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피라밋, 떼오띠우아깐에 가다.
오늘은 멕시코 시티 근교에 있는 피라밋 떼오띠우아깐에 다녀왔다. 어학원 선생님께서는 께레따로가 교통의 요지라 했다. 과나후아또, 과달라하라, 산 미겔 델 아옌데 그리고 멕시코 시티까지. 어디든 차로 갔다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꿈에 장소가 하나씩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우유니가 그랬다. 한 번은 교양 시간에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가족에 대한 말은 금지였다. 가족이 몇 명이고 이런 거 하지 마! 시간 채우려는 너네 속셈 다 알아! 라며 교수님은 미리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자기소개는 참 어렵다. 자소서의 취미와 특기 칸을 채우는 것도 그렇다. 무엇을 말해도 뻔해 보일 것 같았다. 게다가 어차피 이미 다 아는 얼굴들에게 이제 와 뭐 특별히 소개할 것이 있을까. 어떻게 제한 시간을 채워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 소원에 대해 말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우유니에 가보고 싶어요.
멕시코에 처음 왔을 때 사실 내심 기대를 했었다. 처음에 나는 멕시코가 남미와 바로 붙어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우유니쯤은 쉽게 다녀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마르셀라 아주머니와 산책을 할 때 우리는 주로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여행을 워낙 좋아했고, 해외지사에서 근무했던 아주머니는 안 가본 나라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한 번은 가보고 싶은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당연히 우유니를 말했고, 또 기회가 된다면 마추픽추에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너 멕시코에도 피라밋이 있는 거 아니?
모른다고 하자 아주머니께서 멕시코에 있는 곳도 안 가봤으면서 무슨 마추픽추야! 라며 나를 꾸짖었었다. 나는 멕시코에도 피라밋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뗴오띠우아깐(피라밋)은 멕시코에서 있는 유적 중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이 다녀간 곳이다. 작년 한 해만 해도 약 4,000만 명이 다녀갔단다. 멕시코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 피라밋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이모와 이모부는 운전 면허증을 냈고, 나는 어학원에서 발급해준 대학 학생증을 내밀었더니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라더니, 과연 사람이 많았다. 원래 이 피라밋은 중앙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구조인데, 사람이 너무 많으면 중앙계단이 아닌 피라밋 둘레로 빙글빙글 돌려서 입장을 시킨다. 문제는 이곳 멕시코의 날씨가 햇빛 아래는 여름, 그늘 아래는 겨울이 되는 것이다. 이모가 지난번에 왔을 때는 사람이 많아 돌아 올라가야 했는데,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바들바들 떨었다 한다.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좋았다.
피라밋으로 가는 길목에는 노점상들이 줄을 지어 서있다. 장신구, 옷, 어린이 장난감 등 각종 기념품들을 팔고 있다. 그중에서 재규어 소리가 나는 피리가 특히 유명한 기념품인가 보다. 피리를 팔기 위해 곳곳에서 피리를 부는데, 피리소리가 사람이 소리 지르는 것과 비슷해 계속해서 깜짝 놀라게 된다.
줄을 서는 곳 앞 광장에서는 인디언 복장을 한 채로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발에 조개껍데기들을 묶은 채로 춤을 추기 때문에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잘그락하는 소리가 난다.
이곳에는 태양의 피라밋과 달의 피라밋, 두 개의 피라밋이있다. 그렇지만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은 태양의 피라밋뿐이다. 올라가려는 사람이 워낙 많아 입구에서 몇 명씩만 통제해 올려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순서가 될 때까지는 아래에서 줄을 서 기다려야 한다. 드디어 우리 차례. 줄 자체는 길지만 한 번에 꽤 여럿을 올려 보내기 때문에 생각보다 금방 차례가 온다.
피라밋은 조금만 올라가도 숨이 찬다. 고산지대이기도 하고, 피라밋 자체의 높이가 꽤 높기 때문이다. 경사도 가팔라 올라가면서 무릎이 아프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중간 정도 올라갔을 때에 보이는 전망이 좋다. 날씨가 좋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힘든 것도 잊고 그새 기분이 좋아졌다. 중턱은 인생 샷을 찍거나, 키스하는 연인들, 쉬었다가는 아이들로 북적인다. 유명한 관광지라 그런지 한국인, 일본인 등 다른 동양인들도 꽤 보였다. 큰 배낭을 멘 채로 설레어하는 여러 나라 사람들을 보면, 이곳 피라밋이 정말 다양한 나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상의 정 가운데에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곳에는 손가락 하나 정도 넣어 볼 수 있는 홈이 있는데, 다들 그곳에 손가락을 넣고 소원을 빌고 있었다. 멕시코까지 와 피라밋의 기운까지 받는다면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거야 라며 이모가 나를 사람들 틈으로 밀어 넣었다. 좋은 일.. 생기면 좋겠다.
올라오는 줄보다 내려가는 줄이 더 길다. 경사가 가팔라 다들 조심해서 내려가기 때문이다. 정상은 내려가려 줄을 선 사람들로 이미 한 바퀴가 빙 둘러져 있다. 이모부가 줄을 서는 동안 나랑 이모는 정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태양의 피라밋을 내려와 바로 달의 피라밋으로 향했다. 달의 피라밋도 중간까지는 올라갈 수 있지만, 달의 피라밋은 그냥 근처만 구경하기로 했다. 달의 피라밋 바로 옆에는 옛사람들의 주거단지를 구경할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아무래도 너무 오래되었다 보니 현대에 와서 보수를 한 흔적들이 꽤 보인다. 그렇지만 안쪽에 있는 벽화들 만큼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의 것이란다.
이 떼오띠우아깐은 누가 언제, 지었는지 알 수 없는 곳이다. 표지판에 쓰여있는 딱 한마디를 읽을 수 있었다. '마야도 잉카의 문명도 아니다.' 그보다 더 오래된 이전의 문화란다. 이 떼오띠우아깐을 중심으로 당시의 약 10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그 당시 시기를 생각하면, 이곳은 정말 엄청난 번화가였던 것이다.
구경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해 점심을 먹었다. 아무래도 피라밋이 시내와 떨어진 외곽에 있기 때문에 이곳에는 관광버스로 오는 단체관광객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식당 대부분이 단체손님을 위한 뷔페 같은 곳들 뿐이었다. 음식의 가짓수는 많지만, 막상 먹으려 하면 먹을 것이 없는 그런 식당들 말이다.
우리가 간 식당은 줄을 서면 그 자리에서 타코도 만들어 주었지만, 단품 주문 타코와 뷔페 손님을 위한 타코는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단품으로 시켜 먹을 걸 그랬나. 이곳에서는 밖에서 음식을 먹을 때 특히 조심해야 한다. 얼마 전 과달라하라에 다녀온 이후에 3주 동안 장염에 시달렸다. 이것저것 조심하며 가리고 나면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바닷가와 먼 곳에서는 해산물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샐러드와 같은 날것도 위험하다. 이곳의 물은 석회수이기 때문에, 그냥 수돗물로만 씻은 야채를 먹으면 배탈이 나기 쉽기 때문이다.
이제 막 일어나려는 참에 하필이면 나가던 버스 하나가 우리 차를 긁는 사고가 났다. 이곳이 도심과 워낙 떨어진 곳이다 보니 보험을 불러 처리하고 나니 어느새 저녁이 다 되었다.
피라밋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피라밋에는 사람이 전부 빠져나가 텅 비어 있다. 그래서 낮에 보는 것과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사고 덕에 피라밋에 해가 지는 것도 보네. 이모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하려고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정말 그랬다. 예쁜 색의 하늘은 보니 지친 마음이 조금 사그라든다.
사실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별로 나오고 싶지 않았었다. 3주간 앓았던 장염이 겨우 막 나은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막상 나오니 힘들었지만 오길 잘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우유니에 꼭 가야겠다는 결심을 오늘 하게 되었다. 가기까지는 분명 힘들겠지만, 멕시코에서 머물고 있는 이번만큼 좋은 기회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곳에 가서 오늘과 같은 것들을 보고 느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