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짢게 되어버린
씁쓸하다 | 형용사
(2) 달갑지 아니하여 싫거나 언짢은 기분이 조금 나다.
씁쓸한 표정.
씁쓸하게 웃다.
저번 주말에 대형마트를 갔다. 쇼핑이 끝나고 2층 주차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대뜸 먼저 탄 할아버지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당신네들 때문에 지하를 못 가잖아!"
상황은 이랬다. 해당 대형마트는 엘리베이터가 좌우로 두 대가 있다. 그리고 두 대는 버튼 연동이 되는 시스템이다. 즉, 한 쪽의 버튼만 눌러도 양 쪽의 엘리베이터에 불이 들어온다. 효율적인 엘리베이터 운영을 위해 내가 누른 쪽의 엘리베이터가 아니더라도 경로 상 가까이 있는 엘리베이터가 먼저 오게 된다. 하지만 나에게 소리를 지른 할아버지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1층에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우측' 엘리베이터에 있는 아래쪽으로 간다는 버튼(↓)을 눌렀다. 나는 할아버지보다 늦게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서 역시 '우측' 엘리베이터의 위로 간다는 버튼(↑)을 눌렀다. 두 대의 엘리베이터 중, 3층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던 '좌측' 엘리베이터가 도착을 하였고, 해당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간다는 표시가 떴다. 하지만 우측 엘리베이터만 보고 있던 할아버지는 그 사실을 놓쳤다. 곧이어 지하 1층에서 올라오고 있던 '우측'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간다는 표시를 띄우며 도착했고, 할아버지가 먼저 타고 내가 뒤이어 탔다. 할아버지는 B1버튼을 눌렀지만 버튼이 곧 비활성화가 되었고, 뒤이어 온 내가 2층을 누른 것이 활성화되어 엘리베이터는 위로 올라갔다. 그래서 나에게 소리를 지르신 할아버지는 내가 늦게 왔으면서 우측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우측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을 누르고, 위로 가니까 많이 짜증이 난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성격이 순하지 않다. 혼자 있을 때는 '에효, 그냥 무시하고 말지'라며 상황을 넘어가는 경우도 많은데 여럿이 있을 때, 특히 가족이 있을 때나 내가 챙겨야 하는 사람이 있을 때 정말 잘 따진다. 당시 부모님도 있었고 다른 사람도 탄 상황이라, 즉각적으로 반박을 했다. "이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였어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옆의 것이 먼저 왔고요." 아, 추가로 더 안타깝게도, 내 목소리는 째진다. 남들보다 높고, 멀리까지 나가는 쩌렁쩌렁한 성량. 늘 내 외모만 보고 여린 여자아이겠거니, 하는 분들이 목소리를 들으면 많이 놀란다. 그래서 내 목소리에 할아버지가 놀랐는지, 이후로 조용하게 계셨다.
갑자기 소리지르던 사람이 조용해지니 반박하고 나서 조금 미안했다. 사실 그 할아버지가 몰라서 그런 거니까. 차근차근 알려줬으면 이해하셨을까?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 소리지르지 말고 "왜 B1 버튼이 안 눌리지?"라는 식으로 말씀하셨으면 내가 목소리 톤을 낮추고 목소리에 공기를 더 섞어서 차분하게 대답해줬을텐데... 순간 미안하면서도 내가 왜 미안해야하지?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씁쓸하다. 내가 겪은 상황이 억울하기 때문에도 씁쓸하고, 노인에 대한 동정심 같은 것도 들어서 더 씁쓸했다. 누구나 나이가 들어 기술적인 것을 못 따라가면 혼자 오해하고 혼자 억울하고 화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서 다짜고짜 모르는 사람에게 화를 내지는 않고 싶다. 그런데... 그게 내 맘대로 될까? 모르기 때문에 일단 화 내고 보니 '앗 아니었네!'하는 상황이 더 많지 않을까?
참 늙는다는 것은 씁쓸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씁쓸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 더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