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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레티아 Nov 13. 2024

[감정일기] 무료한 지하철

심심하고 지루한 이동시간

무료하다 | 형용사

(1) 흥미 있는 일이 없어 심심하고 지루하다.

    무료한 시간.  

    모처럼 휴일에 할 일이 없어서 텔레비전을 보며 무료함을 달랬다.  

(출처: 우리말샘)


나는 지하철 끝자락에 산다. 종점은 아니지만, 거의 종점이라서 운이 좋으면 출퇴근 시간에도 앉아서 갈 수 있는 위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약속을 가든, 행사를 가든 기본 1시간 이상 이동한다. 


지하철에서 이동하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없다. 균일하게 덜컹덜컹 흔들리며 어느 역인지 알려주는 단조로운 소리,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한두번이지 계속 보다보면 다들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을 자거나, 아니면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한다. 휴대폰으로 다들 뭘 하는 것인지, 우연찮게 본 남들의 폰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었다.

출처: freepik (https://shorturl.at/zbReJ)

첫째로, 웹툰, 인스타, 유튜브 등의 컨텐츠를 본다. 시간 때우기 아주 좋은 행위이다. 나도 종종 보는데, 문제는 나는 웹툰을 많이 보지 않고, 인스타를 하고, 유튜브 추천 동영상을 두었다. 왜 이렇게 현대인과 같지 않은 행태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일단 웹툰은 요즘 그림이 예쁜 건 많은데, 이해가 어려운 것도 많다. 이건 내 문제인데, 유럽이 배경인 로맨스판타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등장인물이 많아지는 순간 누가 누구인지 머리에 힘주지 않으면 까먹는다. 또한, 줄거리가 조금이라도 늘어지거나 개연성이 떨어지면 중도하차를 하고싶어지는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그만 보는 경우도 많다. 인스타의 경우는... 그냥 취향이 안 맞는다. 광고도 너무 많고, 관심 없는 내용도 많고, 중복되는 내용도 많고,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정보가 뜬다. 유튜브는 동영상 1~2개 가지고 알고리즘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유튜브에서 뉴스를 보는 순간, 특히 정치 뉴스를 하나라도 클릭하는 순간, 알고리즘은 망했다. 그래서 알고리즘을 꺼 두었다. 그 때문에 컨텐츠를 보는 것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봤자 30분 정도만 때울 수 있다.

 

둘째로, 게임을 한다. 옛날에 애니팡 유행할 때는 모든 분들이 애니팡을 하고 계셨는데, 요즘은 뭐가 유행인지 모르겠다. 나는 스도쿠를 제외한 게임은 잘 안 한다. 결제를 안 하니까 자꾸 중간광고가 떠서... 그나마 했었던 것이 스타배틀 논리 퍼즐인데, 인터넷을 끊고 게임을 하면 중간광고가 안 떴다. 하지만 1주 만에 끝까지 다 풀어버려서 다시 스도쿠만 하고 있다. 문제는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게임을 하면 종종 멀미가 난다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15분이 나의 한계인 것 같다.


그렇게 대략 45분을 때우고 나면 (약속 장소까지의 거리가 1시간 반이라고 했을 때) 45분 정도가 남는다. 휴대폰 배터리를 잠깐 체크하고, 남는 시간은 온갖 이상한 상상을 하며 보낸다. 지하철에서 사람이 쓰러지면 어떻게 하지? 화재가 나면 어떻게 하지? 임산부가 보이면 얼른 비켜줘야 하는데 내가 눈 감고 있는 사이에 오면 어쩌지? 논문 리비전이 이러쿵저러쿵 오면 어떻게 반박하지? 내년에 직장에 들어갈 수는 있을까? 상사가 나쁜 사람이면 어떻게 골탕먹이지? 좋은 사람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무료하다. 지하철을 타고 어디를 가는 것이 너무 심심하고 지루하다. 예전에는 도착을 하면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 것을 기대해서 멀리 가더라도 들떴는데 이제는 그런 들뜸도 사라진 것 같다. 길바닥에서 보내는 시간이 낭비인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어서 슬프다. 무료한 지하철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까. 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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