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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Dec 29. 2018

인 디 아일In den Gangen_고독한詩

In The Aisles,2018 리뷰

[줄거리] “바라는 게 뭐예요? 이루어진다면요”

슈퍼마켓의 신입직원 크리스티안은 자상한 동료 브루노의 도움으로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간다. 어느 날 동료인 마리온을 보고 한 눈에 반한 그는 커피 자판기 앞에서 서로를 알아가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러나 그와 그녀에게는 각각의 비밀이 있었는데…




인 디 아일 (In den Gangen/In The Aisles,2018)_고독한 시(詩)

베를린영화제 에큐메니칼 심사위원상

영화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영화적 판타지를 배제하고, 지긋지긋한 직장생활을 보여주죠. 언뜻 다큐멘터리처럼요, 오프닝에 흐르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흐르죠. 대사도 적고, 정적인 영화인지라 음악이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역할로 주로 쓰인답니다. 사운드 트랙은 클래식 작품들과 블루스 락을 번갈아가며, 낭만주의와 블루칼라(노동자계급)의 금욕주의 사이를 종횡하죠.


영화는 총 3장구성입니다. 신입사원 크리스티안, 사수 브루노, 동료 마리온 식으로 등장인물별로 고독과 고통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있죠. 느리고 완만한 리듬을 따라가보면, 거창한 메시지나 치밀한 내러티브를 담고 있진 않아요. 극중 배경은 동독 지역은 서독에 비해 낙후되어있지만, 영화는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대인을 관찰해요


주인공을 살펴보죠, 문신이 많고, 불량배 친구들도 있고, 거친 삶을 산듯한 크리스티안은 현재 수습기간이라 정규직이 되기위해서 사수인 브루노에게 열심히 일을 배워야만 해요. 자세히 인물을 스케치하지 않아요. 같은 학교, 같은 반 급우라고 해서 그 친구에 대해 세세하게 알진 못해요. 크리스티안, 브루노, 마리안도 자세히 그리진 않고 대략적인 짐작만 던져줘요.


직장인 공장형 마트는 일정구획만큼 칸이 나눠져있고, 직무도 사원들마다 따로 배치되어있죠. 한 직장에서 함께 일하고 있지만, 진열대가 소통을 막는 느낌을 주죠. 학교에 등교 혹은 직장에 출근만하면 답답하잖아요. 영화 속 퇴근길장면에서 크리스티안이 "하루일을 마치고 매장을 나서면, 밖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다음날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위해 깊은 잠을 자러 가는 것 같다."고 나레이션이 깔리죠. 여기서 집은 '회사'랍니다. 너무나 현실적이죠. 이처럼 제한된 정보와 분리된 이미지로 고독을 형상화하고 있답니다


선임 브루노가 첫 출근한 크리스티안에게 유니폼을 입혀주면서 "이제 신성한 전당으로 안내하지" 라며 말하죠. 배우에게 의상을 입혀주는 듯한 액션을 취하며 '이건 다큐가 아니야'라고 감독이 선언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브루노가 휴식시간에 매장 밖 철장에서 담배를 태우는 장면이 나오죠. 위에서 조감으로 매장을 찍은 장면을 보여줄때, 직장은 '감옥'처럼 형상화합니다. 


여러분, 혹시 학교나 직장에 갇혀있다는 느낌 한번쯤 받아보시지 않으셨나요? 바로 그거예요.이처럼 촬영 감독 Peter Matjasko는 슈퍼마켓 인테리어의 놀라운 대칭 구조를 잘 활용합니다. 전체적으로 수직적 프레임을 강조하는 1.66:1 화면비를 쓰고 있는데, 종종 수평적 프레임을 보여주죠.


예를 들어, 크리스티안과 마리안이 만날때 바깥에서 다른 직원들이 배경처럼 지나가요. 일하다가 잠깐 쉬러왔을 뿐인데 오히려 노동하는 사람들과 분리되는 듯한 화면구성이 있어요. 즉, 수직의 구도를 가진 영화임에도 수평적 구도가 등장할때는 '휴식' 이라는 일탈이 일어난다는 점이죠. 그와 동시에 '파도 소리'가 들리죠, 관객들만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바로 크리스티안의 '심리적인 소리'예요. 엔딩에서도 기계소리들 틈에서 파도소리가 들려온답니다. 말을 극도로 아끼는 영화는 이런방식으로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답니다.


[인 디 아일]에서 두가지 상징이 쓰여요, 첫째, 지게차죠. 마트안 직선의 세계에서 곡선적인 운동을 펼치는 지게차에서 크리스티안과 마리안이 함께 파도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고독에 다른 답을 도출할 수 있다고 영화가 말하는거랍니다. 영화제목 자체가 [통로에서]잖아요, 높이 치솟아있는 진열대들 사이로 '지게차'가 발레처럼 우아하게 좌우로 지나다니죠. 직각으로 구획된 매장안에서 오로지 지게차 만이 우아한 곡선으로 돌아다닙니다. 지게차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예요. 지게차 운전교육을 하다가 크리스티안이 실수할때, 브루노가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라고 격려해주는 소통의 수단이 되죠. 이처럼 기계가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작품은 참 반갑네요. 제임스 카메론(아바타, 타이타닉)과는 정반대죠.



둘째, '바다'는 각 인물마다 다른 형태로 받아들여집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티안에게 '휴계실 벽지의 해변'으로 마트를 집처럼 아늑하게 여기는 편안한 순간을 말해요. 마리온과 만남이 허락된 공간으로써 바다의 이미지가 그려지지요. 한편, 마리온이 집에서 맞추고 있는 퍼즐이 바로 '해변그림'이죠. 현실 도피의 공간이자 그녀가 가고 싶은 곳이죠. 그리고, 마리온이 결근했을때, 브루노가 사정을 설명할때, 크리스티안을 활어직판장에 데려가죠. "우리는 이걸 바다라고 불러, 고기들이 팔릴때까지 여기서 헤엄쳐" 라는 대사를 하죠. 갇혀있는 어항(수족관)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까 결국엔 죽어서야 탈출할 수 있는 곳이죠. 그리고, 브루노가 처음에 노끈을 보여주면서 '이게 언젠가 유용하게 쓰일거야" 라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하죠.



그래요, 시적 문법을 가진 영화예요. 비워놓은 행간을 굳이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리온이 가진 불행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도 않아요. 그렇지만, 관객들은 그 빈 칸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죠. 반면에 내러티브가 강한 영화들은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스토리를 받아들이는데 집중하죠. 송경원평론가가 말씀하시길  소위 'TMI (Too Much Information)' 즉, 이야기 외에 다른 걸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셨죠. 


전 그래서 [인 디 아일]을 그냥 우리가 경험한 직장생활과 비교해봤어요. 독일정세를 우리는 알지 못해요. 감독도 자세히 그리지 않아요. 다만 그 정서를 황량한 풍경, 한정된 카메라워킹, 클래식과 블루스음악의 대비로 표현했죠. 브루노가 지닌 고독이 얼마나 깊은지 우리는 몰라요. 현실에서 친구나 직장동료의 고독을 알고 있으신가요? 혹여나 가족이라고 해서 그 내면의 고통을 다 알 순 없잖아요. 오지랍처럼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말조차도 폭력적일 수 있잖아요. [인 디 아일]은 그저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곁에 있어주라고 말해요. 이게 고독에 대한 [인 디 아일]이 내놓는 답이랍니다. 주위에 힘든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손을 잡아주세요! 그 뿐이예요.




<추가설명>

겉으로는 대형 마트의 일상을 다루고 있으면서 본질은 통일 독일에서의 휴유증을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독일정세에 몰라도 되요. 그 휴유증이라 '경제성장이 개인의 행복을 증진시켰는가?'를 묻는거죠. 통일독일은 EU존을 형성하며, 환율을 통한 수출경쟁력을 바탕으로 유럽 제일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2014년 세계 무역흑자기록을 경신할만큼 잘 나갔지만, 독일영화 [토니 에드만]과 [인 디 아일]를 보면 독일인들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2019년 IMF 경제전망을 살펴보면, 독일은 1.9%, 미국은 2.5% (2020년 1.9%) 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으로 언론에 못매를 맞는 우리나라는 2.6%입니다. 전세계 경제성장률 2.1%보다 휠씬 높아요.선진국 중에 우리나라가 제일 높게 예상됐지만, 우리 국민들의 삶은 고단하고 힘들잖아요? 


과묵한 인상에 정적인 영화 [인 디 아일]는 "과연 경제성장이 행복과 상관있나요?'고 날카롭게 되묻고 있어요. 그러면서 [쓰리 빌보드]처럼 연대와 공감을 설파하지만, 결코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요. '옆사람이 힘들면 얘기 들어주고, 손을 내밀면 맞잡아주세요.' 라고 권할 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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