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에 아름다움이 없다면, 돈과 경제 타령만 한다면, 내밀한 영역인 아름다움을 등지고 사는 것이요, 행복에 이르는 길목을 놓치는 것이다.” - 법정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느끼고 사랑하며 사는 삶의 자세가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삶 자체가 아름다워지는 길입니다. 이 세상에 아름다움이 없다면 기쁨도 없고 행복도 없을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미학’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해지고자 한다면 미학에 대한 공부는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입니다. 미학 공부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전작주의자 조희봉 님이 강원도 화천에서 우체국장을 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죽설헌의 박태후 님이 얼마 전에 강남에서 전시회를 가졌더군요. 미리 알았더라면 한 번 가보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오늘은 고흐의 편지 모음집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반 고흐가 위대한 화가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글을 잘 쓰고 사유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테오가 ‘형의 지식과 세상에 대한 명석한 시각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다.’라고 말할 만합니다. 작가로 나섰어도 성공할 뻔했습니다.
위대함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흐가 본능적인 색감을 타고난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게 된다면 그의 위대함이 천재성 때문이 아니라 열정적인 노력 덕분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림을 향한 그의 열정과 노력은 정말 처절할 정도입니다.
고흐의 편지를 읽으며 새삼 그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며 자기 생각이 분명한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괴팍함이나 정신 파탄자의 이미지를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누구의 평가나 설명에 의한 인식이 아니라 그가 쓴 편지를 통해 그의 생각을 받아들인 결과이므로 보다 정확한 파악일 것입니다.
편지를 읽어보면 인간 고흐에 대해서, 고흐의 인간미에 대해서 보다 깊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비록 거의 전 생애를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지만, 피폐한 환경 속에서 염세적으로 살다 간 사람이 아니라, 세상과 자연을 따듯하고 섬세한 눈으로 바라보고 긍정했던 사람입니다.
화가는 역시 자연을 바라보는 감성이 유별납니다.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혼자만 주체할 수 없어서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해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황금빛을 띠는 녹색의 이끼, 붉거나 푸르거나 노란빛을 띠는 짙은 라일락 그레이의 땅, 자그마한 밀밭의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녹색, 느슨하게 매달린 채 황금색 비에 소용돌이치듯 휘날리는 가을 잎, 그 속에 우뚝 서서 검은색으로 젖어있는 포플러 나무, 자작나무, 라임 오렌지 나무... 듬성듬성 서 있는 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듯 빛이 스며드는 게 보인다. 그 색채는 얼마나 인상적이던지.”
사물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색감을 어떻게 이렇게 서정적이면서 구체적인 언어로 묘사할 수 있을까요? 고흐는 화가이기 이전에 시인입니다.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고흐가 말하는 화가의 역할 정의입니다. 프로네 님도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고흐가 따듯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해서 그런 광기를 품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본래의 천성은 아주 상식적이고 모범적이라고 생각됩니다.
“힘을 다해 내부의 불을 지키면서 누군가 그 불 옆에 와서 앉았다가 계속 머무르게 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려야 할까? 믿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빠르든 늦든 오고야 말 그때를 기다리겠지.”
영혼 안에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있지만 지나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굴뚝에서 나오는 가녀린 연기뿐입니다. 그 불을 쬐러 누군가가 올 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끈질기게 기다리면 그는 반드시 오고야 맙니다. 우리의 임무는 오직 불이 꺼지지 않게 계속해서 열정을 불태우는 것입니다.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고흐는 미술에 있어 일가를 이루고 싶은 야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야망을 이루기 위해 무지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당대의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의 꿈은 결국 이루어진 것이겠지요? 열정을 쏟아부은 야망은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가슴에 이글거리는 이 열정이 식지 않도록 끊임없이 연료를 보충하여 줍시다.
“사랑에 빠질 때 그것을 이룰 가능성을 미리 헤아려야 하는 걸까? 이 문제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는 안 되겠지. 어떤 계산도 있을 수 없지.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니까.”
고흐는 일생을 살면서 몇 번의 사랑에 빠집니다. 그는 세 가지 단계에 대해서 말합니다. 1. 누구를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못하는 상태. 2. 사랑하고 있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상태. 3.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받는 상태. 고흐는 비록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괴로워하지만 다시금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다면, 그냥 사랑에 빠진 것이고, 그게 전부 아니겠니. 그러니 실의에 빠지거나 감정을 억제하거나 불빛을 꺼버리지 말고, 맑은 머리를 유지하도록 하자. 그리고 ‘신이여 고맙습니다. 저는 사랑에 빠졌습니다.’라고 말하자.”
<생각의 탄생>은 저도 읽어보려고 구입할 도서목록에 올려두었었던 책입니다. 전에 ‘생각을 위한 도구’에 대한 글을 스크랩해서 드린 기억이 납니다. 너무 딱딱한 느낌이 들어 배제했던 책인데 읽어보시고 괜찮으면 추천해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구입한 책 중에 ‘가리야 다케히코’가 쓴 <생각 전개의 기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비슷한 부류의 책으로 생각됩니다. 나중에 빌려드릴 테니 두 책을 비교해서 읽어보시면 좋을 듯싶습니다.
이만 퇴근합니다.
2007 10.25 산비
고흐의 편지를 읽으며 느낀 바가 많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 그림을 그렸는지, 화가 본인의 말을 직접 들으니 더욱 그림에 친밀감이 들고 이해가 갑니다. 예를 들어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을 보면 밀밭의 색깔이 파란 보랏빛을 띠고 있지요. 노란 태양이 지평선에 걸려있고 농부가 걸망을 맨 체 밭에서 씨를 뿌리고 있는 그림. 생각나시지요? 고흐는 편지에서 어떤 마음으로 그 그림을 그렇게 그렸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알고 싶다고요? 나중에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하하.
반 고흐에게 동생 테오가 없었다면 과연 그가 그런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가능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테오가 있었던 것은 얼마나 큰 행운입니까?
“재능은 오랜 인내로 생겨나고, 창의성은 강한 의지와 충실한 관찰을 통한 노력으로 생긴다.”
창의적인 생각들은 우선은 세밀한 관찰에 근거합니다. 사물을 무심히 보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왜 이런지, 저것은 왜 저런 지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근거로 기발한 생각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화가의 기본도 관찰입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그들은 다른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해냅니다. 고흐는 사물을 보고 받아들이는 인상이나 색감이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가 가진 위대성이겠지요.
“색채가 서로 조화를 이루거나 부조화를 이루면서 만들어내는 효과를 대담하게 과장해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확하게 복제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색채를 더 임의적으로 쓰고 있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로 보완해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하여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본 것을 그대로 복제해내는 것은 사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고흐는 더욱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이는 대로의 색이 아니라 느끼는 대로의 색을 그림에 나타냈습니다. 실제 대지가 무슨 색인지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별을 통해 희망을, 태양을 통해 열정을, 색의 배합을 통해 사랑과 마음의 떨림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
고흐를 ‘태양의 화가’라고 흔히 말하지만, 저는 그를 ‘별의 화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고흐는 밤이 주는 영감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그린 별은 너무나 신비롭고 특별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고흐의 그림 중에 밤하늘에 빛나는 별 그림이 제일 좋습니다.
“누군가 내 그림이 성의 없이 빨리 그려졌다고 말하거든, ‘당신이 그림을 성의 없이 급하게 본 것’이라고 말해 주어라.”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그림을 그린 캔버스가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보다 더 가치가 있다.”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 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고흐의 그림 중 생전에 팔려나간 것은 단 한 작품에 불과했지만, 고흐는 당당했으며 꼿꼿했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았고 자기 그림이 언젠가는 인정받게 될 것을 자부했습니다. 오늘날 고흐의 그림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자리매김받고 있습니다.
2007 10.26 산비
“고통의 순간에 바라보면 마치 고통이 지평선을 가득 메울 정도로 끝없이 밀려와 몹시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에 대해, 그 양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러니 밀밭을 바라보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완독 하였습니다. 어릴 적 외할머니 집에서 바라보았던 밤하늘을 잊지 못합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은하수를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 빈자리가 거의 없이 하늘을 메우며 총총히 빛나던 별들. 당시 저는 혼자 외갓집에 보내지곤 했었습니다. 동생들을 미처 돌보기가 힘드셨던 어머니가 한 번씩 저를 외갓집에 보냈던 것 같아요. 가끔은 엄마 보고 싶다고 울곤 했었데요. 그러면 할머니가 등에 업고 버스가 지나다니는 신작로에 데리고 가서 오늘은 버스가 끊겼으니 내일 가자며 달래셨다고 해요. 언제나 내일이고 또 내일이었지만.
그때 벌써 외로움과 고독을 알아버렸던 것일까요? 푸르게 반짝이는 별을 보며 우주와 영원성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졌던 것일까요? 반 고흐의 편지를 통해, 그의 그림을 통해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동경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습니다. 보랏빛 하늘에 초록으로 번지는 고흐의 별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을 들킨 듯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제가 지리산의 비박을 그리워하는 것도 거기에 가야만 어릴 적 그때 보았던 밤하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밤하늘은 죽었습니다.
< 별 헤는 밤 >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읍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2007 10.29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