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r Dec 07. 2018

3. 멕시코 사람들은 왜 약속시간에 늦을까?

멕시코에서의 엄마의 삶과 desayuno문화

 남미 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남미 타임'이라는 것을 들어보거나 경험해 봤을 거다. 약속한 시간에 버스가 떠나지 않거나, 예약한 여행사에서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그런 경험들. 아마 그런 곤란한 경험을 한 뒤에 썼던 말들이라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닐 것 같다.


 남미 타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이곳의 'desayuno' 약속 문화를 소개하고 싶다. 'desayuno'는 스페인어로 아침 식사라는 뜻이다. 멕시코의 식사시간은 우리보다 조금 늦다. 아침인 데사쥬노는 보통 10시 즈음에 시작이 되고, 점심식사는 보통 2시부터 시작이 된다.

데사쥬노를 위해 간 cafe amadeus
나는 보통 오믈렛이나 멕시칸 음식을 시킨다.
오믈렛과 구운 치즈. 약 6,000원.

 앞서 이야기했듯. 멕시코의 대중교통은 열악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엄마들의 삶의 영향을 끼쳤다. ‘이곳은 엄마들이 제일 바쁜 곳이야'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이곳 엄마들의 가장 주된 일과는 아마 아이들을 픽업하는 것 일거다. 마땅한 대중교통도 없으니 당연히 스쿨버스도 기대할 수 없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과외를 하기 때문에 학원버스 또한 없다. 따라서 엄마들은 매일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끝날 시간에 맞춰 태우러 다녀야 한다.


 내가 다니는 어학원은 이곳으로 주재원을 나온 사람들의 와이프분들이 주로 다닌다. 그래서 수강생 중 절반이 아이들을 픽업하기 위해 수업 도중에 빠져나간다. 어학원 창밖으로도 학교 밖에 차들이 줄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부 아이의 픽업을 대기하고 있는 엄마들의 차들이다.

 우리 이모의 하루 역시 여느 엄마들과 같다. 식구들의 식사를 차려주고 집안일을 하다가, 시간이 되면 어학원에 가는 나를,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인 아들들을 태워주기 위해 하루에 수십 킬로를 달리다 끝난다.


 바쁜 엄마들에게 그나마 허락되는 시간은 아마 아이들이 학교를 간 아침시간일 거다. 시간을 내서 날짜를 잡은 엄마들은 그렇게 데사쥬노모임을 가진다. 이모에겐 멕시칸 친구들이 참 많았다. 어렸던 사촌동생들이 외국인이라고 소외당할까 봐 꾸준히 모임에 참여해온 덕분이다.

 얼마 전 친하게 지내던 이모 한 명이 몬테레이로 떠났다. 땅이 넓은 멕시코에서 이곳 께레따로와 그곳의 거리는 거의 다른 나라로 떠난 것과 마찬가지란다. 이모에게 섭섭하지 않냐고 물었다. 교포사회에서는 늘 언제든지 헤어지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해. 담담하게 말하는 이모에 대답에 어째 나는 서글퍼졌다.


 이모는 한국에 오면 거의 매일 밤 약속을 잡았다. 우리 가족들은 그런 이모를 두고, 날라리 엄마라고 놀렸었다. 사교성이 좋은 이모는 친구가 참 많았기에, 그것도 겨우 줄이고 줄인 약속이라고 투덜 됐었다. 그런데 이곳에 이모는 한국에서의 모습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바쁜 집안일에 늘 지쳐 쓰러져, 주말이 되고 나서야 겨우 맥주 한 캔을 마실까 했다. 함께 놀던 교포 친구들과는 벌써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이모에게 몇 년에 한 번 오는 한국행은 모든 집안일과 일상에서의 해방이었던 것이었다.




 차라리 멕시칸들과 친구가 되면 그나마 헤어짐이 적다고 한다. 이번 모임은 이제 6학년이 된 사촌동생의 유치원 동창들의 엄마들과의 모임이었다. 그런 모임에 내가 따라가도 돼? 하고 걱정했었지만, 역시나 그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다들 반겨주었다.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가족을 중시하는 멕시코 사회에서는 이처럼 파티나 약속에 친구가 가족을 데려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란다.


 멕시칸들은 처음 보는 사이라도 반갑게 인사하고, 헤어질 때도 무척 아쉬운 듯 인사한다. 그리고 나중에 가족을 데려왔던 친구를 다시 만날 때면, 늘 그때 만났던 가족에 안부도 꼭 함께  묻는다. 저번에 본 네 조카 있잖아, 잘 있어? 하고 말이다.

우선 만나면 다들 beso, 혹은 abrazo로 인사를 한다. 베소는 키스고, 아브라소는 포옹이다. 베소는 보통 여자가 하는 인사다. 남자끼리는 아브라소나 악수를 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 베소 인사가 참 적응이 안됐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뽀뽀하라고? 그냥 인사만 하면 안 될까?

-안돼 누나, 그거 예의 없어 보일 수 있어.  

 어린 사촌동생이 꾸짖듯이 말하자 나는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마다 끌어안고 뽀뽀를 했었다. 나중에 가서 알았는데, 베소를 할 때 진짜 입술과 볼이 닿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서로 끌어안고 볼과 볼을 마주대기만 해도 된다. 야, 너 왜 저 아줌마 볼에 립스틱 다 묻혀 놨냐? 언젠가 이모부의 지적을 듣고 나서야, 베소가 볼과 볼만 닿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탁에 미리 빵과 살사 등이 미리 준비되어있다.

 멕시코 식당은 들어가면 보통 마실 것부터 주문을 받는다. 이곳 사람들은 워낙 커피를 많이 마셔서, 식당에서 대부분 보온 주전자 몇 개씩의 커피를 미리 준비해 둔다. 그리고 종업원들이 수시로 돌아다니며 커피가 더 필요한지 물어보고 리필을 해준다. 간혹 리필이 가격이 추가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식당에선 미리 말해주지 않으니 주의하자. 사람들이 데사쥬노를 위해 자주 모이는 식당에 식탁에는 보통 식전 빵과 각종 살사(소스)들이 준비되어 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친구들이 올 때까지 보통 그 빵과 커피를 먹으며 기다리다가, 친구들이 거의 모일 때쯤 메뉴를 시키면 된다.

 워낙에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는 이곳 사람들의 모임은 웬만해서는 4, 5시간은 금방 넘긴다. 우리 이제 일어날까 하는 말이 나오고도, 헤어지는 인사를 하는데만 30분 혹은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인사가 끝나고, 이제 드디어 집에 가는 걸까 하면 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럼, 우리 다음엔 언제 볼까? 헤어짐과 동시에 다음 약속이 잡힌다.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자~'가 이곳에선 '언제? 그래 언제 볼까?'하고 바로 약속이 잡히는 걸까.

또르띠야에 치즈가 들어간 음식 께사디아
타코를 말아서 튀긴 음식 따끼또.

 다음 약속은 그다음 주 화요일 아침 10시였다. 그러자 이모가 묻는다.

'10시라고? 그래, 그럼 나는 몇 시에 올까?'

이모에 물음에 이모의 친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11시에 나와~'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서, 이모가 나에게 이곳의 '남미 타임'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이곳의 시간 개념은 우리와 조금 다른 것 같다. 이모도 멕시코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남미 타임' 때문에 꽤나 애를 먹었다 한다. 한 번은 한 멕시칸 가정집에 8시에 초대를 받았었고, 시간 약속을 중요시 생각하는 이모는 당연히 8시 정각에 딱 맞춰서 갔다. 그러나 이모는 10시가 넘어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8시에 도착했을 때 초대한 집에서는 저녁 준비는커녕, 식탁은 텅 비어있고 집주인도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집주인 아주머니는 이층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8시가 되자 슬슬 일어나 그때부터 식사 준비를 했다고 한다.

 나도 이곳에서 사귄 멕시칸 언니 덕분에  언니 친구들의 파티에 여러 번 초대받았었다. 처음 초대받은 파티는 밤 9시에 시작한다고 했지만,  나는 미리 언니에게 물어봐 따로 약속을 잡아야 했다.

-언니 그럼 우리 몇 시에 만나요?

-9시 시작이니까 우리는 9시 반에 만나서 10시까지 가자~

오히려 9시 정각에 가는 것이 호스트를 당황하게 할 수 도 있기 때문에 천천히 가는 것이 예의라고 했다.


 한 번은 어학원에서 스페인어의 'gustar '동사로 예문을 만들었었다. gustar동사는 좋아한다라는 동사로, 앞에 no를 붙이면 부정문이 되어 싫어한다가 된다. 선생님은 나에게 한국인이 싫어하는 3가지와, 멕시칸이 싫어하는 3가지로 예문을 만들게 시켰다. 이전에 만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예문은 선뜻 만들었는데, 싫어하는 것에 대한 예문은 자칫 멕시칸 선생님을 불쾌하게 할까 봐 망설였었다.

-음.. 멕시칸들은 싱거운 음식을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너무 뜨거운 음식도 싫어하는 것 같고.. 음... 음..

-그리고 또 제시간에 오는 것도 싫어하지~

선생님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마지막 예문을 만드는 것을 도왔다.


 이처럼 남미 타임은 이곳에 일종의 관습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제시간 맞춰서 오는 것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이모의 친구들은 이제는 매번 모임마다 이모에게만 한 시간, 혹은 삼십 분씩 늦게 나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이모가 제일 먼저 모임 장소에 나간 적이 종종 있었다. 심한 경우는 2시간 혹은 2시간 30분씩 약속에 늦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렇다고 화내는 사람은 하나 없다. 걔는 맨날 그래~ 하고 다들 웃어넘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