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너무 힘들지만,
어떤 운동이든 얼마나 했는지 따지는건 의미가 없다. 짧은 기간이라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느냐, 온전히 마음을 썼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요가는 그냥 내 일상의 일부 중 하나였지 어려운 동작을 수행해내거나 호흡과 요가의 정신에 대해 탐구하는 영역이 아니었다. 최근 몇 년간 집중한 운동은 헬스와 서핑이었는데 내게 헬스는 기초 체력 유지 목적, 즉 생존의 목적 외에는 정말 지루한 운동이고 서핑은 잘하건 못하건 그냥 너무 좋아하는 운동이다. 그러다 보니 한동안은 또 요가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언제든 몸의 어느 부위가 지나치게 굳어 있어 불편감이 느껴질 때, 잡념으로 집중을 하지 못할 때면 찾게 되는 것이 요가였다. 마치 오래된 친구 같은 요가와 좀 더 교감하는 시간을 가져야 겠다는 의지를 부리고 싶어졌다.
요가 수련을 하러 일부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제주도에는 유명한 요가원들이 꽤 있다. 아무래도 자신만의 생활 리듬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건지는 모르겠다. 본격적으로 추워지는 12월부터는 서핑이 어려워 수온이 올라가는 5월 전까지는 요가에 집중하기 적격이다 라는 판단에 새벽 요가를 등록했다.
새벽 수련은 조금 나이대가 있고, 요가에 집중하고자 하는 분들 10명 내외의 수련생이 듣는다. 한번 오후 수업을 들었는데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고자는 무언의 눈치 싸움으로 수련 시작전부터 기가 빨린 나는 아무리 일어나기 힘들어도 새벽 요가를 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선생님의 수업에는 후굴 동작이 많다. 그래서 수업 시작 전 휠로 허리를 충분히 풀어줘야 한다. 머리서기도 안되는데 그 자세에서 몸을 반으로 접고 다시 뒤로 접고 하다보면 중간에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로 피가 쏠리고 모든 고통이 허리에 집중되는 느낌을 받는다. 첫 수업에서부터 선생님의 강력한 핸즈온에 k.o가 되서 숙련자분들이 기이한 동작을 할 때 나는 이미 사바 아사나에 진입했다. 땀과 차가운 공기가 섞이면서 몸이 으슬해지려는 순간에 선생님은 담요와 안대를 살포시 덮어 주셨다. 그러고 정말 아기처럼 잠들어버렸다. 평상시 사바아사나는 지루해서 스킵하였는데 괜히 사바 아사나가 모든 요가의 마무리 동작일 수 밖에 없겠다, 그리고 제대로 된 마무리와 휴식이 수련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 뒤에 선생님이 내려준 보이차와 짜이티를 마시며 몸을 다시 깨우는 시간을 갖는다. 수련생이나 선생님이나 큰 대화를 하지는 않는다. 한 공간에서 각자의 호흡에 맞는 수련을 하고 나서 가지는 차담 시간 또한 흐름의 일부인 것 처럼 느껴졌다. 어떠 요가이던 간에 가장 중요한것은 호흡이다. 가끔은 사람의 몸으로 저게 가능한가 싶은 동작들을 하는 순간에도 들숨과 날숨이라는 생존에 필수적인 행위를 어떻게든 이어나가는 것 말이다.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지다가도 찬찬히 호흡을 하다보면 몸과 마음이 가지런 해진다.
새벽요가는 그 자체로 나에게 훈련이다. 해가 뜨지 않는 시간에 일어나서 몸을 풀고 요가원에 가서 자는 동안 굳어 있는 몸을 움직여 다양한 자세를 해내고, 휴식을 가진 뒤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아직은 수면 사이클에 적응하지 못해 온종일 눈꺼풀이 무겁고 몸은 두들겨 맞은 듯이 뻐근하다. 그럼에도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시간이 벌써 하루를 가득 채운다. 숙련자를 보고 과한 욕심을 내고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무리해서 어떤 동작을 해냈다고 해서 그게 요가와 친해졌다는 것은 아닐 테다. 기능적으로 유려한 요가 동작을 해내는 것보다는 수련을 수행하는 그 모든 흐름안에서 온전히 집중하고 싶다.
샨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