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쿠팡의 위치란
제주로 옮겨 온 뒤, 사소한 것 하나가 유난히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배송비.
육지에서는 늘 3천 원 남짓한 기본 배송비나 너그러운 무료배송에 익숙해 있었기에 배송비 때문에 망설였던 기억은 오래전 일처럼 희미했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기본 배송비가 6천 원이라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평소 옷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구매하던 나는 습관처럼 장바구니에 몇 가지를 담았다가, 배송비를 보는 순간 구매 의지가 확 꺾였다. 5만 원짜리 바지였는데 배송비가 붙는 순간 총액이 10%나 증가하는 셈이니, 자연스럽게 물욕이 사라지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요즘 쿠팡에서 성인 4명 중 3명의 개인정보가 털린 사고를 보면 이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깊숙하게 쿠팡의 생활 안으로 들어와 있는지 실감한다. 로켓배송은 익일배송과 새벽배송을 지원해 급하게 필요한 물건을 받기엔 쿠팡만 한 곳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쿠팡 와우 회원제는 일정 금액을 내면 배송비가 무료라서, 내 주변에도 와우 회원이 적지 않다.
제주에는 2020년 두 곳의 쿠팡 배송 캠프가 들어서며 로켓배송이 시작되었다. 올해 초에는 신선식품도 새벽배송을 한다니, 이제는 이 섬도 육지와 거의 같은 속도를 누리게 되었다. 제주 사람들은 쿠팡을 ‘갓팡’이라 부른다.
나는 육지에서도 쿠팡을 이용해본 적 없었다. 급하면 뭐든 직접 사러 나가는 성미도 한몫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쿠팡이라는 기업의 노동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리의식이라고 부를 것도 아니고, 그저 그런 기업에 돈을 보태고 싶진 않다는 조용한 다짐같은 것이었다. 사실은 필요하면 직접 발을 움직이는 게 더 마음 편했을 뿐이다.
쿠팡의 물류센터에는 매일 수많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드나들며 포장하고, 분류하고, 다시 포장하는 반복으로하루를 채운다. 산재 사고는 끊이지 않았고 긴 노동시간은 뉴스에서 자주 수면 위로 떠오르곤 했다. 그럼에도 스스로 선택해 들어갔으니 어쩌겠냐는 말이 나오고,계약서에 서명을 한 개인의 자유의지가 소환된다. 얼마전 민주당의 과거 청년 비대위원장이 이 쿠팡에서 직접일한 기록을 보았다. 새벽을 위해 밤낮없이 돌아가는 배송 창고와 냉장고들, 그곳에서 쉼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갓팡이라는 찬사와 뭣 같은 노동환경이 기묘한 모양으로 공존하는 회사
때로는 내가 이용하는 재화와 서비스가 어디서, 누구의노동에서 흘러들어왔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 부분을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하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거의 남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노동자이지만 노동자라는 정체성은 종종 일상에서 밀어두고 싶은 그림자다.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자아를 위해 일하며, 그 대가로 급여를 받는 일상은 너무도 익숙해서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소비는 우리에게 작은 자유를 주고, 순간적인 해방감을 주며, 그 경험을 누구보다 쉽게 자랑하고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쿠팡의 지배구조와 노동조건 문제는 앞으로도 꾸준히 다뤄질 것이다. 뉴스 헤드라인에 한 번씩 등장해 이마를 찌푸리게 만들겠지. 그런데도 우리는 다음 날 문 앞에 정확히 놓여 있는 택배 상자를 보면 그 모든 고민을 잠시 기억 속에서 지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