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파리에서 느낀 명품과 에코백의 무게

  파리지앵들은 명품을 사지 않는다


파리지앵의 스타일도 한가지가 아닌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녀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하나로 수렴한다. 샹제리제의 휘황찬란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보통의 파리지앵 스타일에 대한 이미지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 이미지 속에서 아무리 명품 로고를 찾아 보려 해도 도통 찾을 수가 없다. 그들은 명품을 메지 않는 걸까? 아니면 로고가 보이지 않는 티나는 명품을 사는 걸까? 아니면 이런 의문도 지극히 한국적인 사고였던 걸까?



명품의 나라, 프랑스.
샹제리제 거리의 찬란함이 유명한 파리.

그런데 파리지앵은 왜 명품을 들고 다니지 않는가?


프랑스 하면 명품으로 유명하고, 파리에는 전세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명품거리인 샹제리제가 있잖아? 그런데 왜 파리에서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지? 그러고보니 길에서 명품가방들이 꽤나 보이긴 했는데 주로 한껏 치장한 여행객들이 들고 다녔다.


사실 대다수의 프랑스인은 샹제리제에서 명품 쇼핑을 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옷장 속에 명품이 단 한 개도 들어있지 않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모르긴 몰라도 선글라스, 시계같은 악세서리는 보이지 않게 명품 브랜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된 명품 쇼핑 품목인 가방은 주로 타국의 여행객들이 줄을 서서 구매해 간다. 본국보다 프랑스 현지에서 사는 것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여행객들이 그 중의 메이저를 차지하는데 이때문에 프랑스 명품브랜드 그룹에서 중국을 향해 보내는 마케팅 제스처 역시 이전에 없이 더욱 강렬해지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진다.

파리 샹제리제의 루이비통 매장


프랑스에 대해서 접근해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먼저 탑재해야 하는 시각이 있다. '프랑스라는 나라'와 '개개인으로서의 프렌치'는 마치 각자 별개로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다. 우선 프랑스는 나라로서는 '명품을 파는 나라'이며 그 이미지가 가져다 주는 부가 막대하다. 2016년 프랑스패션연구소(IFM)가 발표한 자료에 따라 프랑스정부 사이트(www.gouvernement.fr)에서 만든 인포그래픽을 보면, 무려 프랑스 GDP의 2.7%를 패션업계가 견인하고 있단다. 그러나 '프렌치 개개인'은 명품을 크게 소비하지 않는다. 프렌치 개개인은 명품에서 자신의 덕목을 찾지 않은지 오래다. 그리고 요새의 명품은 '싸게 만들어지고' '명품의 이미지를 덧입은'중국산 프랑스명품'이 아니던가.


본디 명품이란 것이 '나는 남과 다르게 차별화'를 꾀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는데, 점점 더 일반 사람들의 명품구매력이 자신의 전체의 부를 나타내는 것과는 별도로 움직이다 보니 너도 나도 가방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 같다. 그게 사회 분위기가 되다 보면 남이 하는 것은 나도 해야 하기에 사게 되고, 한국처럼 결혼 예물도 샤넬 백으로 해서 가지고 있어야 마음이 편한 사회가 되는 거다.


한국이 조금씩 변할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 지영이 가방(강남에서 3초에 한번씩 볼 수 있다 해서 3초백)으로 불리전 루이비통 사의 모노그램 가방에 대한 광풍이 불었던 10년전과 같은 명품에 대한 열기가 점점 사그러들고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소비자의 생활 수준도 더 높아졌고 브랜드에 대한 눈도 더 높아져서 이제는 샤넬 가방이 점점 지영이 가방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제 브랜드로고가 없어도 패턴만으로 증명하는 강남아줌마 가방이 되어버린 '바오밥 가방'까지... 한국에서는 이 모든 게 '남과는 다른 차별화된 나'를 위한 본능인데 결국 그 본능이 모이고 모여 또다시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어버린다. 


애초에 명품이 태동한 나라인 프랑스에서는 그 기원이 오래되서인지 아니면 원래 국민성이 그것을 거부하는 성향이 있는지 프랑스 사람들은 혹여 돈이 있어도 돈이 있는 티를 내는 것을 극도로 기피한다. 그녀의 프랑스인 남편의 주변만 봐도 누가 잘 사는지, 누가 돈이 좀 많은 사람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겉으로 보기에 다 무난하고 평범해 보인다. 집이 몇 채 있어도 투기를 위함이 아니며 여름이나 겨울 한 철을 다른 지방에서 보내고자 하는 별장 개념이다.


명품은 굳이 있다면 어쩌다가 집안 대대로 소중히 물려오는 어떤 한 가지일 능산이 크며 자발적으로 명품을 큰 돈을 주고 구매하거나 선물하지는 않는다. 일례로 지금은 고인이 되신 남편의 약간 먼 친척 할아버지 한 분이 남편에게 고가의 시계 하나를 유산으로 남겨주고 가셨다. 그런데 그녀는 남편이 그 시계를 차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메지 않는 명품'의 의미는 무엇일까? 남들과 차별화를 위한다거나 과시를 위해 착용하는 명품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참고로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 사람들이 명품 브랜드 자체를 기피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 자체에 대한 호기심은 왕성하지만 그건 브랜드가 가진 전시회, 박물관, 채용 기회 등에 대한 관심일 확률이 더 크다. 비록 자신들은 이해할 수 없어 메고 다니진 않겠지만, 프랑스 패션업계에만 1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고(프랑스정부 사이트 인포그래픽: www.gouvernement.fr), 명품 그룹이 보통은 프랑스의 대기업이다 보니 구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명품 브랜드의 문을 두드린다. 프랑스인들의 명품에 대한 관심은 그런 데 있다.



가방에 대한 이야기,
점점 더 명품 번외의 것을 추구하다.


그녀가 20대 초반이던 때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루이비통사의 모노그램인 3초백이라 불리던 지영이 가방이 유행하던 때였다. 그녀 주변에는 굳이 루이비통 가방의 짝퉁을 사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명품은, 메는 사람 자신이 그 가방이 명품인 줄 알아야, 명품인 맛이지'라는 생각을 했다. 짝퉁을 사서 메야 했던 그 지인의 심정은 자신 역시 이런 식으로 증명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적은 돈을 들여 진짜를 메는 사람들 속에 편승하고자 함일 테니까. 그리고 한국도 현대사의 역사상 그런 식의 루이비통 열풍은 처음 겪는 것이었을 테니까 우리 모두는 그 조류 속에서 다같이 휘말렸던 셈이다.


그녀 역시 20대의 한동안은 그 지영이 가방을 한국에서 한참 메고 다녔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그녀는 원래 그런 가방을 메고 다닐 여유쯤은 있는 사람인 것 같은 느낌으로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녀는 매달 영어 과외로 벌어들이던 4-50만원이 수입의 전부였던 뭣도 없는 대학생이었는데 말이다. 그후로도 한동안 명품에 집착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미 알고는 있었다. 명품이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습게도 그걸 깨닫게 한 것은 명품 가방 다음에 오는 명품 입문 순서 때문이었다. 가방을 멨으면 신발도 신고 옷도 명품으로 바꿔 입어야지. 머리띠에  머리방울도 에트로, 귀걸이도 디올... 가방 하나로만은 더이상 명품구매력을 증명할 수 없는 신세가 탄로날 참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차 싶었다. 마음을 바꿔 먹기로 했다.


대학생활 중 2010년 미 LA 한 대학교로 영어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Discover LA'라는 수업 시간에 교수님은 학생들을 데리고 베버리 힐즈 명품 부티크 샵 거리로 투어를 나갔다. 다들 정신없이 명품 부티크 사진의 예쁜 매장 디자인과 제품을 바라보며 쉴새없이 인증샷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아마 그것이 수업의 의도였을 것이다. 그녀 역시 한두장 찰칵대 봤지만 결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대신 화려한 길거리 바닥 한구석에 남루한 행색으로 1달러를 구걸하는 노인에게 마음이 더 갔다. 거기서부터 그녀는 변화를 느꼈다. 교실에 돌아와 장문의 기행문을 썼고 교수님은 그런 비교 글을 써서 낸 그녀의 에세이를 통해 아직까지 그녀를 '달랐던 학생'으로 기억하고 계신다.


2010년, 베벌리 힐스 명품 로데오거리


이후 차라리 돈으로도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은 오히려 무형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머릿속에 든 것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 자체가 명품인 사람일 테니. 이때부터 명품의 가치는 그녀에게 조금씩 퇴색되었다. 그녀는 1호 명품인 루이비통 가방을 팔아 케냐에 자비로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로 했다. 가방 값이 여행 경비로 빠졌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현지 NGO의 도움을 받아 나이로비를 떠나 외국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지방으로 내려갔다. 아침 식사를 하며 무심코 테이블에 내려놓은 그녀의 케이스까지 고이 입힌 번쩍번쩍한 갤럭시 휴대폰을 보며 현지인 마을의 이장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이렇게 좋은 휴대폰은 세상에서 처음 본다"


한국에서는 24개월 할부 약정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없이 휴대폰을 바꿀 수 있다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이장 아저씨의 눈빛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세상에는 우리가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것들조차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재활용수거함에서 꺼낸듯한 한국어 티셔츠가 시장의 가판대에서 걸려 팔리는 것을 목격하였다. 지구의 한쪽에서 가지지 않아 버린 것도 지구의 어느 곳에서는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하는 필수품으로 요긴하게 팔리는 것을 처음 보게 되었다. 그들에게 명품은 아마 깨끗한 물과 꺼지지 않는 전깃불일 테니까.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생각이 복잡했다. 겉으로는 다시는 아프리카 국가에 가지 않겠다고 내뱉었지만 속으로 작지만 점점 파동이 거세지는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고백하건대 파리 생활을 시작하고 가방을 전혀 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름없는 브랜드의 가죽가방을 사서 열심히 메고 다녔는데 어느 날 유럽 여행 도중 가방의 끈이 떨어져 그 안에 들었던 카메라 렌즈가 박살나는 일이 터졌다. 다른 튼튼한 가방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명품 가방은 튼튼하고 다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무언가에 홀린듯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팔리던 모 브랜드의 가방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정말 튼튼한 가방을 하나 찾아서 결국 명품 가방들은 파리에서 옷장 신세가 되었다. 바로 카르푸 마트에서 산 천가방 에코백이다. 명품가방을 멘 파리지앵을 찾아볼 수 없는 파리가 또다시 그녀를 변하게 한 것일까. 마음에 맞는 에코백을 찾은 이후로는 가방에 눈이 가지는 않는다. 파리의 길거리에서 가방의 로고가 번쩍이는 것이 부담스럽다.


1년 째 메고 다니는 까르푸 에코백


겪어보니 파리지앵에게 있어서 명품백 대신 낡은 에코백을 드는 것은 구질구질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환경을 생각하고 그에 대해 논할 자격을 갖춘 멋있는 사람이다. 모 명품 매장이 어디에 위치했는지를 아는 것보다 집 근처 어디에 유기농 마트가 있는지 바로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세계 어디에 있든 파리지앵처럼 살 수 있다. 외면의 자연미를 추구하기로 유명한 파리지앵은 내면의 아름다움 더욱 중요시 한다. 수다타임에 친구들과 노동의 권리에 대해 논하고, 점심시간 카페에서 오늘자 신문을 당당히 펼쳐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진정한 파리지앵이다. 집 앞 유기농 마트에서 퇴근하며 장보러 온 남자가 주머니에서 꾸깃하게 접힌 에코백을 꺼내 물건을 담을 때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그래, 세상에서 제일 튼튼하고 편한 에코백 1개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얼마나 편한가. 더러워지면 마음대로 세제를 팍팍 넣고 빨래할 수도 있으니.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 증후군에는 약도 없다더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