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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레티아 Oct 23. 2024

[감정일기] 서러운 PMS시기

원통하고 슬프다

서럽다 | 형용사

(1)【…이】 원통하고 슬프다.

    신세가 서러워서 울다.  

    타향살이하는 내 처지가 서럽기 그지없다.  

(출처: 우리말샘)


PMS가 뭔지 아는가? 아마 여자들은 알거고, 남자들은 많이 모를 것이다. 바로 Premenstrual syndrome의 약자로, '월경 전 증후군'으로 번역이 된다. 이는 월경 전 시기, 주로 월경 시작 1~2주 전에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정신적 및 신체적 증상을 의미한다. 증상은 사람마다 다른데 배가 더부룩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머리가 아프기도 한다. 또한, 우울하기도 하고, 불안하고, 예민해지고, 짜증이 나는 정신적 증상들도 꽤 있다. 

나는 꽤 오랫동안 PMS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PMS가 있다는 친구들을 보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것처럼 힘들어 했었기 때문에 대체 월경을 언제 할련지 감도 못 잡는 둔탱이는 PMS따위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최근에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신체적 증상은 없는데 (없는 게 맞겠지?), 정신적 증상이 있는 PMS가 주변 친구들에 비해 약하지만 있다. 아니, 어쩌면 안 약한 편일 수도 있겠다. 그 시기에는 정말 별거 아닌 일로 서럽고 펑펑 울어버리기 때문이다.

일례로, 키우던 선인장의 색이 일부분 변한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겨울이었고 밑동 부분이라서 과습인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몇 날 며칠을 인터넷을 뒤져가며 '선인장 과습', '선인장 썩음' 등을 검색했다. 외국 사이트도 찾고 별의 별 사진을 다 보았던 것 같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이런 고민을 들은 언니가 일단 엎어서 확인해본다고 손해볼 건 없지 않냐고 그랬다. 그래서 선인장이 불쌍해서 펑펑 울었다. 이후 선인장 껍질을 살짝 뜯어보았는데 아주 멀쩡해서 선인장에게 미안해서 또 펑펑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MBTI가 T여서 평소에 감정이 별로 없다고 평가 받는 내가 할 짓은 아니다. 그런데 그 때는 너무 서러웠다.

또 다른 일례로, 오늘은 몸이 좀 안 좋았다. 그 이유가 전날 있었던 추운 날의 야외 활동 때문인지, 전날 먹었던 마트 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평소 같으면 욕 한 번 하고 뚱하게 맡은 일 다 하며 살았을 것 같은데 오늘은 너무 서러웠다. 몸 상태가 이따구인데 6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지하철에 사람이 많은 것이, 추운데 지하철이 에어컨을 튼다는 것이 너무 서러웠다. 심지어는 교수님과 이야기하는데 뭐라 한 것도 아니다, 조금 의견 충돌이 있었는데 그게 너무 서러웠다. 따뜻한 물을 마시고 싶어서 정수기를 찾으러 복도에 나갔는데 시야에 없는 것이 너무 서러웠고, 식당에서 후식으로 준 누룽지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 차가운 식혜였다는 것이 서러웠다. 결국 연구실에서 울다가 진통제를 받았다. 남자 교수님이라서 이해를 못 한 것 같기는 한데, 그냥 몸이 안 좋구나를 이해해주시고 빨리 퇴근시켜줘서 감사했다.

하지만 PMS기간에 가장 서러운 것은 "쟤 생리할 때 되어서 그래"라고 나의 기분을 뭉뚱그리고, 그러한 기분이 온 원인이 무엇인지 들어주지도 않고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심지어는 "생리하냐? 그래도 특혜는 없어"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싫다. 그냥 오늘 하루종일 기분이 괴랄하니 짜증을 내지 않도록 노력하겠지만 그게 잘 안 되니 내 말투가 강해도 감안해달라는 말인데, 너가 내 말에 마음이 상할까봐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인데... 간신히 붙잡은 감정줄은 비아냥거리는 "생리하냐?" 한 마디에 놓쳐버리게 되고, 그 순간 분노눈물이 차오른다. 그러면서 동시에 화가 나는데 저 눈 앞의 대상에게 소리지르지 못하고 울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서럽다.


'서럽다', 원통하고 슬프다는 뜻이라고 한다. '원통하다'는 분하고 억울하다는 표현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내 감정인데, 한 달에 1주 이상을 호르몬의 농간으로 몸도 안 좋고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이 정말 원통하고, 슬프고, 그래서 서럽다. 대체 왜 인간은 이렇게 진화를 했는지... 


문득 개그콘서트 '알지 맞지'코너가 떠오른다. 

출처: 개그콘서트 유튜브 https://www.youtube.com/@KBS_Gagconcert

(김시우 개그맨) 서러워서 죽는 사람이 어딨냐?

(남현승 개그맨) (모종의 서러운 사건 이후 죽는 연기를 한다)

(정태호 개그맨) 서러워서 죽었어~! (삑사리)


 cf) 자료를 찾다보니 서운해서 죽었어는 있는데 서러워서 죽었어는 왜 안 나오지? 유튜브는 동영상 검색 시스템을 개선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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