렉스에 깊이 이해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게 하도록 돕기 위해서 교사는 타인의 삶에 구체적인 관심을 갖는 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심리를 잘 이해해야 한다. 가정과 연계하지 않으면 아이는 자신이 갖는 어려움에 갇히고 콤플렉스에 눌려서 성장을 제한 받게 된다. 교사로서 아이의 성장에 작용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가의 이전글 내버려두면 성공하는 아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