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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Dec 30. 2018

로마(2018)_'영화'라는 예술에 관하여

Roma후기, 리뷰, 해석

알폰소 쿠아론은 <로마>의 각본, 감독, 촬영, 제작, 편집을 모두 직접 맡았다. 그는 50년도 넘게 알고 지낸 실제 인물과 가장 흡사한 배우를 찾기 위해 무려 수천 명의 지원자를 만났고, 멕시코 와하카 주의 한 시골 마을에서 적임자를 발견했다. 리얼한 연기 호흡을 위해 주인공 얄리차 아파리시오와 실제 가장 친한 친구인 낸시 가르시아를 함께 캐스팅해 극 중 클레오의 친구 아델라를 연기하게 했다. 연기를 처음 하는 배우들에게 진짜 같은 리얼함을 얻어내기 위해 배우는 물론 스텝들도 시나리오 전체를 보지 못했다. 오직 감독 자신만이 전체 그림을 인지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대사는 촬영 당일 아침에 알려준 후, 배우들이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도록 했다. 사전 리허설을 거치는 장면이라는 개념을 뒤집고 싶었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전적인 이야기임에도 본인 주관을 배제하고, 미화를 경계하고자 고민은 많이 묻어 나오고, 본인이 아닌 자신을 키워준 유모 '클레오'의 시점을 택했다. 스페인어뿐 아니라 미스텍어 (멕시코의 아메리칸 원주민 언어)를 구분 짓은 것은 본인도 그때 알아들지 못했던 언어를 확실히 반영했다고 한다. 사실, 클레오역을 맡은 역의 얄리차 아파리시오도 미스텍어를 못한다고 한다.


'큰 차'는 아버지에 대한 비유였다. 차가 망가질수록 관계도 멀어진다.


흑백 영상을 취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영화에 강아지 응가, 출산 장면 등등 거부감이 들 수 있는 장면들이 있어서 그럴 거 같다. 전체적으로 [로마]는 오즈 야스지로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은 거 같다. 최대한 구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카메라운동을 가져간다는 점과 가족이야기지만, 속내는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로마]의 카메라 수평운동(패닝)이 영화 전반에 걸쳐 깔려있다. 영화 자체가 '유모에 대한 감사편지'라서 그런지 한 사람이 볼 수 있는 시야만 찍혀있다. 그녀가 살아온 인생만 딱 담겠다는 의지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서 오감 중에 시각과 청각만 스크린에 담을 수밖에 없다. 알폰소 쿠아론은 “애트모스가 소규모의 개인적인 영화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비주얼로 우리는 전경, 중경, 후경을 보게 된다. 사운드 측면에서도 이런 레이어들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전한다. “서로 다른 노점상들이 소리를 치며 호객하는 소리, 휘파람이나 플루트, 벨 소리 등이 있다. 도로에서도 차마다 내는 소리가 다 다르다. 카메라가 움직일 때 사운드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가야 한다.” 이렇게 디테일한 음악을 포착한 결과, 믹싱을 끝낸 후 돌비 애트모스 측에 보낸 파일의 크기는 기존 일반 영화의 6배 정도였다고 한다. 방대한 소스가 말해주듯 가까운 소리, 먼 소리, 아주 먼 소리 이렇게 여러 층위를 둠으로써 거리감과 입체감을 획득했다. 1인칭 시점의 카메라 못지않게 1인칭 청점의 사운드 편집은 관객들로 하여금 '소리'로 체험케 만든다.


원근감이 가장 표현된 장면이자 고향에 온듯한 클레오


앞서 말한바처럼 촬영을 직접 한 쿠아론은 '전경-중경-후경'을 놓고서 원근감을 최대한 살렸다. 오프닝과 엔딩은 '물웅덩이-바다', '물에 비친 비행기 모습-실제 비행기' 이런 식으로 수미쌍관을 이루고 있는데, 뉴욕영화제에서 "극 중에 지진과 화재, 바다 등 자연이 소재로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라는 질문에 쿠아론 감독은 "질문 그대로 다양한 자연적 요소들이 등장한다. 이는 자연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로마>가 천국과 지상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은 바닥에 고인 물에 반사된 하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  천국이 물에 반영된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거지. 하지만 물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모두가 물속에 잠기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처음으로 하늘을 전체 프레임에 담는 것이다. 인생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다. 개개인의 경험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와 이들을 향한 애정이 우리가 유일하게 일부나마 컨트롤할 수 있는 요소다. 결국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경험한 외로움을 공유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라는 대답은 영화의 핵심을 짚어준다.


주로 좌우로만 움직이는 카메라 운동 중에서 특이한 클레오가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계단을 내려와서 집안에 불을 끄는 장면이 있다. 어떤 불은 끄고, 어떤 불은 켜고, 한 바퀴 삥 돌아다가 다시 자기 방으로 향하는데, 그냥 패닝 하면 화면 왜곡이 일어나는데, 자연스럽게 구성한 카메라 워크가 뛰어났다. 그럼, 1층은 지상, 2층은 연옥, 옥상은 천국인가? 이렇게 집안을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클레오는 '천사'인가? '[로마]는 천국과 지상의 이야기'라는 감독의 인터뷰 그대로 해석해보면 이런 결론이 도출된다.

역광으로 흑백영화만의 명암효과가 극대화했다.
사선을 형성한 가운데 클레오가 그 선을 침범한다
불끄는 장면은 계급적 차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사격하는 장면에서 인물들을 차례로 패닝 한다. 총 쏘는 남자들, 뛰어노는 아이들, 그리고 여성들 틈 속을 유일하게 헤집는 인물도 '클레오' 뿐이다. '전경-중경-후경'이 형성되는 사선을 침범하기에 관객에게 더 입체적으로 비친다. 또, 클레오가 어떤 사실을 알리면서 컵이 깨지는 몽타주는 불길함을 암시하며, 영상과 이야기가 하나가 된다. 지진이 났을 때 인큐베이터 장면과 그다음 십자가가 비춰주는 몽타주도 아주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비행기가 나오는 장면이 딱 3번 등장하는데 오프닝, 엔딩, 그리고 소베크 교수 장면이다. 극 중 소베크 교수는  '여러분의 정신이 육체를 움직이는 겁니다, 내가 뭘 보여주겠습니다'라고 딱 하는데 정말 별거 아닌 동작을 하죠.  그 순간 비행기가 지나가는데서 감독이 '여기 중요해요'라고 귀띔해주는 거죠. 이 장면에서 딱 두명만 그걸 완벽하게 해내죠.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클레오를 비춰주며, 주인공이 강한 내면을 지녔음을 강조하죠. 그리고, "공중부양 그딴 거 없습니다"라는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영화라고 하면 점점 거창한 뭔가를 떠올린다. 심지어 이상한 안경을 써야 하고, 움직이는 의자에 앉아있고, 옆에서도 화면이 나오는 기술들이 마구 등장하지만, 쿠아론은 '응 아니야' 라며 클래식 영화들이 해왔던 입체적인 운동성을 증명해 보이고 있죠.


초창기 영화를 '활동사진'이라 부르지 않았나요? 최초의 영화라는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기적]도 그렇구요. 3D, VR, 4DX, 스크린 X 이런 게 입체감을 부여한다고 생각하고, 고전영화들은 그 반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영화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영화는 입체감을 주는 매체였다고 쿠아론은 입증해보이네요.


그다음, 내러티브, 즉 이야기를 다뤄봐야겠네요. 모든 이야기들의 근원은 민담, 설화, 전설 같은 '신화'에서 출발해요. 그러다 처음으로 체계화되는 단계가 '그리스 비극'이죠. 호메로스는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으나 이 생명이 어차피 쓰러질 것이라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고귀하고 숭고하게 사는 것인가?'라며 유한한 삶의 비극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위엄을 지향했다. 비극의 핵심은 '인본주의'라는 얘기죠. 


여기선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첫째, 클레오는 임신을 하지만, 남자 친구 페르민은 도망치죠. 하지만 그가 남겨둔 외투를 가져다 줄만큼 착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원망하지 않아요. 둘째, 파티 장면에서 클레오가 오랜만에 한잔 해보려고 딱 들었는데 뒤에서 춤을 추던 사람이 등을 치는 바람에 컵이 깨지죠. 당시 클레오는 아이를 가지고 있었던 상태였어요. 이런 불길한 암시는 아니나 다를까 그런 비극으로 이어지죠.  앞서 예시처럼 '낙관적인 현세주의'와 '절망적 숙명론'이 양립하고, 그 둘 사이의 긴장을 통해 클레오가 충격적인 고백을 하는 '비극'이 최종 완성되죠. 


[일리아스]가 '트로이전쟁'이라는 배경을 두고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비극을 담았듯이 쿠아론은 멕시코를 IMF 구제금융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루이스 에체베리아 알바레스 대통령 시대를 집중 조명합니다. 그중에서 특정  1971년 우익 무장단체 로스 알코네스가 120여 명을 살해한 '성체 축일 대학살'을 콕 집어서 클레오의 비극과 교차시킨다. "우리는 삶을 비극적인 것으로 파악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삶을 제대로 살기 시작한다"라고 시인 예이츠의 말처럼 아이가 죽었지만, 또 다른 아이를 구하는 대구를 이루며 희망을 전하고 있죠. 그뿐만 아니라 가정부 클레오 (얄리차 아파리시오)와 소피아 부인(마리나 데타비라)은 전혀 다른 처지임에도 이상하게 거울 쌍처럼 서로 대구를 이루면서 두 사람은 계급을 넘어 진심으로 서로 연민하며 연대하고 있지요. 이 같은 건강한 자매애(시스터 후드)가 혐오와 차별의 시대를 구원하리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모성애와 자매애(Sisterhood), 바다를 보러 가는 여행장면 등에서 초기작 [이 투 마마, And Your Mother Too, 2001]를 떠올린다.


[로마]를 정리하자면, 단순한 이야기, 간결한 카메라 운동, 청각마저 원근감을 입혀서 초기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입체감을 되살린 거죠. (고전영화가 가르쳐준 대로) 영상, 음악, 스토리 모두 대구를 이루며 점층적으로 깊이감을 갖췄죠. 그러면서도 그리스 비극처럼 '비극의 지혜'를 통해 인간에게 불행을 극복할 정신의 힘을 제공하고 있어요.



★★★★☆  (4.5/5.0) 


한줄평 : 과연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 것인가?


●알폰소 쿠아론은 베니스 영화제 인터뷰에서 제목 [로마]는 멕시코 시티에 있는 Colonia 'Roma' 구역을 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멕시코 시티가 지난 40년간 반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웅장한 고대 로마와 같은 곳으로 변하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언급하며, 멕시코 시티에서의 반정부 시위 등을 비롯한 격변기를 지내온 자신의 자서전적 이야기라고 말했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보모와 같이 자라다 아빠가 떠난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리보리아 로드리게즈는 쿠아론이 9개월일 때 쿠아론의 집에 들어왔고, 쿠아론을 엄마처럼 키웠으며 아이들은 그녀를 리보 마마라고 불렸다고 한다. 쿠아론의 가정부인 로드리게즈는 극장에 쿠아론을 자주 데리고 갔으며, 그때 본 [우주 탈출 Marooned·1969]라는 영화가 그래비티에 영감을 줬다고 한다. 로드리게즈가 세트장에 방문했을 때 엄마가 아이들한테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감독은 아픈 기억들을 너무 적나라하게 떠올리게 만든 것 아닌가 싶어서 괜찮냐 물어봤지만 리보리아 로드리게즈는 70대의 할머니가 되어서도 열 살 시절 쿠아론 감독이 느꼈을 감정 때문에 울었던 것이었다고 한다. 


●알바레스 대통령이 소속된 제도혁명당은 71년간 장기 집권해오며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가족의 집은 실제 쿠아론 감독 가족의 물건으로 채웠다. 의상팀은 감독의 가족사진을 보고, 가족이 입던 옷을 그대로 재현했을 뿐 아니라 그가 기르던 강아지와 똑같이 생긴 반려견을 구했다. 또 멕시코시티의 상류층 거주지인 인수르헨테르 애니뷰와 중산층 동네인 로마, 슬럼가인 네사우알코요톨을 대조적으로 묘사하며 당시의 사회경제상을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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