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해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
곤혹스럽다 | 형용사
(1) 【…이】【-기가】 곤란한 일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이 있다.
직장인들은 주위 사람들이 언제 승진하느냐고 물어 올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
이 지겹고 곤혹스러운 도시의 일상적 삶에서 그런 것 외의 무엇이 자기의 몫으로 남아 있단 말인가. (이동하, 도시의 늪)
(출처: 우리말샘)
이번주는 시골할머니 팔순잔치가 있던 날이었다. 우리 윗 세대에는 친척들이 다 같이 모여살았기 때문에 이런 행사가 있을 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렇게 되면 동일 촌수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으니 누군가를 부를 때 이름을 붙여야 한다. 그냥 '당숙'이 아니라 'OO 당숙' 뭐 이런 식으로... 안 그러면 본인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이름이나 촌수, 나이가 헷갈려서 잘못 말한 적은 없지만, 새로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그래서 가족 구성원이 추가가 되면 헷갈린다. 그... 누구 남편분...?
어른들과 달리 가끔 보는 친척 아이들은 매번 봐도 매번 새롭다. 얘가 그 꼬맹이야? 얘가? 벌써 이렇게 컸어? 그래서 자꾸만 물어보게 된다. 이름이 뭐야? 몇 살이야? 학교 재밌어? 나 누군지 알아?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6촌 언니의 딸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물어보았다. "너는 이름이 뭐야?" 그랬더니 대뜸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아까 이야기해줬는데 왜 까먹어!" 순간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내가 이름을 물어본 아이가... 노란옷이었고... 분홍옷 중 더 어린 애는 아직 말을 잘 못하고... 얘는 이름을 안 물어본 것 같은데? 심지어 너무 확신을 갖고 있는 말투와 표정 때문에 잘못 대답했다가는 아이의 자존감이 깎이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정말 뭐라 대답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너 왜 어른에게 화를 내"라고 할 수는 없고, "나는 물어본 적 없는데?"라고 같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도 안 되고, 그래서 내가 고른 문장: 최대한 어리둥절한 표정과 목소리로, "나에게도 이야기 해 줬었어?" 조카는 해당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했는데 주변이 시끄러워서 내가 잘 못 들었다. 곧 다른 조카가 들고 온 풍선에 시선을 뺏겨서 아이는 그 자리를 떠나버렸고, 옆의 어른이 이름을 대신 알려주었고, 나는 약간 억울하면서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행사가 파할 때쯤 뭔가 이유를 깨달을 것 같았다. 나는 두 살 차이 나는 친언니가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쌍둥이냐고 물을 정도로 닮았고, 가끔 보는 친척이 봐도 헷갈릴 정도로 닮았다. 언니 직장 사람도 헷갈려하고, 친구들도 착각하고, 심지어는 휴대폰도 헷갈려한다! (휴대폰 사진 앨범에 내 이름을 검색하면 언니 독사진이 끼어있다.) 그리고... 하필 그날 나랑 언니는 비슷한 색의 옷을 입고 왔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언니 OO에게 이름 물어봤었어?" "응, 그 분홍색?" 억울했던 나는 아까 있었던 상황을 설명했고, 언니는 마침 근처에 있던 조카에게 "얘랑 나랑 다른 사람이야! 나는 □□이고 얘는 △△야."라고 설명해주었다. 조카는 굉장히 머쓱한 표정을 짓다가 도망가버렸다.
처음엔 내가 곤혹스러웠고, 이후에는 조카가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곤혹스럽다'는 말은 곤란한 일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이라고 한다. 내가 곤혹스러웠던 이유는 내 말에 어린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렸을 때 어른들의 배려 없는 말에 상처를 받았던 적이 많다. 내 말을 듣지도 않고 혼내던 어른,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던 어른, 좋은 말로 비꼬는 뉘앙스를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지 웃는 얼굴로 조근조근 잔소리하던 어른... 그래서 혹여나 내가 조카의 확신에 찬 오해를 바로잡는 과정에 상처를 주고, 그게 두고두고 남을까봐 걱정이 되어서 뭐라 대답할지 몰라 곤혹스러웠다. 조카는 조카 입장에서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인 줄 모르고 화를 냈으니 엄청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나도 친구인 줄 알고 멀리서부터 소리쳤는데 그냥 똑같은 옷을 입은 남이었을 때를 깨달았을 때 온 얼굴이 새빨개져서 도망갔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해한다.
조카야, 다음에 만날 때는 언니와 나를 구별해서 기억해주렴!
cf. 언니와 나를 구별하는 방법은 쉽다(?). 나는 코에 튀어나온 점이 있다. 요즘은 색이 많이 빠져서 튀어나온 덩어리처럼 생겼지만 어릴 때는 점이었다. 만약 마스크를 둘 다 낀 상태라면 한쪽 눈 밑과 반대쪽 눈썹 밑에 점이 있는 사람이 나다. (이렇게 쓰다보니 점순이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