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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레티아 Sep 18. 2024

서론: T라 미숙한 자의 감정 일기

T라 미숙합니다

요즘 MBTI가 유행한다. 아니, 요즘이라 말을 하는 게 맞나? 몇 년 전부터 MBTI가 유행했다. 잠깐 지나가고 말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까지도 처음 보는 자리에서는 'MBTI가 뭐세요?'가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한 질문 중 하나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재미로 보는 MBTI에서는 항상 INTJ가 나오고, 종이로 하는 정식 MBTI에서는 ISTJ가 나온다. 질문지 응답 개수를 따져보면 N과 S는 거의 절반 정도로 나오지만, I, T, J는 압도적으로 높게 나오는, IxTJ인 사람이다. 

MBTI란? 카를 융의 성격 유형 이론을 바탕으로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제작한 자기 보고형 성격검사이다. 총 4개의 척도에 대해 2가지 극으로 나뉘어, 2^4=16개의 조합이 가능하다.

1) 선호하는 세계: 내향(I), 외향(E)
    - 내향은 내면세계, 외향은 세상과 타인을 선호한다
2) 인식 형태: 직관(N), 감각(S)
    - 직관은 실제 너머로 인식, 감각은 실제적으로 인식한다
3) 판단 기준: 감정(F), 사고(T)
    - 감정은 관계와 사람 위주로, 사고는 사실과 진실 위주로 판단한다
4) 생활양식: 인식(P), 판단(J)
    - 인식은 즉흥적인 생활, 판단은 계획적인 생활을 의미한다

출처: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MBTI

이 중 T 성향 때문에 최근에 다양한 밈이 나오고 있다. '너 T야?', 'T라미숙해~' 등. T인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보는 밈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T인 사람들은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편견에서 유래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나 우울해서 빵 샀어'라는 질문을 들으면 F는 '무슨 일 때문에 우울했는데?'를 묻고, T는 '무슨 빵 샀어?' 등을 묻는다고 한다. T인 자로써 억울해서 변명하자면, 모든 T가 그런 것은 아니다. 사회성이 충분한 T는 왜 우울한지 물어본다...! 다만 왜 우울한지 듣고 난 이후에 '어떡해... 힘들었겠다 ㅠㅠ'라는 반응보다는 '그렇구나... 그 상황은 어떠어떠한 상황이니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다.

MBTI를 떠나서, 객관적으로 나는 공감을 잘 못하기는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공감 '표현'을 잘 못한다. 슬픈 소설책을 읽으면 울기도 하고, 불쌍한 사연이 있으면 안쓰러운 마음을 느끼기도 하고, 친구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괜히 내가 동네방네 알리고 싶다. 사건의 당사자 앞에서 위로하거나 축하하는 것을 잘 못할 뿐이다. 말로 못하면 표정으로 나타내주면 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심지어 표정도 잘 없다. 예전에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고 있었는데, 밥을 사주는 분께서 '맛있니? 맛있게 먹고 있니?'를 계속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막 기쁜 표정이 아니어서 오해했다고 한다.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다. 더 어릴 때는 말을 안 해도 내 맘을 알겠거니, 생각했는데 커가면서 느끼는 것은 절대 그렇지 않다. 말을 하고 표현을 해야 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점을 파악했으니 해결책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첫 번째는, 어휘력을 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하는 감정 표현은 극히 드물다. 있어봤자... 비속어가 대부분인 것 같은데... (개쩐다, 대박, 재수탱, 미친...) 할 줄 아는 표현이 없으니 표현을 못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정의를 엄청 따지는 사람으로서,  '지금 상황에서 매우 힘들겠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나? 힘든 것보다는 슬픈 게 맞지 않나?'라는 생각을 가끔 하기 때문에 어떤 단어가 무슨 뜻이고 어떠한 상황에서 쓸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다.

두 번째는, 뭉뚱그려진 감정 상황을 낱낱이 쪼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의 온갖 기분 나쁜 상황은 '짜증난다'로 퉁쳐지고, 기분 좋은 상황은 '쩐다', '짱이다'로 퉁쳐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짜증나는 상황은 아닌 경우가 많았다. 화가 날 때도, 억울할 때도, 불안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 상황을 구별을 못 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공감의 표현을 건넬 때 할 수 있는 표현이 '정말 짜증나겠다'밖에 없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주 표현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이든지 어색하더라도 계속 연습을 해야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 나에게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감정 일기를 써보기로 하였다. 논문을 찾아보니 한국인의 감정 표현은 434개라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정리한 바가 있다(박인조&민경환, 2005). 매주 한 표현을 골라 그 표현에 대한 상황을 돌이켜보며 글을 쓴다면 어휘력도 늘고, 감정 상황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감정 표현 목록을 쭉 보면서 지금 떠오르는 감정 상황이 없다. 내가 애초에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나? 소설책에서만 봤던 표현이 아닌가? 한편으로는 그런 감정에 별 신경을 안 쓰고 살아서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에게는 이 연재를 하는 것이 새로운 도전이고 약간은 고역인데, 이 연재를 읽는 분들에게는 나의 고역이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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