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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Mar 13. 2019

나의 비관에 감사합니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 앙드레 지드    


쉽게 감동할 수 있는 사람이 순수한 사람입니다. 눈에 비치는 모든 새로운 것들, 아름다운 것들에 감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주변의 사물들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매일 만나는 아침이지만, 오늘 아침은 또 얼마나 경이롭습니까?     


오늘은 이주헌 님의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을 조금 읽었습니다. 저자가 서문에 앞으로 미술과 관련된 어떤 책을 쓰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모든 뿌리는 이 책을 쓰며 얻은 경험 속에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우리가 무엇을 읽고 공부한 후 처음으로 겪게 되는 경험은 그토록 값지고 감격스러운 것입니다. 1살, 3살짜리 아이들을 데리고 50일간 여행을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비록 힘든 순례의 길었겠지만 그 체험과 기록물이 오늘날의 이주헌을 있게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 고흐의 책을 읽으며 ‘라파엘전파’라는 말이 계속 나와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이주헌 님의 책도 이 ‘라파엘전파’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이주헌 님의 책을 읽으며 이제야 조금 미술에 눈이 떠지는 기분입니다. 곰브리치의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정말 정신없이 책을 읽어내기에만 급급했는데, 이제야 앞과 뒤가 보이고 역사적 흐름이 감이 잡힙니다.     


보내주신 독서목록 잘 받아보았습니다. 언제 그렇게 책을 많이 읽으셨습니까? 좋은 책들은 저도 읽을 수 있도록 좀 권해주십시오. 그럼.   

 

2007 10.30     산비      


 

“아버지는 모든 것을 미워하고 모든 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라틴어로 ‘오디 에트 아모 Odi et amo’ 다. 세상의 모든 것에 자신을 내던지고 모든 것을 끝까지 겪은 뒤에 미워하든지 사랑하든지 결단하라는 이야기다.”    


미워하고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 겪어본 뒤에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전해 들은 이야기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는 옳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물과 이치에 대해서도 그러하고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진정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내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에는 이 책을 던져버려라. 그리고 밖으로 나가라.” - 앙드레 지드    


앙드레 지드가 그의 책 ‘지상의 양식’에서 한 말입니다.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책이라고 일컬어지는 앙드레 지드의 이 책이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의 완역본으로 새로 나왔다고 합니다. 조만간 구입해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김홍성 님의 <히말라야, 40일간의 낮과 밤>이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김홍성 님은 예전에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를 통해서 접한 적이 있지요. 영원한 동경인 히말라야 설산들의 풍경 사진이 압권입니다. 동행한 강찬모 님의 그림도 영적 울림이 있습니다. 까만 밤, 달빛에 반사되는 설산, 밤하늘의 예쁜 별들... 아! 우리는 언제쯤 그곳 히말라야에 가볼 수 있을까요?    


2007 11.3      산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한 마리의 새에게 너는 자유로우며 조금씩이라도 연습하면 그걸 증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는 일이다.” - 리처드 바흐    

“지금 내가 어디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게 행복의 비결이다.”

   

연습하고 노력하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습니다. 나아지고 있고,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지난 2년간 우리는 무척 성장했습니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나는 그것을 느낍니다. 우리가 서로 각자였다면 이만큼의 성과를 얻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서로 격려하며 이끌었기에 여기까지 힘차게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나는 사람을 사귀듯 책과 사귑니다. 활자를 수동적으로 주르륵 읽어 내려가는 게 아니라 작가에게, 등장인물에게 ‘당신은 누구이며, 내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끊임없이 질문하지요. 좋은 책은 내게 늘 다른 대답을 들려줍니다. 젊어서 읽을 때와 나이 먹어서 읽을 때 감흥이 다릅니다. 당연하지요. 읽는 내가 다른 사람이 됐으니까요.” - 에드워드 멘델슨    


‘인생의 일곱 계단’이라는 책을 쓴 에드워드 멘델슨의 말입니다. 그는 책은 꼭 살아있는 사람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독서의 또 다른 즐거움으로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즐거움”을 들고 있습니다.    


책을 사람처럼 여기고, 책과 사귄다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사람 중에도 좋은 친구가 있고, 나쁜 사람이 있듯이 책도 마음에 쏙 들고 사랑스러운 책이 있고, 형편없는 책이 있습니다. 인간은 대게 오만합니다.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책이 그런 나를 질타하고 생각의 오류를 수정하게 해 줍니다.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2007 11.7      산비     


   

“조건들은 이랬다. 나를 미소 짓게 하고, 내가 신문을 읽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투쟁을 할 만한 높은 이상을 갖고 있고, 내가 미처 모르는 재미있는 것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며 즐기면서 모험적인 생애를 살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    


80일간 세계 각국을 여행한 후 ‘세계 일주하며 80번의 데이트’라는 제목의 여행기를 낸 영국의 BBC 여기자 제니퍼 콕스가 자신의 배우자감으로 제시한 조건입니다. 상당히 공감이 갑니다.    


“풀리지 않는 인생, 혼자 있어야 했던 시간들이 나를 소설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늘 나를 힘들게 하는 나의 비관에 감사합니다. 또 내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어 주는, 문학의 선량하지 않은 본성에 감사합니다. 비관과 편견을 지닌 채 문학적으로 늙어가겠습니다.” - 은희경    


이번에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은희경의 소감입니다. 우리가 늘 나쁘게 생각하는 ‘비관’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색다릅니다. 비관과 편견도 때로는 내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이 세상에 100%는 없는 모양입니다.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1%의 희망은 남아 있고, 완전한 행복 속에도 1% 불행의 그림자가 서려있습니다. 그것을 늘 인지하고 있을 때, 깊이 있게 흔들림 없이 삶을 관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활의 리듬이 조금 흐트러져 있습니다. 너무 긴장해도 안 되지만 너무 풀어져도 안 됩니다. 삶의 긴장과 여유를 조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2007 11.12    산비        



“작가란 별을 찾아 바람을 거슬러 항해하는 사람들이다.” - 바이런

“작가는 때로는 목숨까지 버려가며 폭풍의 바다를 항해하여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서 우리들의 삶에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며 존재에의 용기를 주는 새로운 언어들을 싣고 돌아와 빛나는 별들로 우리에게 건네주곤 한다.” - 김용규    


황석영 씨야 말로 진정한 작가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는 개인적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투옥될 것을 각오하고, 자신이 가야 할 곳을 가고, 해야 할 말들을 쏟아내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소설 ‘바리데기’를 쓰기 위해서 백두산 부근에서 두만강에 이르는 조선, 중국, 러시아의 국경을 샅샅이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몇 장 읽어보았는데, 술술 읽힙니다.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슬픔을 머금은, 시원을 향한 소망을 간직하고 있는, 수수하지만 범상치 않은 얼굴입니다.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안개처럼 가늘게 내리는 안개비, 안개보다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는개, 는개보다는 굵고 가랑비보다는 가는 이슬비, 이슬비보다 더 굵게 내리는 비가 가랑비, 이것이 빗방울의 굵기에 따른 가는 비의 서열이다." 


"눈보라가 있으니 당연히 비보라도 있다. 거센 바람에 불려 흩어지는 비보라, 빗방울 대신 꽃이 날리면 꽃보라, 꽃잎이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꽃비. 시어로 쓰면 좋을 아름다운 말들이다. 꽃비를 뒤집으면 비꽃이 되는데, 비가 오기 시작할 때 몇 낱씩 떨어지는 빗방울이 바로 비꽃이다. 이마에 빗방울 하나가 떨어져 하늘을 쳐다볼 때 이제 ‘아, 비꽃이 피는구나’ 이렇게 말하자.” - 장승욱    


빗방울이 팔뚝에 떨어지거나 귓가를 스치면 ‘아, 비가 오네’ 하고 느끼는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늘을 올려다보면 낮게 내려앉은 구름 바구니에서 몇 낱씩 흩뿌려 내리는 비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내 주르륵 쏟아져 내리기 때문에 잠깐 동안만 찰나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몽환적 광경입니다.     


여름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비보라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거센 바람을 타고 얼굴에 와 부딪는 비보라를 맞으며 오히려 마음이 강해지고, 자유로워지고 신이 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꽃비는 봄날 벚 꽃잎이 떨어질 때 볼 수 있습니다. 바람이 없이 하염없이 뚝뚝 떨어지면 ‘꽃비’이고, 바람에 눈발처럼 날리면 ‘꽃보라’입니다. 내년 봄에 벚꽃이 피고 질 때 꽃보라 맞으러 한번 가봅시다. 그려.        


2007 11.17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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