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과 같은 베를린의 여름
맞다. 이 글은 하루종일 해 한번 보기 힘든 11월의 베를린에서, 찬란했던 여름을 기억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여름이 지나가고 독일에서의 2번째 겨울이 찾아왔다. 10월 말 썸머타임이 해제되고 이제는 4시반만 되면 일몰이 시작된다.
독일에 오기 전에는 내가 이렇게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인줄 몰랐다. 한국의 뼈가 시리는 겨울을 마냥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해라도 떠 있으니 실내로 피신하거나 롱패딩을 입으면 그럭저럭 생존이 가능했다. 그런데 독일의 겨울은 제법 달랐다. 영하의 온도는 한국에서 훈련이 되어 있지만 해가 없는건 다른 문제였다.
아침 10시쯤되면 아 아침이구나 할 정도의 미세한 변화가 있지만, 오후 4시쯤 그나마 있던 해마저 지고 나면 어둡고 긴 밤이 찾아온다. 하루종일 영어나 독일어에 치여서 집에 와서밥을 해먹으면 금방 9시가 되고 밤 10시가 되기전에잠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신체적으로는 건강했을지 모르나 정신적으로는 쉽게 나태해졌고 쉬이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왜 독일에 와서 사서 고생하는 거지하면서 눈물을 훔친 날도 있었다. 이러한 감정상태가 오로지 날씨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을 차지한건 확실했다. 왜 북유럽, 영국 사람들이 한 겨울에 우울증 약을 처방받는지 이해가 갔다 (악명이 높은 영국의 겨울도 독일보다 나은것 같기도..)
-회색 필터를 씌워 놓은듯한 독일의 겨울
해가 너무나 그리웠던 나는 스카이스캐너를 뒤져서 가장 저렴한 목적지인 마요르카로 향했다.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을 잔뜩 품고 다시 독일로 돌아오니 나머지 겨울학기를 이겨낼 에너지가 생겼다.
- 사진에서도 뿜어져 나오는 스페인의 햇살
12월은 크리스마스와 연말, 새해 분위기와 파티 덕에 그럭저럭 잘 이겨낼 수 있었으나 1월이라는 고비가 왔다. 독일인들도 이때부터는 다들 진짜 겨울이라고 여기며 그리스나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거나 볼더링을 가는등 각자의 방법으로 나머지 겨울을 이겨낼 준비를 한다. 나는 온라인 인턴쉽을 선택해서 몇 주간은 모로코로 떠났다. 그렇게 독일의 첫 겨울은 따뜻한 나라로 피신을 한 덕에 살아남았고 4월에 드디어 베를린으로 왔다.
- 늘 북적거리는 La Maison
날씨가 주는 행복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베를린의 여름은 천국과 같았다. 햇볕은 찬란했으나 전혀 습하지 않았다. 독일의 건물에는 대부분 에어컨이 없는데 나는 운이 좋게 아주 큰 나무의 그늘에 가려진 기숙사에 살아서 8월에도 큰 어려움이 없이 잘 이겨냈다.
습도뿐만이 아니라 독일의 여름은 참 길었다. 아침 5시반이면 해가 들어와 강제 기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밤 9시에도 해가 떠 있어서 지침없이 야외 활동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선사햇다. Lucas는 여름 베를린에는 항상 어딘가에서 재밌는 일이 일어나서 잠들 수가 없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다. 잠을 자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베를린 여름 밤들.
밤 9시의 일몰
베를린의 여름은 공원과 Späti의 계절이다
베를린에는 수십개의 크고 작은 공원들이 흩어져 있는데 걔중 호수나 spree강과 바로 이어져 있어 여러 activities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주변 친구들에게 베를린의 매력이 뭐야? 라고 물으면 늘 공원이라고 답할정도로, 베를리너들은 저마다 각자의 최애 공원을 마음 속에 품고 있다.
- 애정하는 Körnerpark 그리고 Urbanhafen
가벼운 미니 피크닉부터, open air party, movie night 매일 할거리들이 넘쳐 난다.
1. 베를린의 가장큰 연례 행사인 Rave the planet
2. 기숙사에서 열리던 summer kino night
또 하나 독일의 소중한 문화인 späti. 한국의 편의점과 같은 späti에서 맥주나 스낵을 사서 근처 공원에서 마시거나 혹은 spati 앞의 테이블에서 노상을 깐다. 저렴한 술값때문에 찾는 이들이 많지만 그저 맥주 한 병을 손에 쥐고 쉴새 없이 밤거리와 공원을 서성이는 것 만으로도 좋다. 잠들지 않은 사람들의 에너지와 청량한 녹음은 여름 밤의 베를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 아마 이번 여름 수십병은 마셨던 Augustiner Helles
베를린 여름의 또 다른 재미는 호수 수영이다. 북쪽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바다를 보기 힘든 독일사람들은 호수에서 수영을 하거나 패들 보드를 타는 등 수상레저를 즐긴다. 친구끼리 옹기종기 모여 태닝을 즐기는 소소한 행복
- 기숙사와 가까워서 매주 갔던 schlactesee 그리고 북쪽의 am pichelssee
호수 뿐만 아니라 인공 수영장도 하나의 묘미다. Spree강과 이어져 있는 이 곳은 아 베를린이 대도시가 맞지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 여름의 막바지에 갔던 Badeschiff
그리고, 찬란했던 여름은 끝나고 다시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독일 친구들에게 저마다의 겨울 생존법을 물으면 겨울도 그렇게 나쁘지 않아. 사우나를 가거나 친구들과 하우스 파티를 해도 되고. 따뜻한 차,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내면의 에너지에 집중하면서 소중한 여름을 다시 기다리면 되는거야. 라고 했다.
해가 사라진 베를린의 겨울이 다가오니, 왜 독일인들은 한 겨울에도 햇빛만 있으면 기를 쓰고 야외 테라스에 앉아 있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갔다. 오늘 일주일만에 뜬 해를 보며 감사한 마음에 라떼를 한 손에 들고 걷고 또 걸었다. 어둠이 없다면 빛도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리 나쁘지 않은 독일의 겨울을 또 한번 이겨내면서 소중한 여름을 갈망해야지
- Lukas 할머니 레시피로 만든 suppe와 dampfnudel. 따뜻한 수프와 와인이면 긴긴밤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