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히는 벽 부서짐
어처구니 없다 | 형용사
(1) 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는 듯하다.
약이 뒤바뀌는 어처구니없는 간호사의 실수로 상처가 도리어 덧나고 말았다.
내가 그 여자에게 결혼 신청을 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어머니와 형님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출처: 우리말샘)
살면서 벽을 부셔본 적이 있는가? 난 있다. 그것도 여러 번.
아 물론 나는 힘이 무지막지하게 강한 사람이 아니다. 분노에 가득찬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벽을 때리는 사람도 아니다. 내가 벽을 부순 것은 전부 내 탓이 아니다. 벽 탓이다. 더 엄밀히 따지면 그 옛날에 이 집을 지은 사람의 잘못이고, 이 집을 설계한 자의 잘못이다. 아니, 그냥 오래 흘러버린 시간이 잘못이려나?
집에 있는 벽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바로 내력벽과 비내력벽이다. 내력벽은 지붕이나 바닥의 하중을 아래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무게를 지탱하는 벽이다. 반면 비내력벽은 무게를 지탱하지 않고 단순히 공간만 구분하기 위해 세워진 벽을 의미한다. 만약 집을 개조하고 싶다면 비내력벽은 뜯을 수 없고, 내력벽은 뜯어서 공간 구조를 바꿔서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아파트는 벽식구조로 되어있어 배관이나 배전반을 숨기기 위한 석고보드 벽을 제외한 거의 모든 벽이 내력벽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필이면 우리 방의 한쪽 벽면이 비내력벽이다. 부셨을 때 내부 색이 흰색인 것을 보니 석고보드 벽이라 추정한다.
각설하고, 처음 벽을 부셔보았던 것은 아마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가끔 바람이 세게 부는 날 창문을 열어두면 문이 꽝! 하고 닫히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다시 문을 열려고 하면 방과 거실의 압력 차이에 의해 문이 잘 안 열린다. 쉽게 설명하면 내 방 창문은 계속 열려있으니 방 안으로는 바람이 계속 들어오고, 계속 방문을 미는 것이다. 요즘은 그 정도 바람의 힘이야 개의치 않는 어른이 되었지만, 어릴 때는 문이 안 열리니까 온 힘을 다해 문을 세게 밀었던 것 같다. 그리고 쾅! 동그랗게 튀어나온 방문 손잡이가 벽을 부셨다. 동그랗게 패인 벽을 보면서 아주 당황했었다.
가장 최근에 벽을 부순 건 저번주 주말 아침이었다. 잠이 깨어서 말똥말똥하지만 왠지 주말이라 일어나기 싫었다. 침대에 누워서 한 손으로는 웹툰을 보면서, 발로는 벽을 밀고 있었다. 왜 내가 벽을 밀고 있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벽에 발을 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쑥 하고 발이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나 확인해보니, 벽이 들어갔다. 다행히 벽지가 전부 찢기진 않아서 벽지를 살살 당겨 원래 위치에 두니까 티가 안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힘이 세진 않은데, 고작 발 좀 밀고 있었다고 부서지는 벽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다, 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는 듯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황당하고 당황하는 것보다 더 어이없는 상황에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 약간 '황당 < 어이없음 < 어처구니 없음'의 순서로 느낀다. 벽 부서짐 사건은 쾅 친 것도 아니고 발로 밀다가 부서진 것이므로 '어처구니 없음' 단계에 해당하는 사건인 것이다.
남들은 나와 비슷한 순서로 감정을 느끼려나? 궁금하다.
p.s. 벽 부심 사건이 있고 나니까 모기를 잘 못 잡게 되었다. 원래는 벽에 내려앉으면 냅다 후려쳤는데, 왠지 후려쳤다가 벽을 더 부술까봐 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