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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Oct 02. 2019

히말라야 콩데 트레킹 2

= 2019년 7월 30일 화요일 : 카트만두(1280m) - 팍딩(2610m) =    

    


이 세상에는 많은 세계가 있다.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세계 하나를 섭렵하는 것이 오늘의 지상 과제다. 그리하여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내 삶의 영토를 확장해나가는 것이 우리 삶에 주어진 숙명이다. 자기 안에 많은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멋진 사람이다. 당신의 세계를 많이 만들어라.   


몬순 우기, 히말라야의 일반적인 날씨 패턴은 아침 한두 시간 반짝 날이 개었다가 오전 10시 이후 가스와 운무가 올라와 시야를 가리고 오후부터 흐려져 부슬비가 내리다가 밤사이에 굵은 비가 쏟아지는 식이다. 그리고는 새벽에 다시 날이 개고.     


루클라 공항의 날씨도 그러해서 대개 첫 비행기나 다음 비행기 정도가 뜨고 나면 공항이 바로 폐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여름 우기에 쿰부 히말라야에 가려는 분들은 루클라행 첫 비행기를 노려야 탑승 확률을 올릴 수 있다. 새벽 4시 반부터 일어나서 서둔 끝에 공항에 5시 10분쯤 도착. 수하물을 부치고 보안 수속을 받고 게이트 앞까지 잘 들어왔다. 카트만두 공항의 현재 날씨는 쾌청. 십 년 전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상황에 비추어보면 아주 양호한 상태다. 기대감이 부풀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마침내... 탑승 사인이 들어왔다. 게이트가 열리고 비행장 안으로 들어간다. 부라보~ 모두 환호성을 내지른다. 공항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드디어 가는 거야~ 액땜이 컸어. 하하. 우리는 왜 이리 운이 좋지. 희희. 낙낙하고 있는데 글쎄. 버스에서 내리란다. 루클라 공항 폐쇄 사인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런,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우리는 그 시각부터 기약 없는 기다림에 들어갔다. 그냥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나 저네나. 그대가 나의 이름을 불러줄 때까지. 기약이 있는 기다림은 그래도 견딜만하다. 아니 견뎌볼 만하다. 기약이 없는 기다림은 사람을 질리게 하고 지치게 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최종 캔슬 결정은 12시쯤 되어야 난다고 한다. 흐미. 공항 활주로에 햇살이 내려앉는다. 이렇게도 좋은 날씨인데 비행기가 못 뜬다니. 기다리다 지쳐 거의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쯤, 최종 캔슬 사인이 났다. 10시 30분. 차라리 잘 됐다.     


이장님과 함께 분주하게 헬기 수배에 들어갔다. 루클라 공항 안에 헬기 회사들이 대여섯 군데나 있었다. 항공 회사보다 헬기 회사가 더 많다. 첫 번째 제일 큰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회사에 들어갔다. 헬기 못 뜬단다. 헐. 루클라 공항 날씨가 좋지 않아 헬기도 못 뜬다는 것이다. 이런 낭패가 없다. 두 번째도 안 된다고 하고 세 번째 사무실에 들어가니 여기는 갈 수 있다고 한다. 정말? 여기저기 전화를 넣더니 루클라에 친구가 있는데 여기서 부르면 헬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오케이. 갑시다. 이장님이 머뭇거린다. 찝찝하다는 것이다. 왜 한쪽은 안 된다는 데 여기는 된다는 것일까? 되는 것과 안 되는 결정의 차이는 어디서 온 건가? 과연 안전한 것인가? 안전에 대해 묻고 또 묻는다.     


대원들과 상의에 들어갔다.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물었다. 다들 미덥지 않은 표정이다. “헬기 타도 될까?” 헬기를 안 타면 하루를 카트만두에서 더 머물렀다가 내일 다시 비행기 탑승을 시도해야 한다. 그렇다고 내일은 비행기가 뜬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것에 대해 떠나오기 전에 미리 설명을 했었다. 그리고 그럴 경우 우리는 무조건 헬기를 탈 것이라는 것을 주지 시켰다. 돈은 좀 더 들겠지만 돈보다 시간과 경험이 더 중요했다. 돈 40만 원을 더 들여 ‘히말라야에서의 하루’를 살 수 있다면 기꺼이 사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이런 신념과 용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 좋게 보면 용기지만 나쁘게 보면 막무가내 똥고집이었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무조건 간다!”   



 

결과적으로 탁월한 결단이었지만 만약 사고라도 났다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게 되는 결정이었다. 헬기 두 대에 5명, 4명으로 나누어 탑승했다. 태어나서 헬기는 처음 타 본다. ‘뭐 돈 내고 일부러 헬기투어도 한 다는데... 헬기투어 하는 셈 치자!’ 마음을 진정시킨 후 헬기에 올라탔다. 교수님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단장님도 경직된 얼굴이다. 나중에 말을 들어보니 태어나서 그렇게 낡은 헬기는 처음 봤다는 것이다. 헬기가 좀 오래돼 보이기는 했다. 그래도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 헬기가 오랜 세월을 견뎠구나. 얼마나 대견한가. 이번에도 잘 해낼 거야.’    


루클라(2840m) 공항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이장님 팀이 벌써 롯지도 정하고 짐을 부려놓았다. 말을 들어보니 공항에 헬기가 내리자 어디선가 가이드와 포터가 나와서 짐을 들고 그 롯지로 그냥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위대한 가이드 ‘잠조’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 가이드 겸 포터 ‘잠조’를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잠조는 사실은 포터가 아니고 가이드였다. 지갑에서 가이드 라이선스를 꺼내 보여준다. 히말라야에서 가이드와 포터는 엄연히 구별된다. 가이드는 안내만 할 뿐 짐을 지지 않는다. 비수기라 일거리가 없으니 포터로 나선 것이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일단 롯지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시간상으로는 아침이 아니라 점심이다. 기운이 빠지고 허기가 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비가 조금씩 굵어지고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11시에 헬기를 타지 못하고 12시를 넘겼으면 아마 끝내 헬기도 타지 못했을 뻔했다. 운이 좋았다. 잠조와 일당에 대한 협상을 마무리했다. 원래 가이드 일당은 30달러, 포터는 20달러가 시세였다. 잠조에게는 하루 20달러를 주기로 하고, 보조 포터에게는 15달러를 주기로 했다. 십 년 전에는 포터 일당이 10달러였다.    



스틱을 모아 “파이팅!”을 외치고 본격적인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섰다. 아침에 일찍 왔다면 5시간 거리인 몬조까지 갈 계획이었지만 출발이 늦어진 관계로 오늘은 3시간 거리인 팍딩까지만 가기로 한다. 크게 상관은 없다. 내일 조금 더 걸으면 된다. 오늘과 내일 남체까지의 길은 십 년 전에도 걸었던 같은 길이다.     



루클라 관문 앞의 쿰부 지자체 사무실에서 입장료 2000루피(우리 돈 2만 원)를 지불했다. 십 년 전과 바뀐 점이다. 카드만두에서 미리 돈을 내고 발급받던 팀스(TIMS) 카드 제도가 없어지고, 지자체에서 직접 돈을 걷는다. 나중에 몬조에 있는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사무소’에서 국립공원 입장료 3000루피(우리 돈 3만 원)는 따로 내야 한다.     


조금 진이 빠진 상태였지만 휴식을 취하고 배를 채운 덕에 다들 생기를 되찾았다. 카트만두 공항에서 마냥 대기하고 있을 때는 정말 지겨워서 죽는 줄 알았다. 지금 대원들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좁은 우리에 갇혀있던 들소가 출입문을 들어 올리자 미친 듯 뛰어나가는 형국이다. 밤새 걸으라고 해도 걸을 듯한 기세였다.    


 

루클라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십 년 동안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였다. 집이 몇 채 더 늘었나 싶은 정도. 거리의 천진한 아이들이며 세상 느긋한 개들이며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 소들까지. 마을 끝의 관문을 통과하자 비로소 산길이 시작된다. 히말라야라고는 하지만 루클라는 공항이 있는 도시다. 도시의 냄새가 배어있다. 관문을 지나야 진정한 쿰부 히말라야 트레일이다.       



복잡한 삶에서 헤어나려면 자연과 친해야 한다. 높은 산과 푸른 물을 감상하고, 둥근달과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아야 한다. 잎이 나고 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아야 한다. 번잡한 속세에서 제자리만 뱅뱅 도는 것은 어리석은 삶이다. 자연이 답이다. 머리가 맑아지기를 원한다면 산으로 가라.       


오늘은 3시간만 걸으면 되니 부담이 적은 날이다. 내일부터는 하루 7시간 정도는 걸어야 한다. A팀, B팀 나누어서 체력에 맞춰 진행할 계획이기는 하다. 신령스러운 마니석(불교 경전을 새겨 넣은 돌판)과 스투파(옴마니받메훔 진언을 새긴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낯이 익다. 타르초(경전을 인쇄한 만국기 모양의 오색 천)와 룽다(경전을 인쇄해서 새로로 기둥에 매단 천)도 펄럭인다. 이런 것들이 히말라야를 더 영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투파를 지날 때마다 진언을 외우며 오른쪽 시계방향으로 돌았다. 그게 그네들 법이다. 크고 작은 마니차(만트라를 새겨 넣은 돌림통, 한 바퀴 돌릴 때마다 경전 한 권을 읽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들이 산재한다. 오른손으로 마니차를 돌리며 염원했다. 부디 아무 사고 없이 히말라야 트레킹을 마칠 수 있기를... 히말라야의 신이시여! 굽어 살피소서!    



채플룽(2660m)을 지나 너닝(nurning)의 작은 롯지에서 잠시 쉬며 밀크 티 한 잔씩을 마셨다. 히말라야에서 고소하고 달콤한 밀크 티는 생명의 음료다. 격앙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당을 공급해서 육신의 피로를 풀어준다. 다시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팍딩(2610m)에 도착했다. 빨리 걸으면 루클라에서 두 시간 만에도 올 거리지만 우리는 쉬엄쉬엄 걸어서 세 시간 반이 걸렸다. 아무려면 어떻겠나.      



롯지에서 몸을 씻고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카트만두에서 팍딩까지 긴 하루였다. 부산했던 새벽 시간, 긴장되고 초조했던 오전, 진 빠지던 대기시간, 긴박하게 돌아가던 헬기 탑승, 드디어 루클라. 하루 사이에 히말라야가 사람 마음을 조였다 풀었다, 사람을 밀었다 당겼다, 정신을 들었다 놨다 한다.    


 

마침내 밤이 찾아왔다. 나무 침상에 누워 오늘을 생각한다.

나는 지금 히말라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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