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llad Of Buster Scruggs
《카우보이의 노래 (The Ballad Of Buster Scruggs·2018)》후기·리뷰
[카우보이의 노래]는 책 한 권을 여는 것으로 시작해서 6가지 에피소드를 다 읽고서 소설책을 닫는 형식으로 끝맺음한다. 바로 <카우보이의 노래와 개척자들의 동화 The Ballad Of Buster Scruggs & Other Tales Of American Frontier>라는 책이다. 서부극 앤솔러지로 각각 다른 태도와 배역을 가진 서부 개척 이야기를 모았다. 그러나 공통주제는 아이러니한 죽음이다. 원래 TV 편성용으로 제작되었으나, 6편 모두 이어서 봐야 한다는 형제 감독의 주장에 따라 옴니버스 영화 형식으로 바꿨다. 그리고, [카우보이의 노래]는 서부극의 문법을 따르기보다는 우화(동화)를 공통의 형식으로 채택하고서 여러 다양한 장르를 뒤섞었다.
사실 코엔 형제는 평생 모든 장르를 섭렵하려고 했다. 이제껏 누아르, 범죄, 케이퍼, 스크루볼 코미디, 블루그래스 뮤지컬, 스파이, 종교 패러디물, 서부극을 만들어왔었다. 그럼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최대한 스포 없이 다뤄보겠다.
1. 카우보이의 노래
1장은 뮤지컬, 코미디, 서부극, 판타지가 혼재되어 폭력에 관한 그들의 견해를 드러낸다. 기타를 치고 노래하며 유랑하는 총잡이를 통해 웨스턴 장르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폭로한다.
실제 개척의 역사는 낭만적이지도 않고, 잔인하고, 힘겨웠다고, 웨스턴 장르가 자랑하는 '결투' 장면으로 까발린다.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서부에서 자신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죄악시되는 살인을 밥 먹듯 벌어야 한다고 고백한다. 하나, 장르적 쾌감을 안겨주면서도 적절한 유머가 가미되어있어서 단숨에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이후에 펼쳐질 5가지 서부 이야기를 암시한다. 강렬한 펀치라인을 통해 이 영화가 주제가 '죽음' 임을 각인시킨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면은, 구약성서 욥기에서와 동일하게 죽음에는 논리가 없다는 자세를 보여준다.
2. 알고도네스 인근
2장은 억세게 재수 없는 은행강도(제임스 프랑코)가 주인공이다. 대놓고, 케이퍼(강도) 장르의 문법을 블랙 코미디에 유려하게 녹여냈다. 1달에 한번 보안관이 방문하는 은행은 백발의 노인이 지키고 있었다. 그는 2번의 강탈 시도가 있었지만, 미수에 그쳤다고 무용담을 신나게 떨어댄다.
은행강도는 수다쟁이 영감을 우습게 보고 권총을 꺼내 들고 위협한다. 그러나 노인이 젊은 강도를 압도할 수 있는 데에는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라는 명언이 절로 떠오를 만큼 생존이야 말로 그 사람의 능력을 나타낸다. 약육강식이 난무하는 서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우아한 화법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처지를 살펴보자. 그는 운 좋게 위기를 넘겼다가고 불운이 찾아오고 이처럼 아이러니한 죽음은 서부 어디에나 산재되어 있다.
3. 밥줄
3장은 배우 하나에 의존해 유랑하는 극단 이야기다. 시, 연설문, 성경구절, 신화들을 웅변하는 배우는 사지가 없다. 그런 장애 때문에, 먹고, 입고, 싸는 기본적인 생리현상 전부를 유랑극단 단장(리암 니슨)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만한다. 3장부터는 서부 장르의 문법을 버리고, 코엔 형제의 장기인 블랙 코미디와 드라마 장르에 집중한다. 전체 에피소드 중에서 제일 비정한 이야기이므로, 그에 맞춰서 조명과 촬영도 어둡게 처리했다. 그래서 코엔 형제가 처음으로 디지털 촬영 방식으로 찍었다. 이런 인간성에 대한 음침한 우화는 서부극 문법을 이탈함에도 불구하고, 주제는 일정하게 유지하는 코엔 형제의 유려한 솜씨를 즐길 수 있다.
1,2장과 달리 개척사업이 어느 정도 진척되면서 문명사회로의 진보가 이뤄진다.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이 찾아오면 인간은 유희를 찾는다. 여기서 문화가 필요하게 된다. 유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배우가 바로 그러하다.
배경이 서부이다. 자연이라면 살아남지 못할 약자는 문명세계에서 예술가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문명은 자본주의 체제하다. 하지만, 예술은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소비활동이므로 언제나 관람객이 필요하고 후원자에게 의존한다.
그러므로 3장에 등장하는 배우와 유랑극단 단장의 관계는 예술가와 후원자 간의 관계를 치환할 수 있습니다. 영화로 치면, 영화감독과 영화사가 되겠네요, 이때, 팔다리가 없는 배우는 창작의 자유를 상실했음을 의미한다.그가 웅변하는 내용에서 이를 알 수 있죠. 낭만파 시인 비셔 셸리의 '오지만 디아스', 셰익스피어의 희곡들, 성경의 창세기 속 카인과 아벨,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등 서양인들이라면 친숙한 고전들만 반복해서 읊s는다.
현재 영화계도 오리지널 영화제 작은 줄고, 창작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앵무새처럼 리메이크, 속편, 리부트에 목매고 있죠. 한 술 더 떠서 '셈을 하는 닭'을 통해 1차원적인 재미와 볼거리만 쫒는 영화사뿐 아니라 관객들도 함께 풍자하고 있지요. 이상 코엔 형제가 이미 [헤일 시저], [바통 핑크] 등에서 여러 번 다뤄본 테마이지만, 영화가 죽음을 다루다 보니 이번이 제일 섬뜩했다.
4. 금빛 협곡
4장은 광활한 자연에서 홀로 금맥을 캐는 노인(톰 웨이츠)이 주인공이다. 그 독특한 목소리 때문에 캐스팅된 듯싶다. 서부극 장르였던 1,2장이 황야였고, 어두운 블랙코미디 3장의 배경이 혹한의 설원인데 반해 4장의 배경은 녹음이다. 마치 에덴동산처럼 낙원과도 같은 자연환경이다. 이윽고, 서부개척을 이끈 동력원을 등장시킨다. 바로 '골드러시'이다. 개척 이주민들은 신의 이름을 빌려 자연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카메라는 수시로 동물들을 비춘다. 자연의 입장에서 인간은 침입자이며, 환경은 파괴된다. 그러나 노인은 4개의 부엉이 알 중 하나만 먹는다든지 금맥을 찾느라 파놓은 구덩이를 나중에 깔끔하게 원상 복구하는 등 자연과의 공존·공생을 추구한다.
이처럼 4장은 인간과 환경에 대한 우화이지만, 그 가운데 인간들은 탐욕 때문에 서로를 죽이려 든다. 즉, 서부개척 자체가 '약탈경제'였음을 시인하는 바이다. 어차피 인디언에게 빼았은 땅과 자원이니 말이다.
5. 낭패한 처자
5장은 주인공이 여성(조 카잔)이며 실내에서 등장한다. 개척이 진척되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음을 상징한다. 대화의 주제로 의학이 등장할 만큼 문명화는 꽤 진척되었다. 그녀는 오빠의 주선으로 정략결혼을 하기 위해 여행길에 오른다. 집단이주 도중 오빠는 질병 사하고, 그녀는 강아지 외에는 가진 게 없는 무일푼 신세가 된다.새옹지마랄까? 홀로 남겨진 그녀는 길잡이 냅 (빌 헤크)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생애 처음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게 주체가 되고 싶었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식탁에서 나왔던 의학 이야기가 이윽고 질병사를 암시했듯이 유일한 재산인 강아지 '피어스 대통령'을 찾아 나선 그녀는 불시에 아메리칸 원주민에게 습격을 당한다. 참고로, 프랭클린 피어스(14대)는 가정사가 가장 불운한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강아지 이름 자체가 복선인 셈이다.
코엔 형제가 그리는 세상이 언제나 불가해한 불확실성의 세계이듯이 서부도 그러하다. 전체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멜로드라마와 블랙코미디로만 구성되었나 싶었는데 후반은 웨스턴 장르다.
6. 시체
6장은 만담 형식의 우화로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호러와 미스터리가 살짝 가미되어 있죠. 포트모건행 역마차에 동승한 다섯 남녀들은 토론 삼매경에 빠져있습니다. 각자 내뱉는 대사를 통해 각 인물들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지요.
언어가 다르더라도 바디랭귀지로 뜻이 통하므로 사람은 족제비와 같다며, 인간의 본능과 보편성에 주목하는 모피 사냥꾼, 성경의 구원론에 입각해서 죄의 유무로 판별하는 베처먼 부인, 그리고 존재하는 것은 모두 변한다는 공(空) 사상과 운에 따라 결정된다는 프랑스 도박꾼, 마지막으로 생과 사로 인간을 구별하는 현상금 사냥꾼 두 명으로 구성된 5명은 난상토론을 벌입니다.
마침내 호텔에 도착해서 현상금 사냥꾼은 계단을 밞으며 현상범 시체를 옮깁니다. 남은 3명은 사냥꾼을 뒤따르길 꺼려합니다. 만약 현상금 사냥꾼을 '죽음' 혹은 '저승사자'로 비유한다면, 계단은 죽은 자들이 머무르는 "연옥"을 의미하겠고, 그들이 밤새 달려온 마차여행은 "인생"이겠죠.
어떤 삶을 살았든 모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깐요. 호텔 앞에서 머뭇거리는 장면은, 제각기 다른 인생관을 지닌 사람들도 ''죽음"을 쉽게 수용하기 어렵다는 뜻이죠.
이상 6가지 에피소드는 배경, 사건, 인물, 장르 모두 다르지만, '아이러니한 죽음'이라는 공통주제로 통일성을 갖췄다. [카우보이의 노래]과 가장 비슷한 영화는 같은 서부극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더 브레이브]보다는 2009년에 나왔던 [시리어스 맨]과 똑같이 구약성서의 욥기를 차용해서 인과응보식 고난을 부정한다.
지금까지 34년 동안 조엘과 에단 코엔은 장르만 달랐을 뿐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항상 똑같았다. 그중 에단 코엔은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 학사출신이다. 아마 그래서 인간의 합리성을 의심하는 후기 구조주의에 경도된 듯이다. 인간의 합리성으로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 속에서 불가해한 우연성, 비인간성의 유혹 속에서도 잃지 말아야 하는 인간성, 변덕스러운 우주의 섭리에 대한 불가해함, 부조리함이 주를 이룬다.
이런 불가지론적 입장은 칸트의 견해를 따르든, 데이비드 흄의 이론을 따르든 간에 몇몇 명제에 관해서 진위여부를 판별할 수 없음을 뜻한다. 이런 철학을 견지하면서 서부극의 신화를 벗겨내고, 서부 개척민들의 실상에 주목한다. 느슨한 옴니버스 영화이지만 주제는 뚜렷하고, 굉장히 이질적인 장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대가의 솜씨를 한번 즐겨보세요
★★★★ (4.1/5.0)
Good : 같은 주제를 이처럼 다양하게 다룰 수 있다니!!
Caution : 서부극 장르의 쾌감은 1,2,5장에만 있다.
◆코엔 형제가 신생 영화사 안나푸르나(Annapurna)의 메간 엘리슨과 처음 손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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