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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일기] 켕기는 데가 있는 장보기

계산을 잘못할까봐 불안하다

by 미레티아

켕기다 | 동사

(2)【…이】 마음속으로 겁이 나고 탈이 날까 불안해하다.

녀석이 자꾸 나를 피하는 것이 뭔가 켕기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큰소리치지만 속으로는 켕기는 것이 있는 모양이군.


우리 동네 마트는 4만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을 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물, 과일 등 무거운 것을 사러 갈 때는 늘 이것저것 장을 보게 된다. 마트 어귀에서 카트를 잡아 들면 이제 나는 머릿속에서 나만의 작은 전쟁이 시작된다: 바로 물건값 계산하기.


엄마: "버섯을 사야겠지?"

엄마가 종류별로 버섯을 담아든다. 980원, 1280원, 990원. 대략 1000원에 1300원에 1000원이니까...

엄마: "OO아, 콩나물이 나을까 숙주나물이 나을까?"

나: "글쎄, 난 둘 다 괜찮은데." 아까까지 3300원 정도.

엄마: "이 콩나물이 할인해서 얼마라는 거야?"

나: "그거 XX카드 쓰면 ~~원이래. 근데 사실 그람당으로 따지면 쟤가 더 쌈."

엄마가 할인하는 콩나물을 집어든다. 2580원이니까 아까랑 합쳐서...

엄마: "집에 두부 남아있나?"

나: "몰라. 없을 걸?" 5900원 정도인 것 같은데...

엄마가 두부를 집어든다. 1250원이니까 1300원으로 계산하면 7200원 정도인데...

엄마: "고기 먹을까 생선 먹을까?"

나: "고기는 정육점이 더 낫지 않아?" 지금까지 10원짜리를 내가 대충 올려서 계산했으니 100원 깎으면...

7100원.

...

엄마: "OO아, 지금까지 얼마야?"

나: "대략 삼만 이천원에서 몇백원 빠질거야."

엄마: "배송해야 하는데 뭐 사지...?"

계산대 앞에서 사과가 행사를 하는 것이 보인다.

엄마: "감 말고 사과 살까?" 엄마가 사과를 넣고 감을 빼러 간다.

그렇다면 감이 7500원 정도이고 사과가 9800원 정도이니 2300원 더해서 삼만사천삼백원정도.

...


그렇게 열심히 장을 보고 계산대에 가기로 최종 결정이 나면 괜스레 가슴이 두근댄다. 40,280원. 아싸!


다들 계산기 둬서 뭐하냐고 그러긴 하지만 한 손으로 카트 끌면서 한 손으로 폰을 하고 있기에는 내 물리적 능력이 부족하다. 카트는 어찌저찌 몸으로 대충 민다고 해도 휴대폰... 한 손 조작 가능하세요? 그냥 머릿속으로 하는 것이 편하다. 다만 아주 넉넉잡아 계산을 해서 보통은 초과한다. (아, 안 될 것 같은데? 모자랄 것 같은데? 반올림 너무 많이 했는데?)


며칠 전, 또 장을 보러 갔다. 이번에도 요플레와 우유 등 무거운 물건을 사러 갔다. 그런데 문제는, 전날 과일을 샀고 고기는 정육점에서 샀다는 것이다. 채소 가격은 몇 천원, 우유도 끽해봐야 3000원, 요플레도 16개를 사도 8000원 정도인데 4만원을 넘기기가 참 힘들다. 그렇게 더해야 하는 것은 늘고, 심지어 중간에 백원단위와 천원 단위가 헷갈렸다. 마지막 단위가 2000원 이었나? 200원이었나? 일단 빠르게 바구니 안의 물건을 훑어보았다. 각각의 가격이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마지막 단위가 2000원이 되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2000원으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데, 뭔가 좀 거슬렸다. 뭔가 좀 불안한데... 그래도 세제 사고 커피 사고 어떻게든 4만원을 넘긴 것 같았다. "엄마, 이제 된 것 같아."


...삼만 오천원. 처참한 결과였다. 계산대에서는 물건을 집어올 수 없기 때문에 그때 추가할 수 있는 건 이다. 물 2L짜리 6개를 2개나 추가해서 4만원을 간신히 넘겼다. 배달할 물건을 포장하러 자율포장대로 가는데 슬펐다. 아, 어쩐지 2000원인지 200원인지 헷갈리더라... 근데 그 때 200원으로 계산을 했어도 1800원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는 것인데, 대체 3000원은 어디서 또 계산 착오가 생긴거지? 회원할인은 다 계산했는데... 카드할인이 들어가는 것이 있었나?


켕기다, 마음속으로 겁이 나고 탈이 날까 불안해하는 것을 뜻한다. 그 날은 계산값과 물건값이 일치하지 않을까봐 뭔가 전전긍긍하고, 불안했는데... 딱 켕기다, 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장 보는 내내 마음속으로 켕기는 것이 있었다. 근데... 장 다 보고 나서도 뭔가 계속 켕긴다. 영수증을 뚫어져라 보며 역산하던 나에게 엄마가 계산이 좀 안 맞을 수도 있지 왜 이렇게 신경쓰냐고 그랬다. 그러게, 사실 켕길 이유도 아닌데. 왜 난 괜스레 불안하지?


참고로 저번주도 살 게 없어서 물을 추가하는 바람에 (계산 실수 때문이 아님) 지금 집에 2L*6이 3개나 있다. 와~ 물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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