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 03 어쩌면 약의 부작용
우울증 약 복용 3개월 차. 도대체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인지.
아주 오랜 우울감이 약을 좀 먹는다고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아무런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 줄은 몰랐다.
뭐, 그저 아주 작은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라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밤에 먹는 우울증 약에는 수면제가 추가되어 있었다. 나는 그래도 하루에 6 ~ 8시간은 잠을 자는 편이었기 때문에 수면에는 문제가 없다며, 단지 야행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사는 잠이 드는 것이 힘들다면 수면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 달 이상 약을 먹고 나서는 하루종일 머릿속이 멍한 기분이 들었고, 눈도 점점 침침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특히 저녁 즈음이 되면서부터는 눈을 뜨고 있는 것에 힘이 들어간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꼭 근력운동 하고 난 다음날의 근육통 같다고나 할까.
머릿속이 시끄러워서, 그것들을 좀 내보내고자 병원을 찾은 것인데. 시끄러운 녀석들은 조금 작게 속삭이고 대신 뿌연 안개가 머릿속에 하루종일 가득 차 있는 기분이었다. 이래도 저래도 무엇에도 집중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집중은.. 처음엔 조금 나아진 것 같긴 한데 그 뒤로는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해요."
의사는 잘 자고 운동도 하고 명상과 비슷한 마음 챙김을 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누워서 TV 보면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움직이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던가.
"제가 그걸 잘 못 해요 선생님. 편안하게 앉아서 과자나 먹으면서 즐겁게 TV를 보는 것."
그렇다고 내가 그런 시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 키우면서 재우고 나서는 꼭 맥주 한 캔을 들고 드라마 한두 편씩을 보던 기간이 오래 있었는데, 문득문득 그런 시간들은 뭐랄까.. 나에게는 꼭 사치 같았다. 특히 아이들이 다 크고 난 최근에는 더욱 그랬다.
정신없던 하루, 날 위한 시간이 하나도 없었던 날들 속 그거라도 없으면 어쩌나. 그게 나에게 쉬는 시간이며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맥주 한두 캔 그 정도 소비 할 가치는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에게 쓰는 그러한 여유시간과 맥주값조차 편안하지 못했으며, 때때로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쓰레기 같은 생각은 버리세요."
저도 알아요 선생님. 그게 잘 안 되어서 병원을 찾아온 거잖아요.
하루종일 무언가에 취해있는 기분이 싫어서 며칠은 수면제를 빼고 약을 먹어보았다. 어차피 밤에 먹는 약 중 하나는 수면에도 영향을 주는 약이었으니 그 정도의 도움만 받아보자 싶었다.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점심 약을 없애서인지 모르겠지만 며칠은 머릿속이 맑아졌고 저녁에 눈을 뜨고 있는 것이 다시 편안해지기는 했다. (물론, 머릿속 시끄러운 녀석들은 그대로이지만)
하지만 며칠 만에, 나는 일찍 일어났어도 밤에 잠에 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수면제를 찾았다. 마음은 급하고 몸과 머리는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이 거리감을 좁혀야 할 필요가 있나 보다.
그나저나, 나는 왜 그렇게 내가 소비하는 모든 것들을 아까워하고 불편해하면서 살았을까. 안쓰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