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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틸 라이프 May 09. 2020

에덴장 여인숙

-그의 시작

 

  늦은 밤, 인적이 드문 도로를 달리던 차는 빠르게 마포 대교에 진입한다. 강을 건너는 시간은 언제나 짧은 감상에 빠진다. 마무리 공사에 한창인 쌍둥이 빌딩과 강변 따라  꾸벅꾸  점멸하는 키높이가 다른  건물들, 검은 무리를 이뤄 잎이 성성해진 나무들과 가로등 빛에  정체를 드러낸 꿈틀거리는 한강의 물줄기.



  다리를 건너자 오래된 시장 근처를 지난다. 뽀송한 귀밑 솜털이 희끗해지고 우뚝 서  덩치를 뽐내던 63 빌딩이  다른 건물과 숲을 이루는 동안 시장바다에 경계를 내어주는 섬처럼 점점 작아져 다. 대로변에 북적이는 사람도 흥정으로 오가던 소란도 덩달아 사라져 버렸다. 룩덜룩한 비닐로 전면 창을 가린 오락실과 베팅의 기대로 설레는 게임장, 이주민 비자상담이 주 업무가  법무사와 간체로 뒤덮인 환전소. 낡은 간판을 간신히 이고 있는 인력 중개소가 과일과 야채가게를 대신해 진작에 자리를 차지했다. 검은 먼지가 뒹구는 계단을 밟고 오르면 만나는 2층엔 와인잔이 그려진 카페와  붉은  유혹하는 성인용품 판매소가 오래된 이웃처럼  어울려 있다.

피곤과 누추함이 사라밤은 쇠락한 거리에 흥청망청 북적이던 과거의 시간과 낭만을 소환한다.



  앞만 보며 달리던 차는  신호등을 만나  동네 초입 횡단보도에 정차한다. 리버 파크나 레이크 힐스 같은 영어 이름을 얻은 시멘트 아파트와 커피 프랜차이즈 사이 덩그러니  얼굴을 내민 간판이 보인다.

  에덴장 여인숙.  

  낡은  건물의  터주가 된 고시원과 원룸텔, 송죽 모텔보다 그곳은 더  오랜 사연품은 듯하다. 길고 좁은 골목  모퉁이에 굳게 닫힌 출입구 옆으로  도로에 면한 방을 밝히는 노란 전구가 말갛게 인사한다.


  하룻밤 8천 원, 고단한 몸을 차가운 숙소기대는 이 누굴. 까맣게 그을린 그의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수월했을까. 새로 다짐하는 그의 가슴은 오늘 하루 몇 번쯤  무너졌을까. 달세를 지불한 201호는 종일 카운터에 웅크린 여인숙 주인과 하루의 고단을 인사로 갈음하고 홀로 소주를 기울이는 중년의 사내일까.  자정으로 향하는 시간은  검은 얼굴의 청년이  낯선 땅에서 처음 맞는 기대와 불안의 밤일까.  어쩌면 오늘 방의 임자는 어린 시절, 숫기 없고 말수 적던  내 짝꿍 소년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 밤이 되면 부끄러움을 매달고 나타났다 삭제되는 글들이 있다. 밤이면 자라나는 만용이  술에 취한 그에게 용기를 준다. 꼬깃꼬깃 숨겨둔 상처와 덧난 마음을 고백하며  여인숙에서 고시원에서 쪽방에서 자라나 글들은  마음만 울리고  삐걱이다 사라져 버린다.  돌덩이가 된 평생의 궁핍과 그의 아닌 세상과 외로움을  털어놓는 사연들. 익명에 기대어 그와 나는  짧은 시간, 마음을 공유한다. 자꾸 도망가는 그의 이야기를 붙들고 너의 잘못이 아니야. 앞만 보고 걸어. 돌아보지  말고 아파하지 할고 너를 사랑해라고 모질게 잔소리한다. 크게 외쳐야 겨우 마음에 닿을까 부질없는 오지랖을 보탠다.


  차는 부드럽게 미끄러져  높게 솟아 하늘까지 뻗은 나의 아파트에 도착한다. 그는 허리가 꺾이는 지게를 지고 이른 새벽부터 이 곳의 벽돌을 하나 둘 올린 기억도 있을 것이다. 뜨거운 한낮의 노동에 으로 절여진 속옷이 허연 소금으로 누렇 말랐을 테니까.


  간신히 기둥을 버티고 있는 여인숙은 조만간  개발로 지워질 것이다.  에덴장과 나란한  상가며 사람이 떠난 빈 집들은 철거되고 높아질 텐데 그는 이제  어느 곳을 찾아 숨어야 할까.

  나는 모르는 그가 가난한 마음과 이별하고 어느  희망의 글로 나타나 잠시 위로받기기다린. 밤이 물러가고 새로 얻는 아침이  어제와 다른 시작이 되기를. 오늘 잠든  에덴에서 이 그의 다짐의 뿌리가 되길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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