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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Oct 05. 2019

히말라야 콩데 트레킹 6

= 2019년 8월 3일 : 콩데(42501m) - 루클라(2840m) =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잘 처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알력과 곤혹이 생기고 의심이 생기는 것에 너무 마음 아파할 필요는 없다. 화를 내거나 당황하거나 어쩔 줄 몰라할 것이 아니라, 한 가닥 웃음으로 흘려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좋다. 천리에 집을 지어놓아도 헤어지지 않는 파티는 없는 것이니, 기쁘게 모였다가 기쁘게 헤어지는 것이 군자의 사귐이다. - 왕멍    



간밤에 잠이 안 올 것 같아 마지막 남은 수면유도제 한 알을 먹고 잤다. 어젯밤 재일 씨와 언쟁이 있었다. 포터를 더 써서 짐의 부담을 줄이고 좀 더 편안한 여행을 하는 게 좋지 않았겠냐는 거다. 안 선생님도 이제 나이가 있으신데 짐 부담을 줄이는 배려를 해드렸어야 했다고. 틀린 말이 아니다. 백번 옳은 말이다. 다음 여행에는 충분히 고려하겠다고 답하고 끝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나로서도 지칠 대로 지치고 신경이 예민해져 있던 터라 내 알량한 아집이 폭발하고 말았다. “It's my style. That's your style." 내 스타일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와 함께 하는 여행에 동행할 수 없다. 나는 편안한 여행을 원하지 않는다. 럭셔리한 패키지여행을 선호하지 않는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은 불편함과 힘듦과 도전과 모험을 감내하고 싶다. 내 짐은 내가 직접 지고 걸어서 정상에 서고 싶다. 그게 산꾼이 가져야 할 기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내 가치관이고 내 철학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너도 그렇게 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되는 거다. 많은 반성을 했다. 새벽에 재일 씨 방을 찾아가서 침대에 같이 누웠다. “잘 잤나? 미안하데이”“내가 어제 말이 좀 심했다. 용서해도” “와 이라노. 됐다 마. 이자뿌렀다. 다 지난 일이다.” “그라제” 나는 재일 씨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 사람의 본성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나머지 지엽적인 문제들은 본질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딱 30초만 욱하고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와야 한다. 쓸데없는 언쟁에 내 감정과 정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싸워봐야 도긴개긴이다. 정력 낭비고 생명 낭비다. 내 생각이 그렇다고 남들도 다 그렇겠지 하는 것은 오판이다. 내 기준으로 남들의 생각을 재단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는 것이다.    



 

바깥 산책에 나섰다. 날씨가 기가 막히다. 우기의 풍경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선명한 풍광이 펼쳐진다. 환상적인 파노라마 뷰다. 이걸 보러 여기까지 그 고생하면서 온 거다. 만약에 생사를 넘나들며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하산한다면 얼마나 허무했을까?  



   

사람들을 모두 깨우고 불러서 아침 풍경을 보게 했다. 아름답다. 눈물이 날 정도로. 말 그대로 선경이다. 신선의 경치. 이 전망 때문에 이 외진 곳에 돈을 투자해서 호텔을 지었을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루클라에서 헬기로 바로 날아와 며칠 씩 머물면서 이 경치를 즐긴다고 한다. 우리나라 혜초 여행사에서도 콩데 헬기 패키지 투어를 상품으로 개발해 소개하고 있다.      




아침을 먹고 각자 한 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안락한 호텔방에서 푹 쉬며 어제의 피로를 좀 더 씻어내려는 계산이었다. 휴식을 마치고는 체크아웃 후 여장을 갖추어 호텔 마당에 모두 집합했다. 어제 다 죽어가던 때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모두 밝은 표정으로 화창한 히말라야의 아침을 맞는다.     





매니저 투잘이 배웅을 나와서 한 명씩 카타를 목에 걸어주었다. 감사와 축원의 표시다. 하룻밤 사이에 정이 들었는지 괜스레 가슴이 울컥거린다. 어제는 도움을 많이 받았다. 투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예티 마운틴 호텔 체인에 입사해서 방을 치우는 하우스 키퍼 일부터 시작해 오늘날 매니저 위치까지 올라온 능력 있는 아가씨다. 영민하고 강인해 보이는 인상대로 조용하면서도 일 처리가 야무지다.     






호텔 뒷마당으로 모두 가서 다시 한번 기념 촬영을 하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히말라야의 설산이다. 눈과 가슴에 한껏 풍경을 담아본다.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을까? 십 년 뒤에 다시 또 와볼 수 있을까? 이제 보면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제 하산이다. 톡톡(2760m)까지는 표고 1500m를 떨어뜨려야 한다. 호텔 직원들은 아랫마을에서부터 이 길을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고 한다. 일반 트레커들이 1500m를 걸어서 콩데까지 올라오려면 체력도 체력이지만 고소증 때문에 탈이 날 것 같다.     






상당히 미끄럽고 경사진 언덕길을 조심조심 내려간다. 중간에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왔다. 어제의 악몽이 떠올라 잠깐 긴장했지만 다행히 쉽게 건널 수 있는 작은 개울이다. 발아래로 두드코시 계곡을 따라 몬조 마을과 우리가 묵었던 팍딩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멀리 언덕 위로는 채플룽 마을도 조망된다. 전망이 좋은 포토 존에서 한 명씩 기념사진을 남긴다. 여행 와서 사진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기회 있을 때마다 들이대고 타이밍 좋게 끼어들어야 한다. 남는 건 사진뿐이다.    






        

모두 무사히 하산을 마쳤다. 몇 명이 엉덩방아를 찧기는 했지만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사고는 항상 하산 시 일어난다. 발목을 삐끗하거나 무릎을 상하면 남은 트레킹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뼈라도 부러지면 정말 큰일이다.     


점심은 팍딩에 가서 먹었다. 간단히 먹으려고 미트 모모 몇 판과 피자 두 판을 시켰는데 소를 잡는지 닭을 잡는지 세월아 네월아 시간이 엄청 걸린다. 히말라야에서는 요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고도가 높아 기압이 낮고 화력이 좋지 않아 그렇다. 그러려니. 긴 의자 하나씩 차지하고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점심을 먹고 마지막 힘을 모아 루클라를 향해 걸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루클라에서 출발할 때도 비가 오더니 루클라로 돌아갈 때도 비가 온다. 제발 내일 아침엔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마지막 오르막 계단을 치고 올라 마침내 루클라 관문에 도착했다. 관문을 통과하며 한 명씩 만세를 부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무사히 살아서 돌아왔다. 시련이 컸던 만큼 기쁨과 감동도 컸다.     



계획대로 편안하게 아무 사고 없이 마친 여행은 감동이 덜하다. 일이 어긋나고 곤경에 처하고 어려움이 닥쳤지만 그 일을 잘 해결하고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한 모험적인 여행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소설가 김영하는 ‘망한 여행’이란 없다고 했다. 일이 틀어져서 계획했던 스케줄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하더라도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오기만 했다면 그 여행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이번 콩데 트레킹은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히말라야 롯지에 돌아와서 우선 따뜻한 밀크 티 한 잔씩을 마셨다. 히말라야의 고소한 밀크 티에 서서히 중독이 되어간다. 샤워를 마치고 다이닝 룸에 다시 모였다. 저녁은 라면 파티다. 트레킹을 출발하면서 서울에서 공수해 온 라면과 김치, 소주를 롯지에 보관해두고 갔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소주가 맛이 기가 막히다. 라면 국물도 끝내준다. 네팔화 되어가던 영혼이 유턴해서 다시 한국인의 기상을 되찾는다.    


가이드 잠조에게는 계약된 일당 외에 50%의 빅팁을 지불했다. 일반적인 팁은 10% 내외이다. 포터 라츠도 두둑이 팁을 챙겨주었다. 팁 외에 가져온 공용 배낭을 잠조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을 생각하면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말 열심히 맡은 바 일을 충실히 해주었다. 히말라야 콩데 트레킹이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길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길 위에서 만난 별것 아닌 순간과 기억들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 - 하정우    

길 끝이 중요한 게 아니고 거기까지 애써 걸어간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준비하고 도전하고 노력한 그 과정이 삶의 정수다. 삶의 끝에 남는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겪었던 경험과 추억뿐이다. 우리가 오늘 또다시 길을 떠나야 하는 이유이다.     



히말라야는 무엇인가? 히말라야에 다녀오면 자꾸만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신령스러운 영의 세계에서 환영처럼 떠다니다가 다시 지상에 발을 디딘 것 같은 느낌이다. 눈을 감고 나를 돌아본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히말라야가 답을 주지는 않지만 답에 대한 힌트는 던져준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집중해야 한다. 넋 놓고 멍 때리는 삶은 잠깐이면 족하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삶의 의지를 단단히 부여잡고 오늘을 살아야 한다. 안 그러면 허무하게 죽을 수도 있다. 어이없이.     



여행은 체험이다. 오감을 건드리는 자극제다. 운동을 하면 숨구멍, 땀구멍이 열리듯이 여행을 하면 일상에서는 닫혀있던 마음 구멍, 감성 구멍이 열린다.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는 모든 것이 나를 나이게 한다. ‘코기토 에르고 숨’이 아니고 ‘센티오 에르고 숨(Sentio ergo sum)’이다. 나는 감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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