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지금이에요

by 에린하

당장 불면으로 인해 고통을 받거나 공황이 올때면 급하게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처방 받으러 정신과에 가면 된다. 그마저도 물론 쉽지 않은 발걸음이라는 것을 안다. 수 많은 미디어에서 심리 상담과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것이 심심찮게 노출되더라도 애초에 병원을 가야되겠구나 하고 인지하는 것부터가 요원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의 경우는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빠에 대한 증오를 심심찮게 드러내놓고 다녔기 때문에 종종 불거지는 타인 과의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이 이곳에서 부터 출발한게 아닐까 라고 아득하게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이 연결고리가 분명하지도 않고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고 꼬였는지 조차 알수가 없어서 아예 싹둑 잘라버리고 싶은 욕망과 하나하나 풀어내고자 하는 마음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깊은 애착 관계를 두려워하고 갈등을 건강하게 다루지 못하는 사건을 반복해서 마주하고 나서야 ' 아 더는 지체할 수가 없구나'라고 생각할 즈음 무료 상담을 알게 되고 시작하게 된 것이다. 올 초의 나는 다시 시작하게 된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제외하고는 별 다른 고민이 없었다. 늘 나를 따라 다니던 유학 이라는 과제도 해결했고, 끝이 보였던 장거리 연애도 결국 마무리 했기에 그저 상담을 통해 과거를 들여다 보는 일에 집중하면 되었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했다. 세 차례 정도의 상담이 끝난 직후 다시 일하게 된 직장이 너무 맞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해보지도 않고 하고싶지도 않았던, 그러나 언젠가는 해야만 했던 업무를 배우고자 최소한의 월급만 받고 들어간 곳에서 맞지 않는 사람들과 맞지 않은 업무를 꾸역꾸역 해나가고 있었다. 돌고 돌아 오게 된 네 번째 직장에서 여전히 고군분투 하고 있는 나를 보자 '아 동기들이 진작에 끝낸 일들을 나는 이제서야 하고 있구나, 필드를 너무 오래 쉬었구나, 하는 마음과 내가 정말 다시 이 업계에 적응해서 개업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들이 나를 바닥치게 만들었다.


평일 저녁 퇴근 후 상담을 가면 일과 중 실수 했던 것들 그래서 혼났던 것들이 머리를 가득 채우면서 도저히 과거에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금 힘든 감정을 털어놓는 나에게 그만하라며 할 수 없는 노릇이라 선생님도 울면서 답답해 하는 나를 지켜보며 간간히 감정을 되새기는 걸 도와주셨다. 상담 과정에서는 내가 왜 상사를 대하는 것이 이리도 불편하지, 왜 일과 사람을 떼어놓을 수 없는지, 이전에도 비슷한 패턴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지에 대한 얘기로 1시간을 꼬박 채웠다. 내가 유독 불편해 하는 사람의 유형에 대해 스위치가 켜지는 것을 알아채고 지뢰를 피해갈수만 있다면 우선 반절은 성공한 것이라는 단기적인 해결책도 제시해주셨다.


이후 만나는 친구마다 직장에서의 괴로움을 털어 놓는 나를 발견하고는 내 선택이 맞지 않았구나를 깔끔히 인정하고 사직서를 냈다. 두 달만에 퇴사라니. 잦은 이직러인 나조차도 이도저도 아닌 경력이 될까봐 무서웠지만 새로운 곳에 이력서를 쓰면서 의지를 다지니 오히려 그만두는 것이 쉬웠다. 굶어죽기야 하겠나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다행히 처음 면접을 본 곳에서 바로 출근했으면 좋겠다는 통보를 받고 쌓여있던 불안이 쓸려 내려갔다.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지 3주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잠깐 쉬었던 상담을 다시 잡자고 선생님에게 연락했다.


수요일 저녁. 최대한 일을 빨리 쳐내고 상담을 하는 당산으로 이동했다. 새로운 직장에서 그리 멀지도 않았고 걷다보면 적당히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초여름의 날씨였다. 시간이 애매해서 급하게 근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헤치우고 선생님을 보러 가는 길에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터에서 지쳐 버린 몸과 마음이 호기롭게 상담을 재개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토록 가볍게 눌러버리다니. 그럼에도 꾸역꾸역 발을 내딛어 보려고 했다. 해결될리 만무한, 당분간은 어두컴컴한 지하 세계를 모험해야 하는 심정에서 하는 상담이지만 기억 저편에 여전히 갇혀 있는 그때의 나를 돌이켜 보기 위해서.


큰맘 먹고 마주한 선생님에게 털어놨다.

'아, 선생님 오늘도 상담 받으러 오는 길이 전혀 가볍지 않았어요. 이제는 직장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고, 인간 관계나 미래에 대한 막연함에 짓눌리지도 않는데도요. 그런데도 이때가 아니면 도저히 상담을 받기는 요원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맞아요. 지금이 가장 상담받기 좋은 시기에요' 일상의 잔잔한 불행들로부터 비교적 안전해서 내가 오롯이 나의 과거를 들여다 보는데만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지금. 그걸 스스로 생각해내셨군요! 두발 자전거 타기를 성공한 아이에게 마치 묘기라는 한 것 같은 갈채를 보이는 어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절대적으로 상담하기 좋은 시기라는 건 없을 테다. 내가 가장 필요할 때 하는 상담이 가장 시의 적절한 상담일테다. 그런데과거의 나로부터 발목이 잡히는걸 알면서도 끝끝내 잘라내지도, 영영 되돌아 보지 않을 결심을 하지도 못하는 나에게는 지금이 바로 상담을 하기 가장 좋은 시기였다. 일상이 평온하면 할 수록 내 심연을 들여다 보기 가장 좋은 시기인게 맞다. 제 때 나를 찾아온 상담을 반가운 마음으로 임해야겠다. 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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