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 05
내가 다니는 정신의학과 의사는 많은 질문을 하지 않았고, 많은 설명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상담'을 바라고 간 것은 아니라 오히려 편한 점도 있었지만, 말을 하지 않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조용한 시간에는 내가 무슨 말인가를 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살짝 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만 그런 건지 아니면 이것도 우울증의 증상인 건지. 나는 누구를 만나든 도무지 할 이야기가 생각이 나질 않는 편이었다. 할 말이 없는데 다들 무슨 말들을 그렇게 하고 사는 것인지.
"좀 어때요?"
"달라진 것을 잘 모르겠어요. 괜찮은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은 마음이 갑자기 툭 땅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어요. 제 일상은 정말 어제와 다를 것 없는 단조로운 일상 그 자체거든요. 그런데 아무 일도 없는데 갑자기 그런 순간순간들이 찾아와요."
그런 몇 마디를 주고받은 뒤에 우울증 약을 조금 늘려보기로 하고 약 열흘 정도가 지났다.
신기하게도 이제야 머릿속에서 그토록 시끄럽게 떠들고 다니던, 혹은 나를 갑자기 아래로 잡아끌어내리는 무언가가 조금은 얌전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뭐 기분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거나, 일을 할 때 집중이 조금 더 잘 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여전히 내 표정은 굳어있고 어두우며 일을 할 때에는 집중을 하지 못하고 산만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아침과 자기 전에 부정적이고 우울한 정체 모를 생각들이 슬그머니 머리를 밀고 들어오지만, 그래도 한 번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꺼지라고 말을 하면 또 슬그머니 물러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꼭 두더지 게임 같기도. 조금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전에는 아무리 그 녀석의 머리를 내려쳐도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내려치면 아래로 내려가긴 한다는 정도.
낮은 텐션에 늘 멍하니 있곤 하는데, 그래도 최근에는 머릿속에서 가끔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좋아하는 노래도 가사를 제대로 외우고 있는 것 하나 없어서 심각하게 내 아이큐를 의심해 볼 정도였기에, 노래 가사는 좀처럼 생각나지 않지만.
머릿속에서 어떠한 노래가 머릿속에서 빙빙 맴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신기한 일이다. 그전에 이런 일이 언제였는지 분명 있긴 했을 텐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생각에 또 씁쓸해지곤 하는데, 그래도 회복 중이라는 것에 좋아하려 노력한다.
콘솔 게임도 시작했다(게임에 흥미를 느끼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내가, 당장 돈을 벌기 위한 무언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시간들은 무척이나 사치처럼 느껴져서 내가 노는 시간에 늘 죄책감을 느끼는 편이었는데(그렇다고 많은 시간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시간만 많은 편이었다).
그 시간이 엄청 재미있고 몰입되는 것은 아니지만 '에라, 모르겠다, 뭐가 되었든 놀자.'라는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다.
하루에 잠깐씩 하는 이 게임의 완결을 보게 되면, 조금은 더 달라져있을 수 있을까.