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묵혀 있던 과거의 문제를 직시하고자 마음먹게 된 건 내가 갈등을 다루는 데 아주 취약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오래 전부터 두루두루 친구를 사귀기 보다 한, 두명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는 편이었고 그 중심에는 나와 20년 지기인 J가 있었다. 고등학교부터 삶의 접점이 거의 없다시피 한 우리였지만 기어코 서로의 첫번째 친구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갓 스무살을 넘긴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불안했고 득인지 실인지 모르겠지만 좁은 J의 원룸에서 함께 살다가 짧게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같이 수업을 듣고, 방을 같이 쓰며 24시간을 붙어 있던 우리는 낯선 환경에서 사소한 일로도 의견 충돌을 하며 예민해져갔다. 원체 조심성이 있는 J와 달리 겁이 없던 나 사이의 어떤 결정에 이견이 있게 되었고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높은 데시벨로 싸우게 되었다. 나는 내 입장을 밀어 붙이던 와중에 해결책을 찾지 못하겠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에게 상처만 준다면 안타깝지만 나는 이 관계를 놓을 수 밖에 없겠다는 선언을 했고, J는 울고불며 절연을 하자는 거냐며 소리를 쳤다. 작은 방에서 도망치지도 못하며 궁지에 몰린 나는 비겁하게 절연이라는 카드를 꺼냈지만 서로가 없는 삶은 상상이 되지 않았기에 결국 나는 내 실언에 사과를 하고 J를 부둥켜 안았다. 이후로 우리는 단 한번도 언성을 높이며 싸운적이 없다. 이 사건 이후로 각자를 너무도 이해하게 되었기에.
이후 사귀게 된 남자친구들과의 싸움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이어 나갔다. 특정한 문제로 갈등이 생기다가 결국에는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가버리거나, 그럼 그냥 헤어지자고 협박을 한다거나. 참 미숙하고 어리석은 과거였으나 작년까지도 이런 저런 관계에서 비슷한 양상을 띠며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스스로 섬이 되기를 자처하던 시기는 지나갔으나 여전히 타인과의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어찌할바를 몰랐다. 나 자신에게 질려버린 나는 부단히 나를 이해해보고자 불안형, 회피형, 안정형과 같은 인간이 갈등을 다루는 꽤나 큰 카테고리를 공부해보려 했고, 성격장애 유형이나 나르시스트에 대해 탐구하면서 아 이건 혹시 내가 아닐까 하며 괴로워하기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부터 회피형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자 나는 문득 겁이 났다. 내가 나를 이해해보고자 사용했던 어떤 카테고리가 타인이 나를 판단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어항에 사는 물고기는 자신이 물에 있는 걸 알아채지 못한채 살아간다. 너무나 당연해서 물 밖의 삶을 상상할 수가 없을테니깐. 애초부터 불안형이나, 회피형이니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는 얘기를 들었을때 나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지 않은 삶을 상상하게 되었다. 내 스스로가 연기를 하고 있는것인지 의문을 갖게 되었고, 그걸 변호하고 있는 내 모습을 다시 한번 자조하게 되는 그런 순간들을 겪지 않는 삶도 있겠지 하는 그런 자기 연민들
나는 내 과거로부터 그만 도망치고 마주하기로 결심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관성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모든 것의 시작은 나의 과거가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음을 인정하고, 생존을 위해 선택했던 행동들을 차근차근 짚어보는 것이다. 선생님은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기저에는 항상 '슬픔'이 있다고 하셨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냐고 하셔서 나는 힘들었겠네 .. 하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는 나의 어린시절에 대해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이제는 조금 터놓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 과거가 아프고, 슬프고, 안쓰럽고, 화가 나기도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