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일치와 복구, 그리고 의미만들기

<관계의 불안은 우리를 어떻게 성장시키는가>를 읽고

by 에린하

나이가 들면서 자주 하게 되는 말중 하나는 뭐 하나 유전이 아닌게 없다 싶을 정도로 신체에서 약한 부분, 성격에서 모난 부분이 하나같이 부모님을 빼닮았다는 것이다. 20대에 유난히 말랐던 친구 s는 최근 살이 찌게 되면서 본인의 체형이 엄마와 똑같은 걸 깨닫고 놀랐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오랜 논쟁거리였던 선천적 본성(nature)과 후천적 환경(nurture)의 문제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인간이 타고난 기질이나 조건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성장 과정과 경험을 통해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은 단순히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식의 낙관적 이상론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타고난 성향이나 환경을 극복하고 변화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뼈를 깎는 고통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여러 기회와 자기 의지가 있었음에도 변하지 못한 것을, 오직 유전자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최근 상담 선생님이 추천해준 <관계의 불안은 우리를 어떻게 성장시키는가>를 드디어 읽었다. 초입에는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할수 있는 불일치-복구-의미만들기의 근간이 된 무표정 실험에 대해 소개한다.


생후 몇 개월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다. 실험자는 엄마에게 의도적으로 무표정을 유지하도록 지시한다. 아이는 처음엔 어리둥절해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초조해지고 불안을 느낀다. 그러면서 본능적으로 엄마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시도한다. 온갖 표정과 손짓, 소리 내기, 결국엔 울음까지 동원한다. 아기는 언어를 배우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엄마와의 정서적 연결을 갈구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능동적으로.


아이는 이런 시도를 통해 결국 엄마의 주의를 다시 끌어내고, 정서적 스트레스를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우리는 종종 건강한 관계에선 갈등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혼란과 불일치는 인간 관계의 기본 설정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어떻게 회복하느냐다. 아기는 이런 불일치와 회복의 경험을 통해 최초의 ‘의미 만들기’를 시작한다. 자신의 행동이 상황에 영향을 미치고, 관계를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온몸으로 체득하는 것이다.


아기는 성장하면서 수없이 많은 불일치에 직면하게 된다. 가족, 학교 친구, 선생님, 그리고 사회 속의 수많은 낯선 사람들까지.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자신과 타인의 다름을 확인하고, 그 차이를 마주하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주체적 감각이 서서히 자리 잡는다. 타인과의 불일치를 피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대화와 타협을 통해 회복의 경험을 반복할 때, 비로소 성숙한 관계의 안정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문득, 나는 과연 그런 성장 과정을 온전히 통과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뚜렷하게 떠오르는 긍정적인 레퍼런스는 많지 않다. 오히려 다양한 갈등 속에서 불편함과 도망치고 싶었던 감정들만 선명히 남아 있다. 불일치를 겪는 순간마다, 그저 빠르게 안정감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 감정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억누르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렇게 쉽게 ‘괜찮은 척’, ‘아무 일도 없던 척’하며 진짜 감정은 방치한 채 스스로를 속여온 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불편한 감정을 상대에게 오해 없이 잘 전달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때로는 그것이 불가능의 영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리 언어를 정제하고, 의미를 구체화해도 결국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언어일 뿐이니까. 그래서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천천히, 신중하게 상대의 반응을 살피고,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손짓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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