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마침내 해냈어요!
20대에 그토록 미뤄왔던 심리 상담을 시작하게 된 건 의외로 아주 단순했다. 내가 사는 동네의 노동자 지원 센터에서 운영하는 무료 상담이 있는데 지인과 지인의 지인의 후기가 제법 괜찮았다. 10회라는 비교적 짧은 세션이었지만 그래도 무려 공짜 상담이라는 걸 알고 덥썩 신청하고 나니 내가 그리 상담을 미뤄 왔던 건 아마도 상담 비용 때문이 가장 컸구나. 싶었다.
꽤나 최근까지도 생각 없이 사들인 한철 유행 지나면 입지 못할 옷들이나, 순간의 기분을 위해 마셨던 비싼 술과 음식들에 쓰는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았는데 나를 옭아 매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데 그리 돈이 아까웠던 거다. 아마 그 정도로 시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내 우선순위에서 야금야금 밀려 났던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심리 상담의 효용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었다.
상담을 받는다고 뭔가 달라지는게 있을까? 내가 당장 부모와 연을 끊을 것도 아니고, 왜 당신들의 실패한 결혼에 나를 휘말리게 만들어 평생 나를 이렇게 힘들어 하느냐고 소리칠 것도 아닌데 말이지. 마침 독일 생활을 마무리하고 내가 태어나고 내 말을 하는 한국에서 이래저래 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하여 실행에 옮기려는 의지가 매우 높았고, 무료 상담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이윽고 첫 상담은 지체 없이 진행이 되었다.
눈이 오는 3월의 어느 일요일 오전이었다. 앞으로 10회 동안 상담을 이끌어갈 선생님은 인상이 매우 좋으신, 웃는 모습이 선한 분이셨다. 선생님은 상담에서 지켜야 할 몇가지 룰을 알려 주셨고 상담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물으셨다.
"저의 유년시절 기억들이 현재 가장 친밀한 관계에 영향을 미쳐요, 아주 오래 전부터 너무 가까운 사이에 대한 알지 못할 두려움이 있었고, 특히 제가 애정을 쏟는 대상들과의 갈등을 성숙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도망가 버리거나, 결국은 그들을 낙담하게 해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유년시절 잘못 형성된 애착관계 때문이 아닐까 하고 짐작해요."
라고 허공 어디쯤을 쳐다보며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걸핏하면 쌍욕을 하고, 엄마를 때리고, 집안 물건을 내던지던 아빠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혐오에 대한 것이었고, 또 엄마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과 안쓰러움, 불안감이 투사된 애정을 소화하지 못하는 마음들에 관한 것이었다.
어느 시점부터 단편적인 장면들로만 기억나는 10대의 기억들을 과연 잘 끄집어 낼 수는 있을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하는 생각들이 뒤섞인 채 상담이 끝났지만 이미 터져버린 홍수 같은 마음은 도저히 멈출 길이 없어 사람많은 버스에 타서도 눈물이 쏟아졌다.
아 나는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이 이토록 고통스럽구나,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하염없이 무너지는구나. 싶었고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걸 해내는 수밖에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집 근처 백반집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너무 울어 퉁퉁부운 얼굴, 코가 막혀 먹먹해진 귀, 골이 울리는 두통이 뒤따라 왔지만 일요일 아침에 심리 상담을 결국에 다녀온 내가 대견했다.
그렇다, 첫 번째 상담은 그 느낌 만으로 충분했고 본격적인 다음주의 상담이 기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