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차, 제주도의 이모저모

by 에린하

1. 호구조사의 기본은 ‘출신 고등학교’

어느 지역이나 비슷하겠지만, 외지인 유입이 많은 제주에서는 ‘찐 제주’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유독 단단하게 느껴진다. 신기하게도 그 출발점은 대학이 아니라 고등학교다.

“어디 고등학교 나왔어요?”

이 질문 한마디에 분위기가 달라진다. 특히 40대 이상에서는 출신 고등학교가 같다는 사실만으로도 친밀도가 순식간에 100으로 상승한다. 대학은 대부분 육지로 나가기 때문에, 오히려 학창 시절의 기억이 더 강하게 남는 걸까. 제주제일고등학교, 제주고등학교 같은 일반계 고등학교 사이에는 은근한 서열 이야기도 존재한다. 도민들은 가끔 이 ‘고교 서열’에 대해 꽤 진지하게, 심지어 침까지 튀겨가며 토론하곤 한다.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귀엽다.


2. 제주시에서 서귀포는 해외여행

제주에 살기 전엔 섬이니까 다 가깝겠지라고 생각했다. 큰 오산이었다.

신제주라 불리는 노형·연동, 그리고 구제주인 시청 근처 사람들은 생각보다 생활 반경이 크지 않다. 차로 1시간 남짓 걸리는 애월에 친구를 보러 간다면, 그 친구는 찐친일 확률이 높다.

제주시 사람이 서귀포시에 간다고 하면 “그냥 1박 하고 와”라는 농담이 따라붙는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혹은 동쪽과 서쪽으로 이동하는 일은 생각보다 큰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이벤트다.

같은 섬이지만 생활권은 또 다른 세계처럼 나뉘어 있다. 제주에서의 1시간은, 서울에서의 1시간과는 결이 다르다.


3. 잔치에 진심인 도민들

제주 사람들은 잔치에 진심이다. 특히 결혼식.

서울에서 흔히 보는 30분 ‘예식-식사 분리형’ 결혼식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가족과 친지들이 대거 모이고, 피로연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반나절 가까이 이어지는 잔치가 자연스럽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더 길어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또 하나 흥미로운 문화는, 친한 친구가 결혼하면 청첩장 이미지를 카카오톡 프로필로 바꿔두는 것.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 “우리 식구 결혼해요”라는 연대의 표현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제주 결혼식에 제대로 초대받아 그 긴 하루를 온전히 경험해보고 싶다.


4. 돈 주고 귤 사 먹으면 슬퍼하는 도민들

제주 살면서 귤 받을 데 없으면 왕따라던데요?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거의 사실에 가깝다.

겨울 수확철이 되면 식당과 카페 한쪽에 귤 상자가 툭 놓여 있다. 각 집안에 한 명쯤은 귤밭을 가지고 있고, 주말이면 귤 따기를 도우러 간다. 상품성이 조금 떨어지는 귤은 회사로, 가게로, 이웃에게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나 역시 이번 겨울, 온갖 종류의 귤을 얻어먹었다. 천혜향, 한라봉, 레드향 같은 이른바 귤 사촌들. 귤을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건 어쩌면 관계망 밖에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제주에서 귤은 과일이라기보다 관계의 매개에 가깝다.


5. 따뜻한 도민들

프로 이직러인 나는 지금까지 다섯 번 회사를 옮겼다. 서울에서도 좋은 동료들을 만났지만, 이렇게까지 끈끈한 분위기는 처음이다. 동료의 배우자와 친구를 서로 소개하고, 함께 밥을 먹고, 온라인 게임을 한다. 나는 아직 그 모임에 깊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서로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문화가 꽤 인상적이다.

누군가에겐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사람들이기에, 그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일터는 훨씬 편안해진다. 제주에서 내가 가장 크게 배우는 건, 어쩌면 이런 관계의 온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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