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bie(2023) 노스포 해석 후기
마텔은 미국 최대의 완구회사이자, 세계 최대의 완구회사인 만큼이나 매출 측면에서는 해즈브로와 레고에 비해 많이 앞선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해즈브로가 레고무비의 레고가 할리우드를 통해 인지도를 넓힌 것에 착안하여 워너브러더스와 손잡고 영화를 내놓는다.
바비는 1959년에 창업자인 루스 핸들러가 "아이들을 위한 성인 여성 인형을 만들겠어!"라는 아이디어를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남편은 “엄마들은 가슴 달린 성인 인형을 사주지 않을 거야!”라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래서 바비인형을 일종의 마네킹처럼 화려한 의상, 현대적인 헤어스타일을 디자인하되 특정부위의 신체묘사를 기피했다.
당시의 어린이 인형이 모두 모두 3~4등신 아기 체형의 인형 밖에 없었으며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철저히 가부장제의 어머니 역할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루스는 "난 딱히 사회에 뭘 바꾸려고 바비를 만든 거 아니다."라고 했지만, 성인여성의 ‘완벽한’ 몸매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커리어 우먼’을 제시하여 여아 장난감 시장을 혁신하고, 바비 인형은 '인형 같다'라는 표현을 쓸 만큼 거대한 문화현상을 낳았다.
이후 아이들이 원하는 여러 직업과 여러 가지 의상, 다양한 인종을 나타내는 새로운 바비를 끊임없이 내놓았다. 1960년대에는 간호사와 우주인, 1990년대에는 소아과 의사, 소방대원, 비행기 조종사 바비도 출시됐다. 2000년대에는 영화감독, 과학자, 대통령, 태권도 바비도 나왔다. 여아들에게 여성의 사회진출을 장려하도록 돕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현실에게 보기 힘든 과장된 인형의 외모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여아에게 왜곡된 관념을 심어준다는 비난 때문에 꾸준히 체형에 대한 변화를 꾀하였다. 극중 사샤(아리아나 그린블랫)가 바비에게 ‘파시스트’라고 일갈하는 장면으로 그러한 비판을 셀프디스한다.
영화에서 바비와 켄이 ‘생식기가 없다“고 커밍아웃하거나 바비가 산부인과에 들리는 장면은 인형으로써 바비와 인간으로써 바비를 구분 짓는 잣대로 활용되었다. 섹스코미디를 활용한 성인개그가 영화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무엇이 거세되었는지를 글을 차근차근 읽어가길 바란다.
영화는 마텔의 애니메이션<바비의 드림하우스(Barbie: Life in the Dreamhouse)>의 노선을 취한다. 온통 핑크빛이고, 사는 곳도 생활환경 자체가 장난감 세트인 점, 바비인형이 인간처럼 행동하지만, 인형의 몸을 갖고 있다는 점 등은 기본적으로 마텔 상품에 대한 '메타픽션'이라는 애니의 성격을 그대로 이식했다.
이러한 제작방향은 대한민국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바비 인형이 세계적인 스테디셀러이지만, 우리나라는 미미 인형이 바비보다 더 유명하다. 영미권 같은 문화적 배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화의 개그요소를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영화는 장난감세계인 ‘바비랜드’와 인간세상의 LA을 오가는 바비와 켄의 여정을 따라간다. 바비월드은 철저히 인형의 세계로 그려진다. 인형이 진짜 사람처럼 죽음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없다. 그러나 인간이 살고 있는 LA에서 둘은 큰 문화적 충격, 실존적 위기를 겪는다. 바비는 노화와 죽음에 대한 걱정이 (인형의 주인인) 글로리아(아메리카 페레라)에 의한 것을 깨닫게 된다. 한편 켄은 바비의 남자친구라는 명함 외에 바비랜드에서 맡은 역할이 없다. 서핑 전문이라는 특기조차 현실에서 무력하기 마찬가지다. 무능력자인 켄은 현실에서 가부장제에 감화되어 ‘켄덤(켄의 왕국)’을 건설한다. 영화는 외부에 가져온 행복을 부정한다. 주인공은 여성이 의회, 백악관, 대법원을 장악한 바비월드나 남성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킹덤 그 어디에도 만족하지 않아 길을 떠났다는 점이다.
더 중요한 점은 여러 바비인형들은 켄이 전래한 가부장제에 인형답게 무비판적으로 동조한다는 점이다. 바비(마고 로비)은 이에 경악하지만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이때 글로리아가 일장연설을 하게 되고 바비인형은 각성하고 켄덤은 무너지고 모계사회로 돌아간다.
그레타 거윅은 젠더에 기반한 흑백논리보다 실존주의 철학을 항상 표방해왔다. 전작<레이디 버드>에서 주인공 레이디 버드(시어셔 로넌)가 본래의 이름 크리스틴으로 되돌아가는 결정을 내렸을 때 비로서 엄마로부터 독립했던 것처럼 바비는 바비다움을 실행하고, 켄은 켄다움을 깨운치는 각성을 주제로 삼는다.
마텔의 창업자인 루스 핸들러는 “바비 인형에 대한 내 철학은, 작은 소녀가 무엇이든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거였다. 바비는 언제나 여성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라고 회고록에 적어놓았다. 그러나 “사회를 바꾸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것이 영화제작의 가이드라인이다.
영화는 인형에서 벗어나 인격을 쟁취하는 실존적 투쟁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남녀가 함께 세상을 건설하자는 공존과 연대 같은 거창한 사회적 구호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에 대통령이 남성을 공무원으로 채용할 뜻을 내비친 것에서 모계사회였던 바비월드도 가부장제의 켄덤 모두 풍자하고 있다. 즉 영화의 메시지가 개인적인 차원으로 소비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영화의 타켓층이 바비를 갖고 놀았던 경험이 있는 여성관객이라는 점이다.
영화에 나오는 바비, 켄, 앨런, 마텔의 임원들, 샤샤의 아빠 모두 바보들이다. 등장인물 중에 본인의 생각을 말하는 인물은 딱 3명뿐이다. 글로리아와 샤샤 그리고 루스 핸들러의 유령이다. 글로리아는 사회에서의 여성 역할을 인형(과 관객)에게 전달하고, 샤샤는 바비를 비판적으로 수용한 요즘 세대를 대변한다. 글로리아가 직장에서 별로 핍박받는 모습 없이 갑자기 워킹 맘의 고충을 일장 연설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루스 핸들러의 유령이 홀연히 나타나 바비에게 ‘너의 삶을 살아라’고 조언하고 마고 로비는 갑작스럽게 각성한다. 그레타 거윅은 전작<작은 아씨들>에서 조(시어셔 로넌)이 결혼을 종용하는 고모 조세핀(메릴 스트립)에게 사회적 여성성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방식을 이번엔 아주 길게 늘렸던 것이다. 마고 로비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이 여정을 지켜보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이다. 즉 관찰자이면서 화자로의 역할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결말부가 생뚱맞아 보이는 것이다.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텔의 창업자인 루스 핸들러는 1975년 10월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고발당한다, 그녀는 (주문이 들어오지 않은) 완구를 실은 트럭을 주차장 한 바퀴 돌게 한 후 새로운 트럭에 완구를 옮겨 담아 장부에는 외상매출금으로 잡는 식의 분식회계를 지시한 혐의로 조사받는다. FBI에 의해 그녀는 지시한 정황이 명백히 밝혀진다. 그녀의 주가조작에 대해 주주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하자 그녀는 30년 전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강제로 쫓겨난다.
영화는 창업자에 대한 허물을 덮어주기 위해 마블 임직원을 멍청한 남성임원들로 셀프디스한다. 특히 마텔의 CEO (윌 페럴)은 바비를 잡아서 바비랜드를 되돌려놓으려는 빌런처럼 보이지만, 대사로 여아들에게 꿈과 희망을 위한다는 회사방침을 직접 전달한다. 판매량이 높은 켄에게 호의적인 의견을 내비친 적도 없다. 왜냐하면 마텔의 주력상품은 ‘바비’니깐 말이다.
그레타 거윅이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을 동어 반복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상업영화로서 <바비>는 메타픽션으로써 바비와 마텔을 풍자하기엔 명백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마텔 임직원의 역할이 허무하게 어중간해진 것이 단적인 예다. 감독은 글로리아의 연설을 여러 번 반복해서 희화화시킨 것이나, 루스 핸들러의 메시지를 장황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마텔의 정책에 소심하게 반항했다.
지금까지 후기를 봤을 때 영화에 대해 부정적인 뉘앙스로 받아들여졌다면 당신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영화는 어린 소녀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하기 보다는 바비인형으로 커리어 우먼을 꿈꿨던 워킹 맘을 위무한다. 그레다 거윅 본인이 고용감독으로 느낀 고초를 스스로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바비>는 유치한 영화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성인기에 종종 잊은 인간다움을 복원시켜준다. 어른이 되면서 꿈을 쫒는 것은 포기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타협하고 자신의 의견을 갖는 것을 두려워한다. 바비와 켄, 마텔임직원이 멍청한 것은 이러한 비겁함에 대한 셀프 디스처럼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나다움’에 대한 예찬이 좀 과하다 핑크핑크하다고 해도 기꺼이 용납하고 싶다. 특히 ‘이상한 바비(케이트 매키넌)‘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바비랜드의 수많은 바비들을 지켜보면 대세에 영합하려는 여성들의 여왕벌 문화를 비판한 부분에 많은 공감이 갔다. 남성쪽에는 '앨런(마이클 세라)'를 통해 존재감이 약한 친구들을 위로한다.
그 밖에 신디 로퍼의 〈Girls Just Want To Have Fun〉로 ‘여성다움’을 예찬하고, 매치박스 트웬티의 〈Push〉로 남성적인 허세를 비유한 대목도 좋았다. 전자는 페미니즘에 얽매이지 말고 여성들이 삶을 즐기라는 에피쿠로스의 사상을 따른 것 같다. 후자는 라이언 고슬링이 평소 즐겨 부르던 노래답게 극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 영화는 거창한 이데올로기도, 마텔 기업 등의 사회비판 같은 거 없다. 인형을 갖고 놀던 글로리아로 인해 죽음을 고민하게 된 바비도, LA에서 가부장제를 배워온 켄도 행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행복은 나 자신 안에 있으니까라고 그레타 거윅은 그의 파트너 노아 바움백과 함께 그렇게 각본을 썼다. 라이언 고슬링, 두아 리파, 빌리 아일리시, 아쿠아, 아이스 스파이스, 캐롤 G, 찰리 XCX이 참여한 환상적인 사운드트랙과 사라 그린우드의 세트디자인, 의상을 담당한 재클린 듀란에게 내년 오스카에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 (3.5/5.0)
Good :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Caution : 루스 핸들러에 대한 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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